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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리뷰] 흐름에 역행하는 애니메이션 <달이 아름답다>

오영록2024.01.22

  

<표지 사진: <달이 아름답다>>

 

2010년대 초중반을 즈음하여 현재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이세계물 장르가 큰 인기를 끌며 주요 장르로 거듭났습니다. 이러한 이세계물 유행에 더해 주인공이 현실세계에서 사망하고 이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전개가 정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무직전생 ~이세계에 갔으면 최선을 다한다~> 등의 작품 역시 약간의 차이점이 있을 뿐 상술한 이세계물의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상업성 측면에서 봤을 때, 비슷한 작품이 대거 제작되는 현상은 수요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기에 발생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저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접할 기회가 줄게 되어 굉장히 아쉬울 따름입니다.

 

* 애니메이션의 양산화와 관련해서는 유튜버 단지널님께서 코이의 칼럼 항목에 기고한 <양산형 애니메이션>을 참고하시길 추천드립니다.​1)

 

그러나 이세계물로 뒤덮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주옥같은 작품이 몇몇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이 글에서 소개할 작품 <달이 아름답다>가 바로 그러한 작품입니다. <달이 아름답다>20172분기에 방영한 일본의 TV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TV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흔치 않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입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경우 원작의 인기에 따라 팬층이 형성되어 있기에 리스크가 덜한 편입니다. 반대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경우 새로운 스토리로 시청자를 끌어모아야 하기에 리스크가 있습니다만, 그런 만큼 기존과는 다른 신선한 포인트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달이 아름답다> 방영 당시 여러 이세계물에 질려 있어 특색있는 작품이 나오길 바라고 있었기에, 특히나 이 작품을 재밌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이 글을 통해 <달이 아름답다>의 간략한 줄거리와 연출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 <달이 아름답다> 이외에도 특색있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궁금하시다면 코이의 리뷰 항목에 게재된 권민준 학우의 <비비 플로라이트 아이즈 송->의 리뷰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2)

 

<달이 아름답다>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같은 반이 된 두 주인공 코타로와 아카네의 첫사랑 이야기로, 달달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순애물 장르의 애니메이션입니다. 학교 체육대회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게 된 두 사람은 수학여행을 통해 서투른 교제를 시작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친구, 부모님, 진로 등 여러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으면서도 누군가와 사랑하고 사귀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나갑니다. 아직은 어린 두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 속 사랑을 바라보며 풋풋함과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이 특색있다고 하면 이질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상술했듯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경향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달이 아름답다>같은 순애물이 신선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이텐션과 로우텐션을 오가거나 하이텐션으로 일관된 작품은 많은 반면, 전반적으로 로우텐션이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의 장르, 소위 말하는 힐링물은 분기마다 몇 작품씩 등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이야기 전개가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아예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달이 아름답다>의 경우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중요시되는 작품으로, 두 사람의 만남과 갈등, 이에 따른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가 작품을 시청하는 주요 포인트입니다. 그렇기에 <달이 아름답다>는 순애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러 흐름에 역행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흐름에 역행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작품은 아니겠죠. 저 같은 경우 연출을 잘한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달이 아름답다>는 등장인물의 감정 연출에 진심인 작품이고요.

 

그림 1, 2. 아카네가 코타로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장면. 코타로를 부르기에 앞서 인형을 주물럭거리고 있다.

 

사진의 장면은 코타로와 아카네가 서로를 본격적으로 알아가기 전의 모습입니다. 체육대회 준비 담당이었던 코타로는 준비를 위해 어디서 모이는지 라인(카톡과 비슷한 일본의 모바일 메신저)을 받지 못해 모임 장소에 가지 않아 선생님께 지적을 받습니다. 이를 본 아카네는 모임장소를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이 미안해서 코타로에게 사과하러 갑니다. 아카네는 코타로를 부르기 전에 잠시 망설이며 인형을 주물럭거립니다. <달이 아름답다>에서는 그림 2와 같이 아카네의 인형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요. 이를 통해 아카네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해 볼 수 있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림 3, 4. 아카네가 코타로의 반응에 슬퍼하는 장면.

