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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나라 下

정준희2020.12.26

 

 

 

 

 

 

 

 

 

 

괴물의 나라

 

모든 것을 뺏어간 괴물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코요트에서 한 가득 고생을 한 뒤, 우리는 수많은 마을을 돌아다녔다. 지능을 가진 괴물이 마을에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몸을 빼앗은 괴물은 분명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인간의 몸과 지성을 얻었으니 분명 인간 사회에 숨어있을 터. 그런 생각으로 무턱대고 마을들을 들추고 다닌 것이다.

하지만 계절이 가을이 되도록 놈에 대한 단서는 얻을 수 없었다. 도중에 괴물도 여럿 만났지만 모두 지능이 없는 괴물이었다. 수확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던 것이다. 그런 좌절의 흐름 속에서도 기차는 달린다. 이번 역은 올루스,’ 이 나라의 수도이다.

 

올루스는 친숙하다. 책에서 셀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책에 그려진 올루스 대성당을 보고는 가고 싶다며 때를 쓰던 것이 기억난다. 그 감정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었다. 마을을 나서본 적이 없는 나에게 올루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역에서 내리고 곧장 중앙광장을 향했다. 올루스의 면적은 평범한 마을이 8개가 모여 있는 수준이다. 그만큼 길이 많고 복잡하지만, 큰 길은 모두 이 광장에 닿아있다. 문화, 경제, 종교, 모든 면에서 나라의 중심인 이 도시의 핵. 사람과 가게로 가득한 곳. 이라고, 책에는 나와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네. 알베르트, 올루스도 평소에는 이래?”

아니, 저번에 왔을 때는 딱 네가 상상하는 모습이었어. 뭔가 이상한데.”

광장은 텅 비어있었다. 행인, 상인, 심지어 노숙자도 없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당장은 영문을 모르겠다.

알베르트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아마 숙소 때문이겠지. 그는 기차에서도 계속 올루스의 숙소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숙소에 빈 방이 있는 걸 본 적이 없다던가, ‘오히려 빈 방이 있는 숙소가 이상한 거다던가. 아무리 그래도 이런 대낮에 숙소가 가득 차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서둘러서 나쁠 건 없으니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성당이다.”

지금까지 책에서만 본 그 대성당이 내 눈앞에 있다. 나는 완전히 흥분하여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양아버지에게 학대당하던 주인공이 치던 종도 보인다. 성당 안에서는 대관식이 열리기도 했다. 그 밖에도 온갖 정보들이 떠오르는 탓에 옆에서 알베르트가 옆에서 하는 이야기를 무시하고 말았다. 그가 내 어깨를 강하게 흔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 미안해.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됐어. 괜찮으니까 지금이라도 출발하자. 숙소를 찾은 다음에 봐도 안 늦잖아. 그렇지?”

그래, 알고 있어.”

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알베르트는 그런 내가 가엽게 보인 모양이다.

, 진짜. 그냥 보고 가자.”

? 정말 그래도 돼?”

그러나 마나 어차피 빈 방은 없을 거야. 그냥 맘 편하게 보고 가자.”

나는 기쁜 마음에 알베르트를 껴안고 바로 성당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작은 푯말과 잔혹한 현실이었다.

올루스 대성당에 출입을 제한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라고?”

대성당이 문을 닫았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그렇게 적혀 있단 말이야. 젠장, 바로 눈앞이 문인데.”

어쩔 수 없잖아. 이제 진짜로 숙소를 찾으러 가자. 알겠지.”

알겠어. 알겠다고.”

결국 나는 마음을 접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알베르트가 말했듯, 숙소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시에는 수없이 많은 여관과 민박이 있었지만, 어느 한 곳 우리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하나같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쫓는 통에 점점 우리의 정신은 초췌해져갔다. 그렇게 새벽까지 민박집을 찾아다닌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도시 수색은 엄청나게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길에서 밤을 새워야 한다. 그래, 하루 정도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이만한 대도시에 사람 둘이 잘 곳은 있을 것이다. 아마 내일은 방을 찾겠지. 내일은.

 

쓸쓸하네.”

그러게.”

올루스에 온지 일주일 째. 우리는 아직도 방을 구하지 못한 채, 골목에 앉아서 그런 말이나 주고받았다. 쓸쓸함이야말로 눈앞의 광경을 묘사하기에 적절한 표현이다. 가을바람 때문인지 시린 달 때문인지, 도시는 대단히 차갑다.

진짜, 더러운 살인마 때문에 우리까지 고생해야 하냐고.”

그러니까 말이다. 참 운도 없지.”

알아낸 것도 있다. 여관들이 손님을 받지 않는 이유는 손님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이 도시는 지금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으로 인해 인간 불신의 풍조가 퍼져있다. 덕분에 여관도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손님을 받지 않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러분, 현재는 통금이 시행 중입니다. 수면은 댁에서 취해주십시오.”

그래, 통금이다. 살인 사건이 새벽마다 일어나니 당연한 조치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번거로운 일이 없었다. 매번 우리가 골목에서 자려고 할 때면 경찰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돌아갈 집이 없으니, 그저 매일 밤 경찰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었다.

조카야, 우리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냐?”

알고 있잖아. 살인마가 잡히거나, 괴물을 찾을 때까지지.”

현실적인 방안이 없잖아, 젠장.”

우리는 통금 명령에 따르는 척 눈에 띄지 않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오늘은 특히 운이 나쁜 날인 모양이다.

여러분, 현재는 통금이 시행 중입니다. 수면은 댁에서 취해주십시오.”

이 근처는 노숙자가 많아 경찰도 더 많이 배치되어 있는 듯하다. 당장 우리도 노숙자이니 의도는 적중했다고 봐야겠지. 나는 몸을 일으켰지만, 알베르트는 이미 피곤에 찌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우리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경찰은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실례지만, 여러분. 혹시 당장 댁에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신가요? 그런 것이라면 절차를 밟은 후에 경찰서에서 보호해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그 말에 솔깃해하자, 알베르트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바보냐. 빨리 집이나 가자.”

그러고 우리는 함께 길가로 나섰다. 그가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알고 있다. 경찰서에 발을 들이면 자유롭게 괴물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유를 가지고 괴물을 찾아보기 위해 숙소를 찾는 건데, 그래서야 앞뒤가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가 걱정이다. 일주일이나 추운 골목에서 쪽잠을 잤는데, 중년의 몸으로 멀쩡할 리가 없다.

괴물을 빨리 찾아내자, 알베르트.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아.”

그래. 내일부터 숙소는 그만 찾아보자. , 오늘도 잠은 다 잤네.”

우리는 그렇게 밤거리를 거닐었다. 터덜터덜, 살인마를 욕하면서. 새롭고 눈에 덜 띄는 골목을 찾아서.

으아아아아악!!”

어린 아이의 비명이 거리에 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바로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달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 비명 소리에서 희망을 느낀 것이다. 살인마를 붙잡는다면 통금이 끝나고, 괴물을 붙잡는다면 이 도시를 떠날 수 있다. 어느 쪽이라도 우리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저기다! 서둘러!”

알베르트의 말을 듣고 보니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이가 쓰러져 있고, 남성이 아이를 덮치려 하고 있다. 상황은 명확했다.

기다리시지!!”

나는 그대로 달려가 남성에게 드롭킥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버틸 방도도 없이, 남성은 날아가 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알베르트는 그대로 달려가 그를 제압하였고, 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다친 곳은 없고?”

, 감사합니다.”

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칼 한 자루도 들고 있지 않은 게, 살인마로는 보이지 않는다.

, 진짜!! 너희들은 뭐야!? 왜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는데!!”

그러게 말이다. 운이 안 좋았네, 범죄자 양반.”

잠시 뒤에 경찰들이 나타났다. 남자는 무사히 체포되었고, 아이는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저 남자는 누구죠?”

저 놈은 악명 높은 성폭행 범입니다. 듣기로는 한 달 전에 감옥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모양이에요.”

그럼 살인마는 아니겠군요. 살인마는 몇 달이나 활보하고 있으니.”

아마도 그렇겠죠. 하지만 이 자도 못지않게 흉악한 범죄자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일이 편하게 풀릴 리도 없었지만, 아무래도 통금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체념하고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저 녀석, 위험한 범죄자였다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러니까요. 다 아저씨랑 친구 분 덕분이에요.”

아저씨라는 단어가 가슴에 사무친다. 물론 몸은 괴물이니 할 말은 없지만, 20살을 넘긴 청년에게 그 단어는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도 잊게 만들 만큼 아이는 귀여웠다. 이런 감정을 품으면 아저씨인 걸까?

, 아저씨. 혹시 오늘 하루만 아저씨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될까요?”

아이는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표정도 아까에 비해 굳었고, 고개도 떨어뜨렸다.

아버지께서 엄하시니?”

