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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s never shine in my hands

정준희2022.01.07

 

Stars never shine in my hands

정준희

​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헤이든은 내 손을 붙잡으며 따라 말한다

그러게.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아무도 없는 숲속, 우리는 바위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                                  

 

어릴 때는 항상 탑에 올라가곤 했다

밤이 되면 다른 마을의 불빛이 보여서

어린 내게는 마치 땅에서 빛나는 별 같았다

그 별빛에 닿고 싶어서 마을을 나섰다

어른은 다들 날 막았다.

엘프는 마을에서 태어나 죽는다고.

밖에 나갔다가는 불행해질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 저 별을 쫓지 않았다간 

내 인생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                                  

 

바깥 마을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사람도물건도음식도건물들도.

하지만 새로움이 익숙함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손에 넣은 별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그걸 깨달은 나는 이 나라를 전부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별을 붙잡았다면 새로운 별을 쫓으면 되는 거니까

단지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일 뿐이니까

 

​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을 쫓는 건 

결과도 없이 끝없는 길을 걷는 일이었다

어느새 새 마을에 대한 설렘은 사라졌고 

어른들의 말을 부정해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았다

그 강박이야말로 아직 어른들의 말에 묶여있다는 

가장 큰 증거인 것도 모른 채로

 

​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하얗게 물들어가는 산이 아름다워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올라가도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헛걸음이었음을 깨달을 줄 알면서도.

그렇게 정상에 오르니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의 인생을 바꾼 운명의 사람

은빛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그 사람은 

자기를 헤이든이라고 소개했다

 

​                                  


그래서? 너는 이름이 뭐야?”

고페르 올리. 마을 이름이 고페르, 내 이름이 올리야.”

그럼 올리라고 부르면 될까? 잘 부탁해!” 

헤이든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그 손을 잡았다.

사실 조금 놀랐어

이런 곳에서 엘프를 볼 줄은 몰랐거든.” 

엘프는 다들 마을에서만 사니까

나같은 별종은 보기 드물지.” 

내 대답을 들은 헤이든은 다른 의문이 생긴 듯했다

그럼 올리는 왜 여기 온거야?”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도 내가 떠난 이유를 잊었으니까.

내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겠으니까.

 

​                                  

 

우리는 바위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얀 세상에는 빛도 색깔도 사라지고 없다

그 풍경에 왜인지 가슴이 메였다.

“...난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를 가도 하양뿐이라면

나는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지?

난 뭘 보고 싶어서 걷고 있던 거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목소리가 새어나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                                  


이 근방은 사람들이 차갑지?” 

헤이든은 내 혼잣말을 가만히 듯더니

불현듯 내게 말을 걸었다

겨울이면 도적이 많아져서 그래

다들 자기 재물을 지키느라 열심인 거지.” 

“... 그럼 도적만 내쫓으면 되잖아

저들은 자기들끼리도 냉대하던데?” 

물질이 풍요로워야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법이거든

저 사람들은 돈이나 재물이이 아니라

남을 믿는 마음을 잃어버린 거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도우려고 왔는데,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 

헤이든은 덧없는 눈빛으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헤이든이 너무나 빛나 보였다

헤이든은 이 하양뿐인 땅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지고 있었다

 

​                                  


헤이든. 내가 도와줄까?” 

? 무슨 말이야?” 

사람 돕는다는 거 말이야

혼자보다는 둘이서 하는 게 낫지 않겠어?” 

헤이든은 크게 놀라서 되물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네가

, 싫다는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너도 목적이 있어서 여기 왔을 테니까...”

내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어때? 같이 다녀도 될까?”

헤이든은 조금 붉어진 얼굴을 감추더니 

이내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물론이지정말 고마워!

네가 도와주면 분명 다 잘 될거야!”

헤이든은 보물이라도 찾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보물을 찾은 건 나였다.

드디어 잡아야 할 별을 찾아낸 거니까.

 

​                                  

 

우리는 여러 마을을 방문했다.

도적들을 물리치고사람들을 도왔다.

항상 먼저 나서는 건 헤이든이었다.

나는 헤이든이 부탁하는 걸 도와줄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게도 칭찬을 나눠줘서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기뻤다.

그렇게 눈이 그치고 봄이 찾아왔을 즈음

나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게 되었다.

 

​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곳에서도 우리는 악당들을 무찌르고

아이들을 구하고사람들을 도와줬다.

그러던 우리는 소문을 하나 듣게 되었다.

