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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여행

윤민철2021.03.31

참회여행

 

한 노인이 진찰실을 나온다.

노인의 아들이 부축한다. 아들의 표정이 어둡다. 노인은 평온하다.

노인에게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들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의사가 얄미웠다.

아범아, 어서 집에 가자. 날이 곧 어두워지겠구나.”

다나카 시게히루라는 노인이 말한다.

. 집에 가서 식사부터 하시죠.”

아들이 담담한 척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의 두 사람은 조용했다. 도로를 따라 차들이 길게 이어져있다. 그때 정적을 깬 사람은 노인이었다.

아범아, 이번 주 토요일에 친척 모두를 집으로 불러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있단다. 그래줄 수 있겠니?”

아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늘따라 노인의 등이 더 굽어보인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저녁식사까지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노인은 모두를 거실로 부른다.

모두들 이렇게 모여주어서 고맙다. 바쁜 일상이지만 관계가 끊어지지 않아서 좋구나. 앞으로 내가 없더라도 자주 모임을 가져주렴.”

친척들은 당황한다. 노인의 동생이 입을 연다.

형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혹시.”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 오늘 아범이랑 병원에 다녀왔단다. 글쎄, 의사가 나에게 3개월의 시간을 주더구나. 허허.”

아빠! 정말이야? 여태까지 아프다고 말한 적도 없잖아.”

자네는 알고 있었나? 왜 지금껏 말해주지 않았어!”

누군가 노인의 아들을 격하게 몰아붙인다. 아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그도 아버지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범은 잘못은 없단다. 애초에 내가 말해주지 않았어. 다들 진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구나. 난 남은 시간에 어떠한 슬픔조차 느끼지 않는단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이 있어. 그것에 아쉬움이 남는구나. 그래서 너희들이 조금 도와줬으면 좋겠구나.”

형님, 말씀만 하세요. 저희가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맞아요, 할아버지!”

노인은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노인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한다.

사실 나는 대동아전쟁 당시 일본국 육군으로 참전 했어.”

 

다나카 시게히루 일병을 태운 트럭이 어느 마을 입구에 들어선다. 이내 트럭이 멈추고 젊은 노인과 군인들이 내린다. 그리고 나카무라 소좌가 말한다.

이곳에 할당된 인원은 총 30명이다! 천황폐하께서 내려주신 명령을 받들어 황군의 충성심을 보여주자!”

힘찬 기합과 함께 군인들이 흩어진다. 마을주민들은 집으로 뛰어가 아이들을 숨긴다. 다나카 일병은 한 부녀자를 따라간다. 젊은 노인은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곳에는 부녀자의 가족들이 있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부녀자의 하얀 저고리가 지저분하다.

다나카 일병은 가장으로 보이는 조선인의 멱살을 잡고 말한다.

너에게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황홀한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아이고, 저를 데려가면 처자식은 누가 먹여 살립니까!”

조선인은 다나카 일병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그리고 온 몸을 땅에 밀착시킨다.

이 조선인새끼! 황국신민이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없다니! 이래서 조선인은 일본인 취급을 해주면 안 된다니까.”

젊은 노인은 개머리판으로 조선인의 등을 내려찍는다. 그때였다. 장녀로 보이는 소녀가 다나카 일병의 허벅지를 깨문다.

!”

다나카 일병은 비명을 지른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어요! 차라리 저를 데려가세요.”

다나카 일병은 소녀의 뺨을 후린다.

망할 조선계집년! 그래, 원하는 대로 널 데려가주마.”

젊은 노인은 소녀의 머리채를 붙잡고 마당에 침을 뱉는다.

!”

소녀가 비명을 지른다.

어머니, 아버지! 저는 꼭 돌아올 테니 동생들을 잘 돌봐주세요!”

아이고, 옥분아! 이 사람아 옥분이 좀 어떻게 해보세요!”

부녀자가 울부짖는다.

 

노인의 이야기가 끝났다. 친척들은 침묵하고 있다.

형님, 그 이야기를 왜 여태 해주지 않았습니까? 분명 형님은 조선반도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죄 없는 한국인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서 맥없이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노예로 삼아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게 했는데. 그딴 일이 뭐가 자랑스럽다고 말을 하겠어!”

노인이 말했다. 혀가 말라버린 입술을 훑고 지나간다.