이 시간에 밖을 돌아다녔다는 걸 알면 혼날 거예요. 친구 집에서 잤다고 하면 조금은 봐주실 지도 모르니까, 부탁드려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심정은 알겠고, 평소라면 도와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당초 아이를 데려갈 집이 없으니 방도가 없다. 아이는 낙담한 듯 보였다.

아버지께 사과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괜히 거짓말을 하다가 더 크게 혼날지도 몰라.”

알겠어요,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곧 아이는 경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알베르트와 함께 다시 길가를 서성였다. 결국 변한 것은 없이 찜찜함만 생긴 밤이었다.

 

다시 사흘이 지났다. 우리는 괴물과 살인마를 수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오늘은 그런 고생을 위로하며 휴식을 취하기로 한 날이다. 우리는 중앙광장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알베르트는 곧바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이미 길거리 생활도 열흘을 넘겼다. 피로가 지나치게 누적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몸은 편리하다. 음식도, 수면도 필요하지 않으니 이런 생활에 적합하다. 그것 말고는 불쾌한 점투성이지만 말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사람 한 명 없이 고요한 도시. 어려서 꿈꾸던 올루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열흘이나 있으니 익숙해지고 말았다. 이대로 알베르트가 깨어날 때가지 나도 멍이나 때릴 생각이었지만, 생각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너는 저번에 만났던. 집에 돌아가서는 괜찮았니?”

그냥 그랬어요. 옆에 앉아도 될까요?”

당연하지. 이리 오렴.”

아이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당장 할 말이 있었던 건 아닌지, 아이는 조용히 경치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는 내가 솔선하여 대화를 이끌어야겠지만, 아이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기에 섣부르게 나설 수 없었다. 쓸데없는 질문으로 아이를 상처 입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아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저번에는 왜 저를 구해주신 거예요? 어차피 경찰이 올 걸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안 갔으면 위험했잖니?”

결과야 그랬지만,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따로 있을 거잖아요.”

이유라. 사실 비명이 들렸을 때는 살인마가 나타난 줄 알았어.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지. 그리고 우리는 비명을 지르는 사람을 모른 척 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거든.”

대단하네요. 저였으면 무서워서 도망쳤을 거예요.”

, 보다시피 몸이 크니까. 너도 나중에는 나처럼 될 수 있을 거야.”

아이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다 할 말이 생긴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에 옆에 있는 사람이 엄청 나쁜 사람인 걸 알게 되면, 아저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니?”

잘 모르겠어요.”

그래. 아마 둘 중에 하나 아닐까? 그 사람과 관계를 완전히 끊던지, 아니면 어떻게는 그 사람을 돌려놓아야지.”

그럼, 힘이 없으면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글쎄, 꼭 힘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나빠진 계기를 알아낸다거나, 애초에 악행을 할 수 없게 만든다거나. 구체적인 상황이 없으면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네. 어설퍼서 미안하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정은 한결 가벼워졌다.

고마워요. 도움이 되었어요. , 실례가 안 되면 이 종이를 받아 주세요.”

무슨 종이인데?”

저희 집 주소가 적혀있어요. 시간이 나면한 번 와주세요.”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눴고, 나는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분명 아이의 집에는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 경찰에게도 말하기 무서운 정도의 일이. 나는 내일 집에 가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해가 저무는 걸 바라보며 알베르트를 깨웠다. 다시 잘 곳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별 하나 없는 밤. 우리는 오늘도 골목을 돌아다닌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러겠지. 바뀌는 것 하나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데, 우리에게는 별다른 대책도 없다. 살인마나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줄 것 같지는 않고, 우리가 그들을 찾아낼 작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밤길을 돌아다니는 것도 일종의 작전일지 모르지만, 솔직히 밤에는 여력이 없다. 무엇보다 우리가 온 이후로는 살인도 일어나지 않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그러니 생각을 멈추고 걷는다. 당장은 잘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까.

조금 걷다보니 적당한 골목을 찾았다. 깊고 어두워 눈길이 닿지 않는 골목. 당장이라도 살인마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곳이다. 우리는 바로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댔다. 낮에 잠을 청한 덕분인지 알베르트도 오늘밤은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알베르트. 그 살인마는 뭐가 목적인 걸까?”

글쎄다. 그냥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거겠지.”

그러면 왜 이 일주일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걸까? 원래는 사흘에 한 번 꼴로 일어났다는데.”

그야 만나보지 않으면 모르지. 왜 그래? 갑자기 공감이라도 하는 거야?”

알베르트는 나를 바라보았다. 지친 나머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이상하다라. 확실히 이유가 있기야 하겠지. 심경의 변화라던가, 부상이라던가 말이야.”

그렇다. 살인마도 인간. 정신이나 육체에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말로 감싸보아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조금의 단서도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래서야 경찰을 믿고 기다리는 시민만도 못하다. 그런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알베르트는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이만 포기하자.”

툭 하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놀라서는 그를 바라보았다.

? 진심이야? 진짜 떠나자고?”

우리는 괴물을 쫓는 사람이야. 괴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살인마를 쫓을 이유가 없지. 애당초 살인마를 잡을 단서도 없고 말이야.”

그래, 그렇긴 한데.”

나는 당황한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설마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작 이야기로 나오니 내가 할 말이 많지 않다.

괜찮겠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떠나는 건데?”

물론 네가 살인마의 뒤를 계속 쫓고 싶다면 함께 할 거다. 선택은 네 몫이야. 하지만, 정의감이 족쇄가 되면 안 돼.

족쇄. 나는 살인마를 잡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건가. 부정하지 못하겠다. 여태껏 마을을 돌아다니며 괴물을 붙잡지 않은 경험이야 있다. 하지만 그건 괴물이 없다는 걸 확신한 다음에 떠났던 것이다. 살인마가 있음이 명확한 도시에서 떠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것이 족쇄라는 거겠지. 하지만 우리가 살인마를 잡을 필요는 없다. 아니, 잡으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경찰에게 잡혀가겠지. 괴물의 흔적을 찾지 못한 시점에서, 우리가 이 마을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일 아침, 밥만 먹고 출발하자.”

그는 내 머릿속이 보이는 모양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흘러서는 달빛이 도시를 비친다. 보아하니 내일이면 보름달이 뜰 듯하다. 내일. 그러고 보니 아이의 집에 가겠다고 했는데, 이래서야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떠나기 전에 경찰에게 전달하는 게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해가 다시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고, 우리는 적당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감자와 소시지를 주문하고, 나는 길거리를 돌아보았다. 사람 한 명 없는 황량한 길거리. 이 가게도 우리가 첫 손님인 듯하다. 이 도시는 언제까지 이런 모습인 걸까? 일주일? 한 달? 끝나지 않는 걸까?

조카야? 음식 나왔다.”

그 말에 탁자를 보니 어느새 접시가 놓여있다. 알베르트는 이미 소시지를 썰기 시작했다.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뭘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빨리 먹고 기차나 타러 가자.”

그는 평소 같은 무신경한 말투로, 평소답지 않은 상냥한 말을 해주었다. 내 상태가 걱정인 거겠지. 아무래도 지나치게 감성적이 된 모양이다. 스쳐 지나가는 도시, 그저 그뿐인데. 골목이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그 아이를 만난 탓에? 아니, 이유는 명확하다. 아직도 살인마에 미련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정리할 때이다. 어렸을 때 꿈꾸던 대성당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별 것 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릇을 비웠다. 올루스에 좋은 기억은 없지만, 그나마 이 식사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는 돈을 내고 가게를 나섰다. 우중충한 회색에 휘감긴 거리. 그 길가를 따라 눈을 옮기니 우리를 기다리는 역이 흐릿하게 보인다. 고개를 조금 돌리면 건물들을 부감하는 듯이 서있는 대성당이 보인다. 순간 발이 멈췄지만,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대성당이야 언제든지 보러 올 수 있다. 분명 봄에 찾아오면 더 따스한 풍경을 볼 수 있겠지. 그러니 우리는 발을 옮겼다. 새로운 마을, 새로운 사건, 그리고 새로운 괴물을 찾아내기 위해서.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향해.

 

이것 좀 봐라, 조카야. 여기 마을에서도 괴물 소문이 돈다고 하네.”

그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신문을 들더니 내게 들이밀었다. 내용은 바너스라는 마을의 주민이 적은 목격담이다. 여태껏 가축이 몇 마리나 사라졌는데, 그 와중에 숲에서 괴물처럼 보이는 형상을 보았다고 한다. 굳이 돈을 내서 신문에 기사로 실은 것도 그렇고 그럴듯한 정보로 보인다.

그럼 다음은 여기로 갈까? 바너스까지 가려면 다섯 시간 정도 걸리겠네.”

그러자고. 거기는 해안도시니까 해산물이 맛있을 거야.”

난 제대로 된 숙소만 있으면 좋겠어. 자지는 못해도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우리는 바로 표를 끊으러 갔다. 어쩐 일인지, 역에는 경찰이 여럿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곧 떠날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매표소에 가서 표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난처해 보이는 표정과 대답이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 올루스 역은 운행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러시겠지. 무엇 하나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다.