왕궁에서 국경을 초월한 히어로 팀 메시에를 만들 거라고..

 

​                                  

 

몇 달에 걸친 시험 끝에

우리는 모두 메시에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악당을 무찌르고사람들을 돕는다.

다른 점은 이제 동료들이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해적 선장 카일, 네크로맨서 크리스티나, 모험가 사무엘.

팀에 들어온 뒤에 내가 누린 삶은

어린 시절 마을에서 꿈꾸던 바로 그 삶이었다.

 

​                                  


올리. , 할 이야기가 있는데...”

. 뭔데, 헤이든?”

메시에에 들어가고 2년이 되던 즈음,

임무를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가던 우리는

어느 숲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우선 내 가족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 클린턴 기사단장님? 그분이 왜?”

, ? 올리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헤이든은 드물게도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되물었다.

... 그냥수도를 돌아다니니까

아이들이 신나서 나한테 말해주던데?

헤이든 아버지가 클린턴 기사단장님이라고.”

“...하긴본명으로 메시에에 들어와 버렸으니

올리가 계속 모르고 있는게 더 이상하긴 하지.

아아아무것도 모르는 엘프라고 방심해서

본명으로 자기소개하는 게 아니었는데.”

뭐야, 그게. 다 내 탓이라는 거야?”

나는 장난을 섞어 불평했지만,

헤이든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다 네 덕분이라는 거야.”

 

​                                  


나는 기사단장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어.

하지만 기사단에서는 왕과 수도밖에 지킬 수 없으니까,

그게 싫어서 여행을 나섰지.

그게 어리광이었다는 걸 곧 깨달았어.

꿈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

헤이든은 내 오른손을 쥐며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올리너를 만난거야.

너랑 있으면 신기하게 힘이 쏟았어.

사람들도 너를 보면 긴장을 풀었구.

너를 만난 덕분에, 나는 내 꿈을 이룬 거야.”

헤이든은 볼이 조금 빨개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냥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고마워, 라고 말이야.”

감성적인 분위기 탓에나도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고마운 건 나야.

마을을 나선 그 날부터나는 계속 방황하고 있었어.

갈곳도목적도 없이 그저 걷기만 했지.

그런데 너를 만나고 모든게 바뀌었어.

네가 걷는 길이 내가 갈 길이 되었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돕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너를 만난 덕분에 걸음마를 땐 거지.

그러니까 나야말로 고마워, 헤이든.”

 

​                                  

 

감성적인 분위기가 잠시 머무르다 지나가고,

남은 건 민망함에 굳어있는 두 사람이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지도일어서지도 못하는 채,

우리는 돌처럼 굳어서 하늘만 보고 있었다.

헤이든이랑 올리랑 또 꽁냥대고 있어!

크리스티나, 우리도 꽁냥대서 저 커플을 해치우자!”

그런 우리를 해방시킨 건 카일의 목소리였다.

그 말이 반쯤 사실이라 반박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멋쩍게 웃으며 동기들에게 다가갔다.

정말, 틈만 나면 둘이서 꽁냥대기나 하고.

나는 남자친구가 맨날 바람을 피워서 문제인데.”

? 바람은 네가 먼저 폈잖냐, 임마!

어디서 남한테 원죄를 뒤집어 씌워!”

하아? 잘도 뻔뻔하게 이야기하네!”

, 진짜! 둘 다 시끄러워 페코!

진짜 사귈 것도 아니면서 왜 날마다 싸우는 거야?

그리고 헤이든이랑 올리도!

꽁냥대든 싸우든 왕궁에 돌아가서 해!”

사무엘의 중재로 겨우 말다툼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왕궁을 향해 이동했다.

이 모든 순간이일상이너무나 사랑스러웠다.

 

​                                  

 

우리의 노력 덕분에 메시에는 계속 성장했다.

다른 대륙과도 협력을 하게 되어서,

사신과 불사조같은 신기한 동료도 생겼다.

임무의 규모도 점점 커졌다.

우리는 바다에서 나타난 거대 괴수와 싸우고,

우주에서 내려온 머리 셋 달린 황금 용을 해치우고,

어둠의 세계로부터 침략해온 대마왕을 무찔렀다.

그렇게 몇 번의 위기를 뛰어넘자

예언자는 앞으로 재앙이 없으리라고 말해주었다.

세상에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건메시에가 유지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                                  

 

안 좋은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때가 헤어질 때임을 직감했다.