너희들은 일본이 한국인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나 있느냐 말이야!”

시한부의 언성에 친척들은 고개를 숙인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노인은 말을 이었다.

나는 보았단다. 한국인들이 잔혹하게 이용당하고 죽는 모습을.나도 동참했었지. 아무것도 몰랐어. 난 정말로 모든 명령을 천황이 내렸다고 생각했었단다. 지금도 그들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는 선명해.”

시한부가 잠시 눈을 감는다. 눈가의 주름이 하나하나가 흔들렸다. 아들은 아버지의 감은 눈을 본다. 노인이 죽으면 저런 모습일까 생각한다.

노인이 눈을 뜬다. 그리고 말한다.

난 그들에게 용서를 받고 싶단다. 내가 참회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좋겠구나.”

 

노인의 고백 후, 일주일이 지났다.

비행기 안에는 노인과 아들이 앉아있다. 아들은 노인의 건강이 걱정된다.

아버지는 몸도 안 좋으시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걸까.’

노인은 벌써 70대를 넘어섰다. 게다가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인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노인은 피로를 느끼고 잠을 잔다.

노인이 꿈을 꾼다. 푸른 들판에 끝없이 펼쳐진 꽃밭에 노인이 서있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햇살은 간지럽다. 노인의 어깨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았다. 샛노란 나비다. 나비는 다시 날아올라 꽃밭을 향한다. 노인은 나비를 따라간다.

노인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인천공항이었다. 아들은 노인과 공항버스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로 향한다. 노인은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서울의 거리를 물끄러미 본다.

아범아, 서울도 많이 달라졌구나. 옛날에는 큰 건물이 총독부밖에 없었어. 지금은 모든 건물이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아. 정말 멋지고 대단해.”

초가집과 백색 옷을 입은 조선인의 풍경은 사라졌다. 하지만 노인의 기억 속에는 생생하다.

아버지, 그래도 지금 이렇게 왔잖아요. 앞으로도 자주 한국에 오도록 해요.”

그래, 그래야지.”

 

이윽고 이들은 붉은색 벽돌 건물에 도착했다. 창문의 쇠창살은 건물을 음침하게 만들었지만 무언가 웅장함이 느껴졌다. 건물 외벽에는 커다란 한국국기가 걸려있다.

아버지, 여기가 서대문형무소인가요? 그리고 이곳에서 정말 한국인들이 잔혹한 짓을 당했었나요?”

아들이 묻는다.

그랬단다. 나도 이곳에서 수많은 청춘들을 꺾어버렸지. 다시 오게 되어 참으로 감회가 새롭구나. 그들은 단지 조국을 되찾기 위한 일이었는데. 그땐 왜 그토록 그들을 미워했을까.”

노인은 한국국기 앞으로 가서 어루만져본다.

이것이 그들이 그토록 되찾고 싶어 했던 조국이란다.”

태극기. 이게 조국이었군요.”

아들은 노인을 바라본다. 노인이 예전보다 더 야윈 느낌이 든다.

서대무형무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오로지 고문용 장비와 도구가 즐비해있다. 아들은 안에 못이 박혀있는 나무상자를 만져본다. 이 상자 안에 처박혀서 울부짖을 상상을 한다. 끔찍하다. 아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조용히 노인이 아들의 앞에 선다.

다나카 일병과 그의 동료가 조선인 한 명을 끌고 온다. 조선인은 만신창이가 되어 일어설 힘조차 없다. 그들은 조선인을 못 박힌 상자에 넣고 마구 흔든다.

이런 배은망덕한 조센징새끼! 감히 천황폐하의 은혜도 모르고 철도를 파괴해? 누가 시킨 짓이냐! 김구냐? 김원봉이냐?”

다나카 일병은 상자를 걷어차면서 짐승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이미 얼굴은 빨개졌고 목에는 힘줄이 선명했다.

조선인이 작은 소리로 말한다. 다나카 일병은 조선인에게 바짝 다가가 귀를 댄다.

조선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 노인은 그 조선인의 짧은 외마디를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젊은 노인은 조선인을 꺼내 주먹으로 두들겨 팼다. 결국 조선인은 죽었다. 젊은 노인은 동료와 함께 조선인을 불에 태워버렸다.

아버지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아요. 대체 왜.”