무슨 일이죠? 역이 문을 닫는다니. 또 살인마라도 나타났답니까?”

글쎄요, 저도 자세한 건.”

맞습니다. 오늘 새벽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올루스에서 나가는 길목은 모두 통제중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다가왔다. 역내에 있던 경찰이다.

도주로를 통제한다는 건, 오늘 범인을 잡을 계획이라는 거군요?”

물론입니다. 위에서는 이번 사건을 올루스에 대한 도발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도발이라는 단어에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번 사건은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일까? 우리가 영문을 모르는 눈치이자, 경찰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피해자는 칼 자페주교님이십니다. 올루스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제님이시죠. 더불어 그분의 자택은 전소, 양자로 들인 청년 한 명도 사망하였습니다.”

주교님을? 어째서죠? 놈의 목표는 빈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저희도 그건 의문입니다. 관계없는 타인이 살인마라는 가면을 빌려 일으킨 사건일지도요. 아무튼 범행 직후 도시를 봉쇄했으니 놈은 이 도시 안에 있을 터입니다.”

살인마가 주교를? 목적이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길가의 빈민들만 골라서 죽이던 놈이 어째서 주교를 죽인 거지? 더욱 쫓기게 될 건 알고 있을 텐데. 경찰의 말대로 살인마를 방패로 내세운 누군가의 범행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밤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괴물이 아니라면 위치도 알아낼 수 없고, 잡는다 한들 범법자가 된다. 그러니 이번 일은 포기하자는 결론이 나왔을 터다. 그런데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하나도 바뀐 점이 없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돌려 알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단호한 모습을 보고 자신을 매질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도 마찬가지로 궁리를 하는 듯 보였다. 경찰은 여전히 우리 앞에 서있었다. 이대로 말도 없이 서있을 수는 없으니, 나는 적당한 인사말을 던졌다.

감사합니다, 경찰님.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역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특별히 갈 곳은 없었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기차를 계속 기다릴 수는 없었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알베르트는 여전히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범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났다. 지난밤에 살인마는 그만 쫓자고 하고서 지금 다시 쫓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짜증을 낸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말없이 걷기만 하니 번잡한 생각이 너무 많아져,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알베르트. 이번 사건은 어떻게 보고 있어?”

? , 미안. 신경이 쓰이게 했구나. 그래, 사건 말이지.”

그는 잠시 멈춰 서서는 길가에 놓인 나무상자에 걸터앉았다. 아마 내가 앉으면 무너질 듯했기에, 나는 옆에서 벽에 기댔다.

나는 사냥꾼이지, 탐정이 아니야. 당연히 완벽한 추리 같은 건 못하지만, 나는 이번 사건의 범인과 살인마는 다른 사람일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살인마가 높으신 분을 죽여보고 싶었을지도 모르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상한 점이 있잖아. 시체가 새벽에 바로 발견된 건 범인이 집을 불태웠기 때문이야.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낮이 되어서야 발견되었겠지. 네가 범인이라면 굳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할까? 더욱이 네가 아직까지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마라면 말이야.”

그건 확실히 일리가 있다. 살인마라면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만약 의도적으로 집을 불태운 것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경찰들이 살인마를 쫓게 하려고 눈에 띄는 짓을 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피해자가 주교인 것도 납득이 가니까. 일부로 눈에 띄는 대상을 골라 죽인 거겠지.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놈도 살인마와 다를 바 없는 쓰레기일거야.”

그야 그렇겠지. 살인마를 찾아내라고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거니까. 하지만 그 추리엔 비약이 너무 많지 않아? 범인과 주교 사이에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고, 불은 둘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난 걸지도 몰라. 거기다 애초에, 경찰에게 살인마를 쫓을 단서가 없는 건 변함없잖아? 범인이 뭘 믿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는 거야?”

그야 뭐, 나라고 이정도 정보로 모든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

중요한 건 범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놈이 잡힐 때까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잖아? 그럼 그나마 괴물일지도 모르는 놈을 쫓아봐야 하지 않겠어?”

그가 열변을 토하는 이제야, 그가 왜 이렇게 범인을 쫓는 데에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를 배려한 것이다. 끔찍한 연쇄살인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맞는 말이네. 괴물일지도 모른다면, 쫓지 않을 이유는 없지.”

그렇지? 그럼 우선 주교의 집부터 가보자고.”

그는 상자에서 내렸다. 아마 의미는 없는 행동이 될 것이다. 분명 범인은 오늘 안에 잡혀서, 우리는 기차를 타고 떠나게 되겠지. 이건 범인을 잡는 것보다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한 어리광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다시 길을 걷는 이유는 그뿐이었다.

 

올루스는 19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주교가 사는 곳은 8번 구역. 위치로 따지자면 도시 서쪽에 있는 곳이다. 중앙 구역인 1번을 제외하면 가장 성당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니, 주교가 살기에는 적절하다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곧장 그의 집을 향했다. 역에서 멀어질수록 경찰이 줄어들더니, 8번 구역에 다가가자 갑자기 수가 늘었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니 당연하겠지.

구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가벼운 신분 조사를 받았다. 경찰 한 명이 내 모습을 보고는 놀랐지만, 불치병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그냥 보내주었다. 물론 거짓말이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목적을 물었을 때에는 솔직하게 사건 현장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몇 명 있었는지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마지막으로 주의를 주었다. 오늘 수사가 끝나기 전에는 구역을 나가기 힘들 수 있다고. 우리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8번 구역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큰길을 지나 주교의 자택에 도착했다. 집 밖은 불탄 흔적이 가득하고, 벽은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이미 이곳에서의 수사는 끝났는지 경찰은 소수만 배치되어 있었다. 알베르트는 내게 기다리라 말하고 경찰들에게 다가갔다. 경찰은 수상한 중년에게 경계심을 드러냈고, 알베르트는 기분 나쁘게 밝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떨어진 곳이라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알베르트가 등 뒤로 수신호를 보내는 것이 보였다.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아 이야기가 잘 풀린 모양이다. 나는 자택으로 걸어가려고 했지만, 그와 동시에 알베르트가 나에게 돌아왔다.

뭐야, 안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그러려고 했는데, 어차피 중요한 것들은 이미 수거했다고 하네. 애초에 관계자도 아닌데 들여보내줄 리도 없지만 말이야.”

그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한 건데? 무슨 단서가 있는 지라도 물어봤어?”

바로 그거지. 듣자하니 흉기로 쓰인 것 같은 식칼이 남아있었다고 해. 우선 그것들을 이용해서 범인을 추리고 있다네.”

그건 다행이지만, 당장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올루스 내의 다른 구역에서 이 구역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큰길을 거쳐야만 한데. 물론 어제도 길가에는 경찰들이 있었을 테니까.”

범인은 밤새 이 구역 내에 있었다는 거지?”

그래. 집이 여기 있든, 아니면 어제 하루 여기에 머물렀든, 녀석은 밤 내내 이곳에 있었어. 그것만이 아니야. 들어오는 길이 대로뿐이라는 건 나가는 길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놈은 아직 이 구역 내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

범인은 이 구역 내에 있다는 건가. 그러면 구역 밖으로 나가기 힘들 거라는 말도 이해가 간다. 들어갈 때와 달리 구역을 나서려는 사람은 철저한 심문을 받게 될 테니까.

이 집에서 얻은 건 그 정도인가? 이제는 어디로 가지?”

글쎄다. 사실 마음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는 힘들겠지. 우리는 경찰도 아니니까. 여기 상황을 알려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 그러고 보니까.”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 뭐냐 그건?”

저번 밤에 우리가 구했던 아이 기억나? 그 애가 줬던 종이인데, 여기 집주소가 적혀 있거든. 이것 봐.”

알베르트는 종이를 받아들어 읽었다. 글에 적혀있는 주소는 8번 구역 내에 있는 곳이었다.

어때? 그 아이한테서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아이가 새벽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좋은 방법이 맞을까?”

경찰에게 물어봐도 자세하게 이야기해줄 리도 없잖아. 그리고 꼭 당시의 상황만 물어볼 건 아니야. 최근 이 곳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낼 수도 있겠지.”

나는 열심히 내 생각을 설파했다. 그 아이는 이 마을에서 우리가 아는 유일한 인물이니, 우선 그쪽이라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지난번에 그 아이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들이 아직도 가슴에 걸렸던 것이다. 알베르트는 꽤나 고민하더니, 이내 내 말에 수긍했다.

좋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 애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거지?”

그래. 그 애가 와달라고 했으니까.”

그럼 바로 가보자.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으니까.”

 

우리는 곧장 종이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가는 길목마다 경찰이 가득하여 눈치가 보였지만, 길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경찰들에게 질문하면 편할지도 모르지만, 범인일지도 모르는 일반인에게 가르쳐줄 리가 없겠지. 우리는 스스로 정보를 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 그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고 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알베르트는 조심스럽게 문에 노크했지만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안에 아무도 없는 모양이야. 어떻게,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볼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지.”