목적도 없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보다는

각자의 재능을 살리는 게 세상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처음 이야기가 나온 날에는 다들 머뭇거렸지만

결론은 다 함께 웃으며 헤어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난 아마 웃지 못했던 것 같다.

 

​                                  

 

나는 헤이든과 함께 기사단을 향했다.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늘 그래왔듯 헤이든의 등을 따라갔다.

헤이든은 곧 기사단장이 되었다.

모두의 칭송 속에서 왕과 나라를 지키는 검이 되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발버둥도 치지 않고그대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헤이든과 함께할 수 있다면,

이대로 가라앉은 채로 살고 싶었다.

 

​                                  

 

그렇게 20년을 보내고,

나는 헤이든을 떠나기로 했다.

왕궁에 도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헤이든이 곧 양자를 들일 것이라는 소문.

헤이든은 어느새 47살이 되었다.

독신이 편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후계자는 필요하다.

헤이든은 인간이니까.

큰 사고가 없더라도, 곧 죽으니까.

그래서 헤이든을 떠나기로 했다.

내게는 지금까지 헤이든 이외의 목표가 없었으니까.

헤이든이 죽으면, 다시 갈 곳을 잃고 말테니까.

그러니 내 삶의 목표가 될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헤이든의 얼굴을 보면 발이 멈출 것만 같아서

나는 편지만 남기고 여행에 나섰다.

 

​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별을 쫓았다.

메시에 멤버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를 잃고 말 거니까.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별에 손을 뻗을 수 없게 될테니까.

그런 고집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나 혼자서는 별을 찾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설산을 오르고사막을 횡단하고바다를 건넜다.

30년을 그렇게 발버둥쳤다.

 

​                                  

 

달이 없는 밤, 한 기사가 내게 편지를 건넸다.

헤이든의 편지였다.

나와 만나고 싶다고

단지 그 한 마디만이 적혀있는 편지.

기사를 따라 들어간 숲속에는

한 노인이 홀로 서 있다.

늙고 힘없는, 어디에나 있을 노인.

, 올리. 와줬구나.”

나는 충격받지 않은 척 인사를 받았다.

안녕, 헤이든. 오래 기다렸어?”

아니. 막 도착한 참이야."”

헤이든은 그 시절처럼 뻔한 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 시절처럼 가만히 서서 미소 짓는다

우리는 함께 그 시절을 연기했다.

 

​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헤이든은 내 손을 붙잡으며 따라 말한다

그러게.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아무도 없는 숲속우리는 바위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                                  

 

헤이든은 막 사귀었던 시절처럼

지난 세월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나는 늘 그렇듯 머뭇거렸지만

곧 여행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헤이든도 흥미로운 듯 귀를 기울여줘서

내 불안도 조금은 사라졌다.

 

​                                  

 

올리. , 할 이야기가 있어.”

이야기가 가라앉을 즈음헤이든이 말했다.

마치 서로에게 감사함을 고백한 그날처럼.

난 긴장감을 없애려고 괜히 활달한 목소리로 말한다.

. 뭔데, 헤이든? 말해봐.”

“...내 장례식에서, 추도 연설을 해주지 않을래?”

나뭇잎이 뺨에 부딫힌다.

흙이 다리를 스친다.

내 눈과 귀는, 이제야 현실을 바라보았다.

헤이든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단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67세 노인은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 추도문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거절해서는 안 된다.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고 입을 연다.

알겠어. 걱정하지 마.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하는 게 내 특기잖아.”

고마워... 미안해, 올리.”

조금 뒤, 헤이든은 기사와 함께 돌아갔다.

나는 홀로 숲에 남아서울었다.

 

​                                  

 

한 달 뒤에 장례식이 열렸다.

헤이든의 가족과 메시에 멤버만 참석한 작은 장례식.

나는 헤이든과의 추억을 담은 추도문을 읽었다.

메시에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헤이든의 양자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게 끝이였다.

장례식이 끝나고나는 어둠 속으로 녹아내렸다.

 

​                                  

 

갈 곳이 없었다가고 싶지도 않았다.

헤이든과 재회한 순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죽을 용기는 없어서,

나는 움직이는 시체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에 지쳐 고페르 마을로 돌아가봤지만

그곳에 엘프는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나를 동경해 마을을 나섰다는 모양이다.

그들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                                  

 

그렇게 30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첫눈에 문뜩 옛날 일이 떠올라서

목적도 없이 헤이든과 만났던 산을 올랐다.

정상에서 지평선을 바라봤다

나와 헤이든이 도왔던 마을들이 보인다.