아들은 노인의 손등을 본다. 손등에는 굳은살이 박혀있다.

아버지의 참회는 아마 굳은살의 깊이만큼 오래 걸려야 하지 않을까.’

다음 목적지에 향한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난 괜찮아. 아직 끄떡없어. 허허

노인의 웃음소리에 거친 파열음이 들린다.

밥 먹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배가 고프구나. 어서 밥 먹으러 가자.”

, 아버지. 근데 정말 몸이 안 좋아지면 말씀하세요.”

어느 백반집에 도착했다. 노인과 아들은 각각 된장찌개와 고등어조림을 먹었다. 처음 식당에 들어섰을 때, 한국어를 몰라서 당황했다. 하지만 종업원이 간단한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이건 된장찌개예요. 일본에도 있지 않나요? 미소시루, 맞죠?”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모든 한국인이 일본인을 싫어하지 않구나.’

아들은 종업원의 아름다운 미소를 잊을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노인이 연신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아버지, 괜찮아요?”

난 괜찮아. 단지 조금 긴장했을 뿐이야. 과연 저들에게 용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버지가 용기를 내면 저들도 용서해줄지도 몰라요. 아버지, 용기를 내세요!”

노인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는다.

나는 저들에게 잔혹한 짓을 해버렸어. 평생 상처를 안고 살게 만든 사람이 바로 나야.”

아버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땐 이미 늦어버렸을 수도 있어요. 저 분들에게도 사과 받을 권리가 있고 아버지도 용서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분들에게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알고 있어요.”

아들은 노인의 손등을 잡는다. 굳은살을 어루만진다. 딱딱하고 빈틈없이 메워진 굳은살이다.

고맙다. 덕분에 용기가 났단다. 이제는 그들의 노여움을 풀어주어야겠지.”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게 즉시 사죄하라!”

수요일의 주한일본대사관 앞은 시끌벅적하다. 많은 사람들 사이로 한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소녀는 거칠게 잘린 단발머리에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얹어놓았다. 어깨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있고 발꿈치는 들려있다.

소녀의 앞에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아들은 노인을 이끌고 그들 앞으로 걸어간다. 노인의 심장박동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린다.

조금만 힘내세요, 아버지. 할머니들 앞으로 모실게요.”

할머니들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노인은 무릎을 꿇는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노인에게 집중된다.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다나카 시게히루라고 합니다.”

왜 여기에 왔어요?”

옷깃에 노란나비 배지를 단 할머니가 말했다. 아들은 할머니의 일본어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저는 일본군 육군 출신으로 여러분들께 사죄하러 왔습니다.”

일본군?”

일본군이라고?”

아들은 할머니들의 얼굴을 본다. 할머니들의 눈이 커지고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노인이 노란나비 배지를 단 할머니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손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사죄드리겠다고 방해만 했습니다. 저는 일본군이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일본이 여러분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많이 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때 동참했었으니.”

노인은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리고 내뱉는다.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너무 후회합니다. 저에게는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3개월뿐이지요. 죽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했던 모든 과거의 일들을 용서받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노인은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을 이어간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일본은 여러분들에게 사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제가 먼저 사죄드리겠습니다. 저를 때려 죽이셔도 괜찮습니다.”

노인은 머리를 땅바닥에 파묻었다. 눈물은 아스팔트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노인은 꺽꺽 하며 울기 시작했다. 아마 젊은 노인에게 두들겨 맞던 조선인들의 울음도 지금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저희는 괜찮아요. 그만 일어나세요.”

할머니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노인을 일으켜 세운다. 노인의 얼굴은 먼지투성이에 눈물과 콧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할머니들은 손수건으로 노인의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아직 과거를 잊을 순 없지만 다나카 씨의 사과를 받아줄게요. 그리고 용서할게요. 고마워요.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저희는 앞으로도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를 받을 수 있게 끝까지 싸울 겁니다. 응원해주세요.”

노인은 허리를 숙이며 말한다.

죽을 때까지 응원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언제든 돕겠습니다. 이제는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들은 할머니를 다시 휠체어에 앉혀주는 한 여자에게 연락처를 건넸다.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아들이 뒤를 돌아보니 노인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노인의 생명이 한 달 남짓 남았을 때였다. 시한부는 지금 UN인권이사회 회의실에 있다. 이곳에 오기까지 온갖 방해가 있었다. 우익단체가 아들의 차를 부숴버리거나 집 앞에서 밤새 시위를 펼쳤다. 심지어 밤에는 집 안으로 침입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강제동원과 여성인권 향상 결의안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다나카 시게히루 씨의 증언을 듣겠습니다.