집에 반응이 없다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 그렇지만, 이유 모를 불안함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했던 말과 사건이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형편 좋은 일이 있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집 안 상태를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선 다른 곳으로 가보자. 달리 조사하려고 한 곳은 있어?”

이제부터 생각해야겠지. 성당에 가보고 싶지만, 1번 구역은 검문을 넘어야 해서 귀찮단 말이지.”

맞는 말이야. 우선 이 안에서 가능한 조사를 모두

그 순간, 그 한 순간만큼 괴물이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 적이 없었다. 나는 바로 몸을 틀어서, 몸을 부딪쳐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 뭐야? 조카야, 너 지금 뭐 범죄행위 중이라는 건 알지?”

안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어.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 알베르트, 너는 경찰을 좀 불러와 줘!!”

뭐라고? 알겠어, 잠깐만!!”

그는 의심도 없이 내 말을 믿어주었다. 그건 기쁘지만, 당장 신경은 아이에게 쏠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옆에 있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때 아이가 한 말은 무슨 의미인 거지? 생각이 생각을, 걱정이 걱정을 낳았다. 이것도 저것도 문을 열면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기합을 넣어 문을 완전히 부수었다. 그리고 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집안으로 들어갔다. 먼지투성이인 탁자, 거미줄이 낀 벽,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바닥.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것은 벽에 박힌 몇 자루의 식칼들, 그리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였다. 나는 곧장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가 있었다. 차마 말로는 담지 못할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양손은 묶여있고, 입은 천으로 막혀있었다. 왼쪽 다리는 심한 화상을 입고 있었고, 한쪽 눈은 잘 떠지지 않는 듯 오른편에 서있는 나를 고개를 꺾어 왼쪽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무어라 소리를 내서, 나는 서둘러 아이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그 비명은 다른 의미였다. 내 등을 커다란 칼날이 찌른 것이다.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대로 팔꿈치로 놈을 공격했다. 놈은 차마 피하지 못했지만 동시에 내 팔을 깊게 베었다. 나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내 피가 묻은 허름한 옷, 더벅머리에 갈색 피부, 옥색 눈동자와 얼굴 생김새까지 모두 저 아이와 똑 닮았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말한 나쁜 사람이 이놈이라는 것, 그리고 아이를 저렇게 만든 것도 이놈이라는 것은 명확했다. 역겨웠다. 피 냄새, 이 광경, 모든 것이 내 비위를 건드렸다.

넌 누구냐!! 그분께서 날 지켜주신다고 하셨는데!!”

그분? 그게 누구지?”

네가 알 필요는 없다!!”

놈은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바로 떨쳐내려고 했지만, 재빠르게 피하며 계속 배를 베는 탓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나는 놈의 팔을 잡았고, 내가 놈에 얼굴에 주먹을 날리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 힘을 줬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이놈은 곧 집에 올 경찰에게 맡기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완전히 긴장하여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결박을 풀고, 긴장을 푸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그러자 아이 몸에서 힘이 풀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 떠지지 않는 오른쪽 눈. 그 비참한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대로 쉬고 있지를 바랐지만, 아이는 마른 입술로 갈라지는 목소리를 내었다.

감사합니다.”

그 모습에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날, 설산을 향한 친구를 찾아달라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등에 흐르는 죄책감을 애써 잊는다. 이번에는 구해냈다고. 그거면 된 거라고.

할 말이 있어요. 경찰한테도 할 거지만, 아저씨한테도.”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 한 마디. 가냘프지만 분명하게. 자신이 말했던 나쁜 사람이 누구인지, 주교가 왜 죽었는지, 연쇄 살인은 왜 일어났는지, 자신이 아는 것은 모두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발소리가 들리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알베르트가 경찰들을 데리고 도착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특히 알베르트는 내 상태를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 그 상처는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됐어. 말하자면 길어. 그보다 빨리 이 남자를.”

순간의 여유. 그것이 실수였다. 등 뒤로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새 놈이 정신을 차리고는 도망친 것이다. 경찰들이 총을 쏘아봤지만 이미 늦었고, 그들은 서둘러서 집 밖으로 나갔다.

조카야, 서둘러! 우리도 가자!”

알베르트도 그렇게 말하며 놈을 쫓았다. 나는 아이를 든 채로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일에 휘말린 아이를, 이런 집에 홀로 두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서 달리고 있는 알베르트에게,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경찰들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알베르트!! 절대로 놓치지 마!! 그놈이 살인마야!!”

뭐라고? 확실한 거냐?”

이 애가 말해줬어!! 못 믿어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붙잡기만 해줘!!”

어차피 아이와 나를 이렇게 만든 것만으로도 붙잡아야 할 범죄자. 하지만 살인마일지도 모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놈을 쫓는 경찰은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새 수십 명이 놈을 쫓기 시작했다. 아무리 놈이 신출귀몰해도 이정도면 잡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계속 놈을 쫓았다. 다시 만나서 한 대 더 때려야 성이 풀릴 것 같았다.

놈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 근처에 있을 터였지만, 어떻게 숨었는지 수색에 난항이 생긴 참이었다. 더욱이 우리는 경찰도 아니니 수사에도 직접 참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경찰들이 이미 수색한 골목에 고개를 들이미는 정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기껏 열심히 달렸더니 이게 뭔가 싶었지만, 알베르트는 그보다도 내가 입은 상처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조카야, 일단 쉬는 게 낫지 않겠어?”

갑자기 무슨 이야기야. 그 놈을 찾아서 한 대 때려야 한다니까?”

그건 알지만, 애초에 우리가 뭘 할 상황이 아니잖아. 거기다 너는 지금 무리를 할 상태가 아니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팔은 지금도 피가 뚝뚝 하면서 떨어지고 있고, 등의 상처도 상처가 스칠 때마다 아리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이대로 놓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됐어, 이제 익숙해. 걱정 되면 빨리 찾게 기도나.”

그 순간, 비명이 거리를 울렸다.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총성이 없었다는 것은 경찰이 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아이를 알베르트에게 맡겼다.

, 잠깐만!!”

그 말에 대답 할 겨를도 없이,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생기는 불길한 예감. 살인마가 말한 그분의 정체. 아이가 지난 새벽에 했던 일. 여태껏 일어난 살인사건들. 그 모든 진실이 이 너머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골목에 들어서서, 경찰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틈에 있었던 것은.

목 위가 사라진 살인마. 그리고 또 한 사람.

, 드디어 만났네. 오랜만이야.”

내 몸이. 그날 불길 속에 서있던 인간이. 그 괴물이,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내 인생을 끝내고, 이 도시도 어둠으로 물들인 장본인이.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하십시오!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경찰은 이 상황을 놓고 추궁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괴물. 당장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서둘러 행동해야 한다. 어떡하지?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 하나? 몸을 되찾는 방법도 모르는데? 들고서 도망친다? 내가 쫓기는 건 둘째 치고, 마을 하나를 불태운 놈이 순순히 붙잡힐까? 어떻게 해야 하지?

놀랄 일도 아니잖아. 내가 살인마니까.”

괴물은 내 고민을 비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총을 겨누는 경찰들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내 두 눈만을 바라보며. 그 한 순간 사이에도 수많은 의문이 피어났지만, 나는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왜 그런 짓을 했지? 지식을 얻고 싶었나?”

첫 질문이 그것일 줄은 몰랐는데. 아니, 가끔은 정화가 필요하거든. 특히 이런 타락한 도시는 언젠가 불길로 쓸어버릴 때가 찾아오는 법이지.”

그건내 마을을 두고 하는 말이냐.”

내 말에 대답한 틈도 없이, 괴물은 경찰에게 구속되었다. 그는 끌려가는 와중에 말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네. 다른 질문은 다음에 해 줘. 네 몸에 대한 거라던가 말이야.”

괴물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놈은 범죄자로써 붙잡혔다. 자신의 양아버지인 주교를 살해하고, 연쇄 살인을 일으킨 진범으로써. 범행 방법도 모두 털어놓았기에 더 이상 조사할 이유가 없다. 이걸로 사건은 종결. 내일이면 놈은 사형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설명을 듣고 경찰서를 나섰다.

왜지?”

그런 설명으로 의문이 해소될 터가 없었다. 살인을 한 것도 알겠고, 사형이 내려진 것도 알겠다. 하지만 놈이 굳이 자백을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날 방법이라면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왜 하필 이 방법을 택한 거지? 나를 비웃기 위해서? 고작 그것만을 위해?

영문을 모르겠는 건 나라고. 그 거지가 살인마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잡힌 녀석은 뭐야?”

. 미안, 아직 이야기를 안 했구나.”

정신이 없는 탓에 아직도 아이가 해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큰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알고 있어야 대화가 되겠지.

살인마가 그 남자인 것은 사실이야. 물론 아이의 말이 맞는다면 말이야. 녀석은 여태껏 사람을 열 명도 넘게 죽여 왔다. 하지만 그 위에, 놈에게 살인을 명령하는 주체가 있었어.”