메시에가 지켜낸 것들이 보인다.

나는 뭔지 모를 감정에 사로잡혀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바로 뱉어내었다.

 

​                                  


헤이든들려?

아니안 들리겠지옛날에 사신한테 들어서 알아.

죽은 사람은 절대 이쪽 일은 모르지.

, 됐어. 그럼 뒷담화나 할게.

 

그날네가 추도문을 부탁한 날부터 이후로

난 너를 증오하고 있어.

...조금 과장되긴 했는데그냥 계속 할게.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걸 알텐데,

넌 굳이 나한테 추도문을 부탁했어.

왜 그랬던 거야?

 

아니사실 알고 있어.

너한테서 도망치는 거야말로

너에게 마음이 묶여있다는 증거라는 건 말이야.

마을 어른들에게 묶여있던 것처럼 말이야.

너는 그런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려고

내게 추도문을 부탁한 거지?

하지만미안. 결국 그렇게는 안 됐어.

 

왜 나는 별을 잡을 수 없을까?

바깥 마을메시에, 그리고 너.

모든 별들이 내 눈앞에서 반짝이는데

어느 순간에는 빛을 잃고 말아.

나는 그게 너무 싫어.

이럴 줄 알았으면, 별 같은 건 안 보이면 좋을텐데.

 

...그런데 말이야.

기분 나쁜 이야기인데

이 산을 올라오는 중에는

뭔가, 너랑 같이 있는 기분이었어.

너는 내 옆에 없는데,

이 세상 어디에도너는 없는데,

난 어떻게 너를 느낀 걸까?

헤이든 어디 있는 거야?

 

내 안에, 네가 있을까?”

 

​                                  

 

다음날나는 한 오두막집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니 네크로맨서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반긴다.

, 올리다! 올리가 있어!”

. 안녕, 크리스티나. 실례해도 될까?”

당연하지! 빨리 들어와!”

크리스티나는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첫 만남으로부터 80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네크로맨서의 무서운 비밀이 엮여있겠지.

크리스티나는 내게 무슨 바람이 불었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산을 올랐다가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크리스티나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곧 크게 웃으며 내 팔을 두드렸다.

 

​                                  

 

크리스티나는 메시에 멤버들의 근황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카일을 포함한 떠나간 멤버들도 말해주었다.

이름을 들을 때마다 슬펐지만절망은 하지 않았다.

그들도 내 안에 있으리라는 어렴풋한 희망이 있었다.

가장 놀란 건 사무엘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100살을 넘겼는데도 정정하게 살아있다고 한다.

할아버지 사무엘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                                  

 

밤이 되자 크리스티나는 술을 들고왔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마시려고 아낀 거지만,

올리가 온 날이야말로 할리데이지.”

나는 크리스티나쨩이 주는 잔을 들고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헤이든을 위하여.”

“...그렇네. 헤이든을 위하여.”

우리는 계속 잔을 들었다.

카일의 이름을 말했다.

떠나간 동료들의 이름을 말했다.

혼자가 아닌 밤이 60년만이라서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울었던 것 같다. 

 

​                                  


하루만 더 있어도 되는데.”

다음날문을 나선 내게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미안. 만나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알고 있어. 그래서, 어디로 가려고?”

우선 사무엘한테 가봐야지.

메시에 때 이래저래 신세를 졌었고,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된 사무엘은 조금 보고싶으니까.

그리고는 파니에스를 찾아가보려고.

너도 소식을 모른다고 했지만

, 불사조니까 아직 살아있겠지.”

쉽지 않을 거야.

불사조가 어디 사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시간 여유가 많은 내가 찾아야지.

, 10년 안에는 해결되지 않겠어?”

크리스티나는 내 농담에도 웃지 않고

계속 누나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 가볼게. 술 잘 마셨어, 크리스티나.”

발을 들고 떠나려는 때에,

크리스티나가 내게 말했다.

다녀와, 올리.”

순간지난 80년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서 대답했다.

. 다녀올게, 크리스티나.” 

 

​                                  

 

사무엘은 금방 만날 수 있었다.

늙은 모습이 내가 상상한 그대로여서

함께 보낸 하룻밤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다음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사무엘은 웃으며 나를 배웅해줬다.


​                                  

 

불사조가 사는 곳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어디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어서

마치 지도도 없이 보물을 찾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야 깨달았으니까.

반짝이는 별은 손에서 빛을 잃지만

보이지 않는 별은 가슴에 핀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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