 

이번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장면입니다. 아카네가 다른 남학생과 있는 모습을 목격한 코타로는 아카네에게 차갑게 대합니다. 아카네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하며 오해를 풀려 하지만, 그럼에도 코타로는 계속 차가운 태도로 일관합니다. 결국 코타로가 아카네를 두고 가버리자 서운한 마음이 복받친 아카네는 울고 맙니다. 여기서도 아카네의 인형이 클로즈업되는데, 감정이 복받쳐 꽉 잡은 인형 위로 아카네의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아카네의 슬픔을 잘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림 5, 6. 약속시간에 오지 않은 코타로에게 화가 난 아카네.

 

인형을 통해서만 아카네의 감정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감정 연출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수학여행을 가게 된 코타로와 아카네는 자유시간에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휴대폰을 압수당하는 등 악재가 겹친 코타로는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맙니다. 겨우 다른 학생의 휴대폰을 빌려 아카네와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코타로와 만난 아카네는 상당히 화가 난 모습을 보입니다. 이때도 아카네가 운동화를 부비적거리는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아카네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림 7, 8, 9. 아카네의 답장에 기뻐하는 코타로.

 

아카네 뿐만 아니라 코타로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연출도 자주 등장합니다. 아카네의 경우 인형이 자주 활용되었다면, 코타로는 주먹을 휘둘러 형광등 스위치를 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도서관에 갈 거라는 코타로의 라인에 자신도 같이 가겠다는 아카네의 답장에 기뻐하며 스위치를 치고 있습니다. 연출을 통해 코타로의 고양된 감정이 잘 느껴지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다양한 감정 연출들은 소소하지만 작품 내내 등장하여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고 있습니다. 대사를 통해 감정을 직접 연출하는 것이 아닌, 작품을 시청하며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세련된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 10, 11. 그림 1, 2와 같은 씬

 

이렇듯 감정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인 만큼, 디테일한 분위기 조성도 많이 보였습니다.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편안한 색감을 통해 작품의 차분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그림 1, 2의 씬에서는 물품 보관실에 떠다니는 먼지를 파티클 이펙트로 활용한 모습이 눈에 띄네요. 창문에서 들어오는 태양광도 효과로 넣어 두 주인공의 설레는 만남 장면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그림 12, 13, 14, 15. 그림 5, 6 장면이 등장한 4화의 날씨 변화

 

앞서 그림 5, 6을 통해 두 사람의 갈등 장면을 말씀드렸는데요. 해당 장면이 나온 4화에서는 이야기 전개에 맞는 날씨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두 사람 간에 위기가 생기기 전에는 맑은 날씨였다가 위기가 고조되면서 날이 흐려지고, 갈등이 절정에 가까워졌을 때 비가 내리다가 두 사람이 갈등을 해결하고 날이 맑아지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미술의 활용도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림 16, 17, 18. 미술의 활용.

 

4화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로 보아도 미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달이 아름답다>는 계절의 변화와 이야기 전개를 관련지어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위와 같은 미술도 작품 몰입을 돕는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 19. 7화의 장면 

 

그림 20, 21. 12화의 장면 

 

<달이 아름답다>의 여러 연출을 소개했지만, 사실 엄청나다고 할만한 연출이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소소한 연출을 정말 적재적소에 활용하였고, 이 글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디테일한 연출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시청할 때, 마치 순수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접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근래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이 작품의 섬세함을 고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출과 더불어 스토리 역시도 적절한 전개 속도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사춘기 소년,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장르, 비슷한 전개의 애니메이션들에 지쳐있는 분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달이 아름답다>를 보실 거라면 각 회차의 엔딩 영상에 나오는 라인 메시지를 넘기지 않고 보시길 추천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KOI, 칼럼 <양산형 애니메이션>, https://jpweb.giringrim.co.kr/pages/?p=23&b=B_1_5&&m=read&bn=1967

KOI, 리뷰 <비비 플로라이트 아이즈 송->, https://koi.inu.ac.kr/pages/index.php?p=26&b=B_1_11&bn=2023&cno=&m=read&cate=&nPage=1&nPageSize=9&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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