그게 저 괴물이라는 거냐? 왜지? 살인 같은 짓을 하다가 정체가 들키면 어떡하려고? 기껏 인간 사회에 숨어들었잖아. 그것도 주교의 양자라는 대단한 설정으로.”

모르지.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고, 위험보다도 이득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괴물이 살인으로 얻는 이득. 지식인가?”

아마 그렇겠지. 이유야 어쨌든 놈은 대리인을 이용해 살인을 일으켜왔어. 하지만 대리인의 자식, 그 아이가 눈치 채고 말았지. 아이는 경찰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야. 신고했다가 아버지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지. 그렇게 포기하고 길을 걷던 중에 나를 만났고, 필요 없는 영향을 받고 말았어. 아버지의 뒤를 쫓아 배후를 알아내려고 한 거야. 그리고 놈을 찾아낸 거지. 성당에 다니는 청년이자, 주교님의 양자가 된 이방인, 내 몸을 빼앗은 괴물을.”

잠깐만, 그럼 그날 주교의 집에 찾아간 건 그 아이인 건가? 그 아이가 범인이었다고?”

아니. 아이는 집에 찾아가서는 괴물에게 직접 따졌다고 해. 이런 짓은 그만두고 자수하라고. 물론 괴물은 무시했고, 오히려 아이를 죽이려고 했어. 그걸 주교가 막았고, 괴물은 가차 없이 주교를 죽였다. 아이는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실수로 등불을 넘어뜨렸다고 해. 그렇게 집은 불탔고, 괴물은 유유하게 집을 나섰다.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일어난 거야.”

그럼 아이가 그런 상태였던 건.”

평소부터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라고 했어. 거기에 자기를 고용해준 인물을 방해했으니 화가 났겠지.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야.”

 

내 장황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알베르트는 말을 뱉었다.

아이는 안타깝고, 대단해.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상하네.”

그래, 이상한 점투성이지.”

여태껏 한 번도 정체를 들킨 적 없는 놈이 그런 어린 아이의 추적에 걸렸다고? 거기다가 늙은 주교가 방해했다고 아이를 놓쳐?”

나도 이해는 되지 않아. 그 상황을 고려한다면, 아이에게 일부로 정체를 들켰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럴 이유가 뭐지?”

의도가 분명히 있겠지. 당장은 모르겠다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으니, 어느새 중앙광장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적당한 벤치에 몸을 맡겼다. 그곳에 가만히 앉으니 그날 아이와 만났던 일이 떠오른다. 아이는 경찰이 데려갔다. 아마 적절한 시설에 맡겨지겠지. 아이에게는 그게 최선일 것이다.

광장도 길도 여전히 한산하다. 일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이런 상태겠지. 하지만 내일 사형이 집행된다고 한들, 그걸로 일이 해결될까? 아니, 애초에 사형이 정상적으로 집행되기는 할까? 놈의 목적은 뭐지? 어떻게 막아야 하지? 몸은 어떻게 되찾아야 하고? 고민은 고민을 낳았고, 생각은 깊어져만 갔다.

어떻게 생각해, 알베르트.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무것도 모르겠어.”

글쎄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형 때까지 놈에게 접근할 수도 없고,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이 사실들을 일부러 가르쳐준 이유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괴물은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지 않겠어?”

당사자, 라고 하면?”

그야 괴물이지. 보아하니 기분 나쁜 성격이던데, 물어보면 신나서 몇 마디 해주지 않을까?”

그건 그럴 것 같지만, 당장 접촉할 방법이 없잖아? 면회를 시켜줄 것 같지는 않고, 철창을 부수고 납치할 수는 없잖아?”

필요하다면 해야지. 그 괴물이 네 마을을 모조리 불태운 거잖아? 이 마을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몰라. 거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모르는 상태. 지금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건 우리뿐이야.”

알베르트가 한 말은 타당하다. 놈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데 아무 행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사이에 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면, 한 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다.

놈이 어디 있는지는 정확히 알아?”

아까 경찰들이 말하는 걸 엿들어 놨지. 그건 걱정하지 마.”

그래. 그럼, 가서는 어떻게 하지? 당연히 바로 죽이는 게 최선이지만, 그러면.”

네 몸을 되찾을 수 없다는 거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심으로 가득한 속내를 들키는 건 아무래도 불쾌한 일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우리는 놈을 들고서 달아난다. 그동안 너는 놈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하고, 협박이든 고문이든 해서 대답을 들어. 놈이 수상한 짓을 하면 내가 바로 죽일게. 몸은 인간이니 문제없겠지.”

미안, 배려해줘서 고마워. , 불안하니까 죽일 때는 확실하게 머리를 날려줘.”

그렇게 말하면 엽기 살인마 같잖아. 아무튼 알겠어.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발하자.”

이걸로 꼼짝없는 범죄자인가. 지금까지도 합법적으로 살았다는 느낌은 없지만, 역시 경찰서를 습격한다는 건 대단히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겠지. 얌전히 사형까지 기다린다 한들 놈의 수에 놀아날 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도시도 불타버릴까? 만약 우리도 실패한다면. 아니, 나쁜 생각만 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몸을 되찾고 도시도 지킨다. 그 미래만 상상하면 된다. 그래, 성공할 거다. 지금까지도 그랬으니까.

 

우리는 경찰서 앞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괴물이 갇혀 있다. 우리 목표는 놈을 데리고 빠져나가는 것. 이러니 마치 놈이 소중한 동료라도 된 듯하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분명 재앙이 일어나겠지. 확보하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럼, 간다.”

그래, 다녀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는 경찰서 입구로 걸어갔다. 처음부터 눈에 띌 필요는 없다. 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걷는다. 경찰들은 괴물 때문에 바쁜 모양이다. 이쪽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충돌은 적을수록 좋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니, 어느새 철창으로 가는 길목이다.

잠깐만, 거기 자네. 거기는 민간인이 들어가면 안 되네.”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역시 완전히 안 들킬 수는 없나. 힘으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그대로 달렸다.

, 잠깐만!! 멈춰!! 거기 그 사람 좀 세워!!”

내게 달라붙는 경찰들을 모두 떨쳐낸다. 알베르트의 말이 맞는다면, 놈은 입구에서 9번째 철창에 갇혀있을 것이다. 지금 지나친 게 7번째, 8번째, 그리고 9번째 철창.

, 찾아왔구나. 기쁘네.”

시끄러워! 내 목소리로 말하지 마!”

여유는 없었다. 바로 옆에 경찰이 한가득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철창을 뜯어내었다. 몸의 상처들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지만, 다행히 몸이 들어갈 정도의 틈은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괴물을 들고서 자세를 취했다.

괜찮겠어? 거기 벽인데?”

시끄럽다고!! 가만히 있어!!”

그대로 벽에 몸을 부딪치자 벽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곧 벽 너머로 나를 쫓아왔다. 옆에서 괴물이 하는 말은 애써 무시하고 접선 장소로 향하니 알베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골목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매일 밤마다 길을 돌아다니던 게 이런 쓸모가 생길 줄이야. 거기에서 몸을 숨기니 더는 추적이 없었다. 물론 계속 여기서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곧 우리를 찾아내겠지. 그 사이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꺼내야 한다.

설마 네가 나를 이렇게나 아끼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 고마워, 친구.”

그 말에 순간 흥분하여 얼굴을 세게 때리고 말았다. 알베르트는 말리지 않았고, 녀석도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바보 같은 말 말고 묻는 말에나 답해. 왜 내 몸을 뺏었지? 왜 이곳에서 사람들을 죽였고?”

, 질문이 많네.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괜찮겠어?”

내가 다시 때리려고 하자, 괴물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빨리 말할게. 네 몸을 빼앗은 이유야 알잖아? 괴물인 것 보다는 인간인 편이 살기 편하니까. 다음 질문은 아까 대답한 것 같은데? 신의 도시니 하면서 어둠에 찌들어있는 도시를 청소하기 위해서지.”

그딴 적당한 말로 넘기지 마!!”

안 그러면? 네가 뭘 할 수 있지? 나를 죽이려고? 그런 게 협박이 될 리가 없잖아.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시끄러워!!”

나는 다시 한 번 놈의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피투성이가 된 내 얼굴을 보는 것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는 게 좋겠어. 이래서야 질의응답이 제대로 안 되잖아.”

분노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나를 알베르트가 막아섰다.

죽이지 못한다고? 그럴 리가. 너를 이대로 살려두면 몇 백 명이 더 죽을지 모르는데. 이 녀석은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하는 놈이다. 너처럼 모든 게 장난인 녀석이 아니야.”

그는 괴물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어차피 중요한 정보는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말리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 목적은 놈을 저지하는 것. 정보 획득은 바라지도 않았다.

, 잠깐만. 죽기 전에 놈을 되찾는 법만 말해도 될까?”

?”