아들은 노인의 손을 잡고 말한다.

아버지, 마지막입니다. 조금만 힘내주세요.”

단상에 선 노인은 마른 침을 삼킨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일본군 육군 출신 다나카 시게히루입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온갖 잔혹한 짓을 했습니다. 무고한 한국인들을 끌고 가서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여자들은 정말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일에 동참을.”

옥분이가 눈을 떴다. 그때 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주위의 군인들이 여자들을 끌고 가고 있었다. 옥분이를 누군가 일으켜 세운다. 옥분이가 저항을 하자 개머리판으로 후려 맞는다.

위안소에서는 소녀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나카 일병의 차례가 오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처참히 짓밟힌 옥분이가 있었다.

옥분이는 몸을 떨며 겁에 질려있었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젊은 노인은 옥분이의 모습을 보고 멍하니 서있다. 손이 덜덜 떨린다.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을까. 네가 옥분이지? 내가 끌고 온.”

젊은 노인이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했던 행동을 이제야 깨달았다. 다나카 일병은 위안소 벽을 부수고 옥분이를 탈출시켰다.

어서 나가! 넌 나를 때리고 도망간 거야.”

 

노인의 증언이 끝났다. UN인권이사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일본정부는 즉시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여성인권기관을 설립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아버지, 수고했어요.”

아니야. 그들이 나를 용서해준 은혜보다 한없이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한단다.”

노인의 웃음을 보며 아들은 저녁밥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노인을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노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아들이 집으로 들어온다. 집 안이 어둡다. 불안하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뛰어간다. 어둡다. 불안하다.

전등을 켜자 노인의 발이 보인다. 아들은 탁자 밑을 확인한다. 노인이 쓰러져있다. 아들은 노인을 일으킨다.

노인의 가슴팍에는 칼이 꽂혀있다. 노인이 살해되었다. 도대체 누가 그를 죽였을까. 아들은 숨이 멎은 노인을 부둥켜안고 운다.

가와구치 고스케라는 남자가 붙잡혔다. 그가 시한부를 살해했다. 가와구치는 우익단체 회원으로 평소 노인의 행보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UN인권위원회에서의 증언을 계기로 충동적으로 그를 죽였다고 한다.

아들은 혼자 노인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켜놓은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일본정부가 UN인권이사회에서 받은 공문을 실행에 옮긴다고 한다. 드디어 한일관계가 좋아질 기회가 찾아왔다며 기대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는 노인을 칭찬하는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되었다.

아버지, 뉴스 좀 봐요. 아버지 덕분에 한일관계가 좋아지고 있대요.”

아들이 흐느낀다. 노인의 영정사진을 끌어안는다.

아버지는 분명히 영웅인데. 편안하게 눈 감을 수 있다며 좋아하셨으면서. 어째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야만 했어요!”

고요한 빈소에서 아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노인을 떠나보내고 1년이 지났다. 아들은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항상 노인의 사진이 있다. 그 옆은 한국인들이 보내준 감사편지가 쌓여있다. 아들은 아내와 함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보내주기로 했다.

어머, 당신 지금 무슨 공부하고 있는 거야?”

한국어 공부. 이제부터 한국어로 답장을 써볼 생각이야. 일본어로 쓰면 읽기 힘들 것 같아서.”

그래요? 정말 좋은 생각이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당신 많이 변한 것 같아.”

아들은 그 종업원의 미소가 계속 생각난다. 언젠가 다시 찾아가보려 한다.

여보, 우리 한국여행 가볼까?”

평생 여행가자고 하던 사람이 아닌데 의외네?”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린다. 바깥이 소란스럽다. 아들은 불안해졌다.

이 시간에 누구지? 여보, 혹시 오늘 무슨 날이야?”

아니, 오늘 아무 일도 없어. 내가 나가볼게.”

현관문을 연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가 보인다. 옷깃의 노란나비 배지가 눈에 띈다. 할머니가 낯이 익다.

누구세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저는 이옥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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