놈이 갑자기 꺼낸 말 한마디에 알베르트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아니, 됐어 알베르트. 그냥 쏴.”

그래도 되겠어? 앞으로 영원히 그 냄새나는 몸으로 살게 될 지도 모르는데?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자신을 속이면 안 되지.”

그는 혀를 멈추지 않고 놀렸다. 물론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지금도 머리에선 당장 놈을 죽여야 한다고 하지만, 가슴 속 한 편에서는 놈의 말을 수긍하고 있다. ‘물론 죽이기야 할 거지만, 그 전에 말 한마디 정도 듣는다고 문제가 될까?’하고 말이다. 그리고 내 이기심과 알베르트의 동정은 같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빨리 이야기해. 방금처럼 적당히 말하면 바로 죽인다.”

알겠어, 걱정하지 마. 내가 인간이 된 방법은 간단해. 네 심장을 먹었지. 그러고선 눈을 뜨니까 몸이 바뀌어있는 거 아니겠어? 안 믿는 건 자유지만, 지금도 이 가슴에는 심장이 없어.”

심장이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인간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러면 이 녀석은 지금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알베르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괴물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진짜야. 박동이 없어.”

박동이 없다고? 놈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가? 내 몸에 심장이 없다고?

믿음이 부족하네. 만지지 않고 믿어주기를 바랬는데. 아무튼, 너도 원리는 같을 거야. 인간의 심장을 먹어버려. 그러면 그 흉측한 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이건 곤란하다. 나는 놈과 내 몸을 다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라면, 나는 결코 내 몸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거기에 이 몸을 반드시 남에게 주어야 한다면.

저기 있다!! 쫓아라!!”

경찰에게 들키고 말았다. 놈에게서 더 들을 말도 없으니, 이제는 떠날 때이다.

그럼 잘 가, 괴물과 괴물 사냥꾼. 가는 길은 조심.”

, 하고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두 발 더. 모두 괴물의 머리를 관통하였다. 내 몸이 시체가 되는 건 비위가 상하는 일이다.

, 바로 출발하자!! 이제부터가 더 문제야!!”

그 말대로, 이제 우리는 수많은 경찰을 뚫고 이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 경찰들은 가차 없이 우리를 쫓을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사살도 하겠지.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은 살인마를 탈출시킨 장본인이니까. 나는 곧장 알베르트를 안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마을의 남서쪽. 가장 빠른 길로 간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그 다음은 아직 생각해놓지 않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등 뒤로 총성이 터진다. 내 등, 다리, 어깨까지. 몸이 큰 만큼 총도 잘 맞는 모양이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죽으려고 이런 짓을 한 것이 아니니까. 놈을 죽이고, 올루스도 구하고, 우리도 살아남는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나는 무릎 뒤쪽에 총알을 맞아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알베르트도 날아갔지만, 곧바로 내게 달려왔다.

조카야!!”

알베르트.”

말하지 마. 괜찮을 거야. 경찰이 데려가서 치료를!!”

해줄 리가 없잖아. 살인마를 탈출시킨 놈인데. 게다가 내 몸은 괴물이라서 치료할 수 없어.”

이딴 상처도 치유 못하는 놈이 괴물이겠냐? 됐으니까 말하지 말라고!!”

내 두 번째 삶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알베르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모든 결말에 낭만을 꿈꾸고 있었던 모양이다. 괴물을 만난 순간에도 분명, 놈을 쓰러뜨리고는 멋지게 도망치는 우리를 상상했겠지.

온몸에서 피가 흐른다. 그의 말은 이제 잘 들리지 않지만, 비장한 표정으로 비장한 말을 하고 있는 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상황에 맞는지도 모르는 말을 하였다.

알베르트. 심장을 준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마. 나는 괜찮으니까.”

그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슬퍼서 울고 있을까? 멋대로 생각한다고 짜증을 낼까? 이제는 눈도 흐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 느껴진다. 이거면 된 거겠지. 도시도 구해냈고, 내 고향을 위한 복수도 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 그뿐인 이야기이다.

죽기 싫다.”

그런 멋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눈앞이 새하얗다. 지옥에 온 건가?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사후세계는 아닌 모양이다. 갑자기ㅣ 많은 빛을 쐰 탓에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니 내 두 손이 보인다. 다리도, 몸통도, 항상 숨기느라 힘든 꼬리도, 분명하게 육체로 존재하였다. 상처도 하나 없는 채로.

왜 살아있는 거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길가였다. 그리고 내 몇 발짝 앞에는 한 남자가 서있다. 금발에 정장 차림인 중년. 누가 보아도 그 남자였다.

알베르트!!”

그는 내 목소리가 놀라웠는지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달려와 끌어안았다.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다행이다!!”

그의 진심에 대단히 감동받았지만, 나는 알베르트가 바라보고 있던 광경에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보라색 불꽃이 하늘에 피어있었다. 이미 올루스의 반을 덮는 크기로, 내려앉는 순간 도시가 소멸할 수준이었다.

알베르트,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왜 살아있는 거지? 저 불길은 뭐고?”

네게 눈길을 줄 상황이 아니었어. 네 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저건. 아마 괴물 짓이겠지.”

우리가 실패한 건가?”

최악이다. 놈을 죽이지도 못했고, 도시를 지키지도 못했다. 결국 우리의 행동은 놈을 탈출시켜줬을 뿐이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놈을 죽여야만 한다. 지금이라도 막지 않으면 국가 단위의 문제가 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불길을 바라보는 알베르트에게서는 공포가 느껴졌다. 놈과 싸우는 공포가 아니었다. 놈을 막지 못했을 때, 저 놈이 이 도시를 벗어나 다시 인간 사회에 숨어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떨리는 손을 보자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젠장, 영문을 모르겠는 것투성이인데, 해야 할 일만 정해져 있다니. 이런 게 제일 기분 나쁜데.”

나는 불평을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기분 탓인지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든다. 상처가 치료된 덕분일까? 아니면 목표가 명확한 덕분일까? 어느 쪽이던 몸은 잘 움직인다. 알베르트는 나만큼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지만,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해야 할 일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작전은 있어? 다시 태어나자마자 통닭구이가 되기는 싫은데.”

, 언제는 작전을 자고 싸웠나? 눈치를 보다가 총으로 제압, 불태워서 죽인다. 그것밖에 없지.”

그건 그렇지만, 놈은 기름 피가 흐르지 않잖아? 회복이 더 빠르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 가는 길에 기름을 챙기면 되니까. 화염병처럼 만들어서 던질 거다.”

그거면 되길 바라야겠네. 그럼, 바로 가자.”

우리는 불길의 중심을 향해 달렸다. 내가 부활한 이유도, 거기에 담긴 의미도 모르는 채로.

 

도시는 혼란 그 자체이다. 지금까지 집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쳐나와서는 도시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경찰들이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모양이다. 우리는 도시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몰이치는 사람들에게 부딪치며 나아가는 모양새였다. 이대로는 시민과 도시 모두 불길에 휩싸이고 만다. 나는 알베르트를 안고서 높게 뛰어올랐다. 그렇게 지붕에 안착해 그대로 달렸다. 몸의 상처는 물론 피로도 사라진 덕분에 경관에게서 도망칠 때보다는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는 불길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계획대로 화염병을 만들며 괴물이 죽은 곳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놈의 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았다. 놈은 머리를 재생시키고 이곳을 떠난 것이다. 남은 단서는 하늘의 불길 뿐. 우리는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곳, 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달렸다. 그곳에 다가갈수록 불타는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괴물이 가까이 있다는 증거이자, 우리가 늦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중앙광장은 시체로 덮여있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시민들, 괴물을 제압하려던 경찰들, 그들 중 누구도 서있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느끼고 대성당 위를 올려다보았다. 괴물은 신이라도 된 양 탑 꼭대기에 서서는 이 도시를 부감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향의 모습이 떠올랐다. 타오르는 불길, 목이 없는 아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그때와는 다르다. 힘이 있고, 의지가 있고, 무엇보다 파트너가 있다. 이번에야말로 죽인다. 내 인생 뒤에 시작된 이야기를, 여기서 끝낸다.

내려와!! 이 괴물 자식아!!”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각오를 다지고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괴물은 내 목소리를 듣고는 우리 앞으로 뛰어내렸다.

어라? 용케 둘 다 왔네? 적어도 한 명은 죽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너는 왜 살아있지? 총알이 뇌를 관통했을 텐데?”

괴물은 그 말을 듣더니 가볍게 코웃음 쳤다.

진심이야? 손에서 불도 쏘는 인간이 총알 정도로 죽는다고? 그게 더 이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알베르트가 쏜 총알이 놈의 머리를 관통했다. 나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화염병을 꺼내 던졌다. 병은 괴물의 몸에 적중하였고, 그대로 놈의 온 몸을 불태웠다. 놈은 강력한 불길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잠시 뒤, 그곳에는 검은 시체만 남았다. 하지만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정말, 말하는데 끊기나 하고. 이래서야 인간과 괴물이 다른 게 뭐냐고.”

나쁜 예상이 적중했다. 놈의 몸에서 살이 돋아나더니, 완전히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빠르게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래서는 대책이 없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놈을 죽일 방법. 죽어서도 부활하는 놈을 처치할 방법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최대한 시간을 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놈은 하늘에 쏜 불길을 도시에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 이대로 시민들이 대피할 시간만이라도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뭐야, 공격 안 해? 이걸로 끝이야? 그럼 내가 공격한다?”

괴물은 우리를 향해 손바닥을 펼치더니, 그대로 커다란 불길을 뿜어내었다. 우리는 간신히 피해냈지만, 이대로 가면 시간을 벌기는커녕 순식간에 당하고 말 것이다.

조카야! 칼 가지고 있냐?”

아니, 없는데? ?”

그럼 손으로 해도 상관없어. 어떻게든 놈의 몸과 목을 분리하는 거야. 그러면 아마 재생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겠지.”

알겠어. 그렇게 할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라도 놈에게 접근하려면 우리 둘이 서로 떨어져있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괴물은 양팔을 벌려 우리 둘을 향해 각각 불을 쏘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유롭게 피한 덕분에 놈에게 접근할 만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괴물의 목과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뜯어내었다. 내 것도 아닌 몸에 미련은 없지만, 굉장히 비위가 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걸로 놈은 당분간 회복하지 못할 터이다. 그런 생각에 방심하고 말았다.

야만적이기는.”

괴물의 몸통이 내게 발차기를 날렸다. 평범한 인간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각력이 내 복부를 강하게 가격했고, 나는 그대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괴물의 몸통은 내가 놓친 머리를 받아들더니, 그대로 목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떨어졌던 목이 다시 결합되었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무심결에 말하고 말았다. 불태워도 재생하고, 목을 잘라도 행동한다. 이런 녀석을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괴물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너희 둘은 이 도시에서 떠나라. 내가 청소할 것은 이 올루스의 인간들뿐이야.”

청소? 전부터 웃긴 이야기를 하네. 대체 너는 어떻게 인간을 청소할 권리를 얻었다는 거지?”

보고 모르겠어? 우리들은 인간에 대한 살의와 혐오만으로 존재한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의 의지이다. 타락한 인간들을 정화하기 위해 불과 부활의 힘을 가진 존재를 내려 보내신 것이다.”

미안한데, 나는 종교가 없는데도 네 말이 헛소리라는 건 알겠거든? 내가 이상한 거냐?”

너도 이 도시를 봤잖아? 신을 믿는다는 자들이 색욕에 빠지고, 권력자들이 탐욕에 빠지며, 노동자들이 나태에 빠졌다. 이제는 손을 써야 할 때야.”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자세히는 안 봤거든. 아무튼, 네 생각은 알겠어. 고상한 척 사람들을 죽이고 싶다 이거지? 이래서야 괴물이랑 인간이 다른 게 뭐냐? 바보 같아서 웃음이 다 나오네.”

나는 계속 말대답을 했다. 이미 승산은 없으니 시민이 도망칠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마땅치 않았다. 놈은 손날에 불을 둘러 나의 양 다리를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단면을 발로 차는 탓에, 나는 고통에 뇌가 잠식당하는 듯했다.

어차피 지금 올루스는 내 불의 벽으로 막혀있다. 그런 말로 시간을 끌어도 소용없어.”

그러더니 놈은 알베르트의 눈앞까지 달려가 그를 강하게 찼다. 몸에 충격이 컸는지 알베르트는 일어나지 못했다. 괴물은 놈을 향해 걸어갔다. 이대로 가면 알베르트가 죽고 만다. 뭐라도 해야만 한다. 뭘 할 수 있지? 다리가 잘려 달릴 수도 없다. 남아있는 화염병을 던질까? 어차피 별 효과도 없을 텐데? 말을 걸어서 막는다? 이제는 그런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이 없나? 방법이.

그러고 보니, 놈은 왜 나를 죽이지 않은 거지? 몸을 불태우던지, 심장을 베던지 하면 될 일이다. 굳이 나를 이런 상태로 만드는 이유가 있는 건가? 생각해보면 경찰과 시민은 수도 없이 죽인 녀석이 우리와는 대화도 하고 도망치라고 권유도 하였다. 거기에다가 아까 총에 맞아 죽을 뻔했을 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치료되었다.

괴물에게는 내가 죽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런 생각에 도달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애초에 그의 행동이 별다른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알베르트가 죽고, 그 다음에는 내가 죽겠지. 어차피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공포를 다스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알베르트!! 머리를 날려버려!!”

나는 내 팔로 심장을 꿰뚫었다. 괴물은 당황하여 순간 이쪽을 돌아보았지만, 알베르트는 곧장 괴물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놈은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뭐하는 거야, 멍청아!! 싸우는 중에 자살을 하고 있어?!”

미안해, 반드시 확인해야할 게 있었어.”

나는 내 가슴을 더듬었다. 가슴에 생긴 바람구멍은 사라졌고, 피도 제대로 흐른다. 거기에 더해서 잘렸던 다리들도 가져다대니 다시 붙었다. 마치 다른 괴물들처럼 말이다.

이걸로 알았어. 괴물은 나를 죽이지 못해. 정확히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으면 놈도 죽어버리는 거야.”

그걸 확인하겠다고 심장을 뚫어? 그냥 내가 약하니까 먼저 죽이려는 걸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미안하대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단 말이야. 아무튼 이제 놈을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아니, 불가능하다.”

괴물은 망가진 머리를 수복하고 일어섰다. 그 표정에서 더 이상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괴물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건 나다. 네 심장에 구멍이 나는 것 정도는 바로 회복시킬 수 있어.”

네가 나를 회복시켜? 마치 우리가 연결되어있다는 것 같은 말투네.”

그야 사실이니까. 우리는 지금 서로가 있기에 서로 존재하는 관계에 있어.”

그거 이상하네. 네가 내 심장을 먹고는 우리 몸이 뒤바뀐 거잖아? 그런데 왜 네 괴물의 힘으로 내 몸이 회복되는 거지?”

괴물이 인간을 먹어서 얻을 수 있는 건 언어나 지식만이 아니야. 초자연적인 능력도 있다. 그날 나는 산에서 아이를 먹었다. 그리고 심장을 먹은 인간을 하수인으로 부리는 능력, 또 그 하수인과 정신을 맞바꾸는 능력을 얻었지. 나는 그 힘으로 네 몸을 되살리고, 거기에 내 정신을 집어넣었다. 하수인은 인간이 아니야. 죽더라도 살아나지. 나는 불사신이 된 거다. 하지만 실수한 것이 있었어. 이 몸은 어디까지나 하수인.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인인 괴물의 몸에 정신이 남아있어야 했던 거야. 원래는 내 몸을 얻은 너는 죽일 계획이었지만 이래서야 죽일 수가 없었어. 그래서 너를 살려두었다. 네가 살아있다고 한들 문제는 없었고, 그 몸에 괴물의 능력을 잠시 양도하여 몸을 치유시킬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거든.”

되게 복잡하네. 아무튼, 너는 내가 살아있어야만 한다는 거지?”

그리고 나는 너를 죽게 두지 않는다. 이러면 간단한가?”

놈이 나를 살리는 이유는 알겠지만, 이래서는 크게 바뀌는 것이 없다. 결론은 우리 둘 다 죽을 수 없다는 것뿐이다. 내 심장이 뚫리고 알베르트의 총에 맞는 그 짧은 사이에도 나를 되살리는 속도이다. 웬만한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겠지.

그리고, 슬슬 시간도 끝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군.”

괴물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늘의 불길은 도시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민을 탈출시킨다고 생각하며 번 시간이, 오히려 놈의 불길이 커지는 시간을 벌어다준 것이다.

이걸로 이 도시는 멸망한다. 그 잿더미 위에는 네놈과 나만이 남아있겠지. 그러면 너에게는 다시 자유를 주마. 네 덕분에 나는 다시 태어났으니 말이다. 그 정도 보상은 주어야겠지.

저런 쓸데없는 말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다. 저 불길이 도시에 닿을 때까지 얼마나 걸리지? 5? 3? 그 안에 뭘 할 수 있지? 괴물이 죽는다고 해도 괴물이 만든 불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건물이나 사람에게 붙은 불길. 저 하늘의 불길은 괴물이 직접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테니, 괴물이 죽는다면 형태를 잃고 흩날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내가 살아있는 한 저 놈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지. 그렇다면.

알베르트, 화염병은 남아있어?”

그래, 두 병이나 남아있다. 하지만 쓸 곳이 없잖아?”

아니, 이제 생겼어. 내가 신호하면 던져줘. 알겠지?”

알겠다. 확실히 던지지.”

알베르트는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비장하게 대답하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였다. 머리 위로는 불길이 내리고 있다. 기회는 한 번 뿐. 이번에 실패하면 정말로 모두 죽어버리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좋은 예감이 든다.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나는 자세를 잡고, 온힘을 다해 달려가 괴물을 붙잡았다. 그대로 계속 달려 놈을 성당의 외벽에 박아놓고, 얼굴을 난타하였다.

이런다고 바뀌는 게 있을 건 없어. 이 도시는 멸망하고 너만이 살아남는다. 그날하고 똑같아!!”

지금이야, 알베르트!!”

나는 놈의 말도 듣지 않고 외쳤다. 알베르트는 바로 병의 심지를 태우고는 이쪽을 향해 던졌다.

, 너 설마!!”

괴물은 낌새를 눈치 채고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내가 강하게 붙잡는 탓에 벗어날 수 없었고, 그 사이 병은 포물선을 그리며 내 몸에 부딪쳤다. 타오르는 화염이 나와 괴물, 그리고 성당까지도 집어삼켰다.

이런 짓을!!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너를 죽이려면 너와 내가 동시에 죽어야 해. 그렇다면 달리 방법이 없지. 그리고 내 삶은 그날 그 산에서 끝났다. 네가 억지로 늘린 목숨을 지금 돌려주는 것뿐이야.”

젠장, 젠장!! 이렇게 죽을까보다!!”

놈은 내 팔을 잘라내고는 내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 떨어진 거대한 십자가는 우리 둘을 짓누르며 더 크게 타올랐다. 놈의 비명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몸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무리인 듯하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걸로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마쳤다. 오랜만에 꿈을 꿀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이가 있다. 아이의 친구가, 그 가족들이, 그들이 사는 집이 있다. 제간 마을이다. 눈이 내려 모두가 잠든 마을. 몇 년 째 변하지 않는 풍경 그대로이다. 나는 창밖으로 나무를 매일같이 내다본다. 이 마을에서 변하는 것이라고는 저 나무에 앉은 새가 몇 마리인가 정도니까.

새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아이들이 달려오는 탓이다. 매일같이 쫓고 쫓기기만 하는 놀이가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 한 아이가 넘어져서, 나는 걱정이 되어 달려 나갔다.

괜찮니? 많이 다쳤어?”

아뇨, 하나도 안 아파요.”

아이의 다리를 보니 상처는 크지 않았다. 눈이 충격을 흡수해준 모양이다.

다행이다. , 네 이름이.”

로저예요. 그새 이름도 까먹었어요?”

그래, 맞아. 로저였지. 로저.”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수한 미소를 보니 이유 모를 눈물이 흘러서 급하게 닦았다.

그런데 형, 벌써 와도 괜찮겠어요?”

무슨 뜻이야? 나는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아직 본 것보다도 못 본 게 더 많잖아요? 바깥에는 1년 동안 비만 내리는 마을도 있고, 넓은 강 위에 세워진 마을도 있어요. 눈에 보이는 곳이 전부 모래인 곳도 있고요. 그런데도 벌써 돌아오는 건 아쉽잖아요?”

아니,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나는, 나는.”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이제야 떠올랐다. 이 아이는 그날 산을 올랐던 아이이다. 내가 구하지 못했던 아이. 그리고 이 마을도. 내게 힘이 없는 탓에 등져버린 마을이다.

나는, 너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는데. 내가 늦은 탓에 너는 괴물한테. 거기에다가 이 마을도 사라져버렸어. 내가 아무것도 못해서!!”

형은 너무 상냥해요. 자기 팔에 담기지 않는 것까지도 담으려고 하죠. 그런 형이 안쓰럽지만, 그렇기에 이렇게나 잘 해낼 수 있었던 거겠죠?”

그래, 나는 해냈어. 괴물을 쓰러뜨렸다고. 그러니 이제 쉬어도 되잖아? 이곳에서 쉬게 해줘!!”

당연하죠. 형은 충분히 쉴 자격이 있어요. 하지만 이곳은 형이 언젠가 돌아올 곳. 형의 안식처는 아니에요.”

안식처? 그게 무슨.”

안녕, . 다시 만날 거예요.”

아이는 내게 등을 돌리고는 걸어갔다. 나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쫓았다.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나와 함께 있어 달라고. 그러다 흩날리는 눈이 번져서는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끝없는 하양 속에서 헤매다가, 눈을 떴다.

 

처음 보는 오두막집이다. 처음 괴물이 되고는 살았던 그 오두막이 떠오르는 곳이다. 나는 내 몸을 살펴보았다. 괴물과 싸워서 얻은 상처는 모두 사라져있었다. 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현관을 보니, 알베르트가 빵을 들고서 들어왔다.

. 어서 와, 알베르트.”

내가 멋쩍게 인사를 하자, 알베르트는 들고 있던 것을 전부 던지고 내게 몸을 던졌다.

몸은 괜찮아? 네가 누군지는 기억나고? 그보다 언제 일어난 거야?”

조금 전에 막 일어났어. 몸이나 머리는 완전히 멀쩡한 것 같고. 괴물이랑 함께 불탄 다음부터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건 정상이지?

그는 내 말에 안심하였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빵을 하나 들고서 입에 집어넣었다.

, 여긴 어디야?”

안식처야. 일단 숨어 지내야 하니까. 걸을 수는 있겠어?”

. 문제없을 것 같아.”

그럼 따라 나와 봐. 보여줄 게 있어.”

 

집 앞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어느새 겨울이 된 모양이다.

알베르트, 나는 얼마나 잠자고 있던 거야?”

한 달. 내 생각보다는 일찍 일어났어.”

우리는 눈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우리 눈앞에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어두운 하늘에서 내리는 눈들이 바다에 닿아서는 사라진다. 꿈꾸던 것처럼 여름에 보는 석양은 없었지만, 그보다도 훨씬 낭만적이었다.

, 마을에서 벗어난 적 없다고 했지? 그래서 이걸 보여주고 싶었지.”

고마워. 예쁘네. 그래, 알베르트. 여기는 어디야?”

말 했잖아? 바너스에 괴물 목격담이 있다고. 어차피 올루스에 있어봤자 범죄자 취급일 거고, 그냥 빨리 도망쳤지.”

그랬구나. 도시는 멀쩡하고?”

그래. 놈이 죽으니까 불길은 사라졌다. 아마 아직도 복구 작업 중이겠지.”

그래. 놈은 죽었구나. 그럼, 나는 왜 살아있는 거지? 내가 살아있으면 놈도 죽지 않잖아?”

나라고 알 리가 있나. 물론 내가 불을 끄고 구해내기는 했다만, 살아난 건 네가 멋대로 살아났거든. , 기적 아닐까?”

기적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순간, 나와 괴물이 함께 죽을 순간에, 괴물은 삶을 포기한 것 아닐까? 자신과 나, 어느 쪽을 살려도 결국 자신은 죽게 되니까. 그래서 선택을 포기하고는 그대로 죽은 것이다. 덕분에 괴물의 힘은 내게 들어왔고, 나는 혼자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죽고자 했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로저가 내 등을 떠밀어준 덕분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좋은 동료를 뒀어.”

뭐냐, 낯간지럽게. 아무튼, 할 말은 이게 다야. 이제는 네가 말해봐.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어떻게? 무슨 뜻이야?”

네 목적은 몸을 되찾고 괴물에게 복수하는 거였잖아? 결과야 어떻든, 두 개 다 끝을 봤어. 이제 네 앞날은 네 선택에 달렸다. 괴물을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바보와 함께 떠나거나, 아니면 다른 마을에 정착해서 편하게 살던가.”

확실히, 이제 내 삶을 지탱하던 목표는 사라졌다. 뭘 목적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알베르트처럼 이타적인 인간은 아니니까. 괴물을 쓰러드리고 사람을 구한다는 것만으로는 의지를 다질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적당한 이유를 생각해냈다.

마을에 살았을 때 꾸던 꿈이 있어. 올루스 대성당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석양이 지는 바다를 거니는 것. 마을 안에서 살다가 죽을 내게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지.”

잘 됐네. 둘 다 이뤘잖아.”

맞아. 하지만 아직 본 것보다도 보지 못한 것이 더 많아. 세상에는 1년 내내 비가 내리는 마을도 있고, 넓은 강 위에 세워진 도시도 있어. 그런데 벌써 돌아간다니, 그런 아쉬운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러냐. 바보 같은 선택 해줘서 고맙다, 바보야.”

별말씀을, 바보 씨. 그럼, 첫 목표는 어디야?”

바너스야. 네가 쓰러져있는 동안 괴물이 어디 있는지는 파악해뒀어. 가서 없애기만 하면 돼.”

딱 좋네. 바로 가자고, 알베르트.”

그래, 조카야. 가자.”

 

내 인생은 끝났고, 인생 뒤에 시작된 이야기도 끝을 맺었다. 이제부터 내가 걷는 건 내가 만족하기 위한 에필로그이다. 언젠가 돌아갈 곳에 가서 후회하지 않도록. 과거의 내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남았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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