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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나라 上

정준희2020.12.26

 

 

 

 

 

 

 

 

 

괴물의 나라

 

모든 것을 뺏어간 괴물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요즈음은 날마다 창밖의 눈 쌓인 나무를 보고는 한다. 그러고는 새가 몇 마리 앉아있나 세어보고, ‘오늘은 어제보다 많네.’라던가, ‘오늘은 어제보다 적네.’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이 마을에서 달라지는 것은 그것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제간’, 볼 것 없는 농촌이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마을 사람 모두가 농사로 먹고살고, 아마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경찰이 되고 싶었고, 몇 년 전까지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20살을 눈앞에 둔 지금은, 글쎄. 막연히 이 마을을 나가고 싶은 것 같다. 올루스의 대성당도, 해변의 석양도 보고 싶다. 그 밖에도 가보고 싶은 곳은 많지만, 어차피 농부가 될 내게는 부질없는 일이다. 마을을 나서지 못하는 내 일상의 낙이라고는 읽다가 너덜너덜해진 책 몇 권과, 나무에 앉은 새만 남은 것이다.

나무를 보다 보면 마을 아이 네 명이 뛰어노는 것이 보인다. 매일 똑같이 쫓고 쫓기는 놀이만 하지만, 저것도 나름 괜찮은 구경거리이다. 새들을 보다가 아이들을 구경하고, 책을 읽고서 잠든다. 요즈음은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아이는 세 명만 불안한 듯 조심스레 돌아다녔다. 보아하니 아이 한 명이 숨어버렸던가,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눈치였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다 아는 내용이어서 결국은 아이들에게 눈이 갔다. 나는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는 곧장 도망쳤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무언가 이야기하더니, 다시 내게 달려왔다.

, 혹시 우리 도와줄 수 있어?”

보아하니 나를 믿어도 될지 의논한 모양이다. 나야 처음부터 도와줄 생각으로 나온 것이니, 당연히 수락했다.

당연하지. 뭐가 문제인데?”

대답을 듣고 나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아이들 처지에서는 무언가 중대한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지만, 내게는 그런 모습이 못내 귀여웠다. 아이들은 이내 결심하였는지, 내게 사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사실은 어제 우리끼리 괴물의 산이야기를 했거든. 로저가 꼭 가보자고 이야기하더니, 우리가 안 간다고 하니까 혼자서 간 것 같아. 그래서 걱정이 돼서.”

괴물의 산은 이름만 거창한 마을 뒷산이다. 옛날부터 아이들이 산에 갔다가 행방불명되고는 해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절대 산에 오르지 말라고 말해왔다. 그러다가 말이 붙고 붙어서는 괴물이 산다는 이야기까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지 말라고 말할수록 가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적어도 로저는 그랬던 모양이다.

어른들은 다 집에 있지? 굳이 말씀드리지 마. 해가 지기 전에 데리고 올게.”

그제야 아이들은 안심하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아마 그 아이가 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놀고 있을 생각이다. 하기야 아이들이 하던 놀이는 넷이든 셋이든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마을은 흰색으로 잠들어있다. 눈 위에 있는 거라곤 방금 뛰어나간 아이들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집안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도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이야 눈 위에서 시린 손을 부여잡는 처지지만. 조금 후회되기도 했지만, 내심 새로운 일과가 즐거웠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산을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 앞 나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새가 없었다.

 

아이의 발자국을 따라 산 중턱까지 올라왔지만 눈이 쌓여서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빨리 아이를 찾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한겨울의 산은 어린 아이가 있어도 될 날씨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가 실수로 곰을 깨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순히 발이 미끄러질 수도 있고, 아니면 길을 잃고서 며칠을 추위 속에서 떨게 될지도 모른다. 가면 갈수록 나쁜 생각만 늘어나서,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잊은 채 주위를 걷고만 있었다.

해가 저물 즈음, 나는 온몸에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최대한 두껍게 입고 나왔지만, 더 이상 정상적으로 산을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차라리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서 어른들에게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중, 어디선가 낫으로 돌을 긁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불안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걸어갔다. 곰 같은 위험한 동물인 것 같은데, 아이가 저쪽에 있다면 큰일이다. 그렇게 잠시 걷자 깊고 어두운 동굴이 나왔다. 소리는 이 동굴 안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입구 쪽에 눈이 갔다. 눈 위에 붉은 피가 가득 묻어있었다.

로저! 안에 있어? 로저!”

나는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대답이 돌아오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돌아와서는 안 됐다.

글쎄? 있을까?”

 

눈뜨니 밤이다. 밤이 돼버렸다.

나는 눈 위에 누워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자고 싶었다. 그런 나를 조롱하듯이 피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죽었다.

나는 동굴 쪽으로 기어갔다.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몸은 문제없이 움직인다. 동굴 입구에는 아이 몸이 있었다. 목이 없는 아이의 몸이.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는 울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울었다.

 

아이를 안고서 산에서 내려가는 길.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동굴 앞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짖자,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동굴에 다가갈 때부터 들리던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동굴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나는 확신했다. 그건 괴물이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마을로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위험하다고 알려야 한다. 산에 정말로 괴물이 있다고, 어서 도망쳐야 한다고 알려야 한다. 나는 휘날리는 눈을 맞으며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다 겨우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라색 불길에 타오르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타올랐다. , , 사람들, 늘 바라보던 나무, 뛰놀던 아이들, 모든 것이. 다리에 힘이 빠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불길 한 가운데에 한 사람이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이걸 꿈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아니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였다. 내가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내 몸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네 개의 손가락, 커다란 초록색 몸, 뒤에 달린 꼬리까지. 내 몸은 인간의 몸이 아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정신을 잃은 사이, 나는 괴물에게 내 몸을 빼앗긴 것이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공포, 절망, 분노가 뒤섞여서 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돌려줘! 내 몸도, 이 마을도, 이 아이도!! 돌려달란 말이야!!”

나는 울부짖었다. 내 목에서 산에서 들은 역겨운 목소리가 난다. 괴물에게는 그런 내가 하찮게 보였던 것 같다.

너는 살려주마. 오늘은 내가 새로 태어난 날이니까. 조금은 자비를 보여야겠지.”

놈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나를 지옥에 버려둔 채, 그렇게 가버렸다. 나는 놈을 쫓지 못했다. 두려웠다. 한 걸음이라도 놈을 향해 내디뎠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는 것뿐이었다. 울었다. 차가운 로저의 몸을 안고서 울었다. 내 더러운 육신을 느끼며 울었다. 타오르는 마을의 열기를 느끼며 울었다.

그렇게 내 인생이 끝났다.

 

 

 

어느새 밖은 봄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키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하루 일과는 그것뿐이다. 숲속에서 빈 오두막집을 우연히 찾은 지 2달째, 나는 한 번도 집을 나서지 않았다. 밥도 물도 먹을 필요가 없고, 심지어는 잠도 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몸은 그런 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그냥 밖을 나서고 싶지 않았다. 이 몸으로 어디를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작은 변덕을 부렸다. 숲속에 있는 우물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오두막 밖으로 나가서 기지개를 켜고는 우물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 번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혀버렸다. 아무래도 이 키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걷고 걸어 작은 우물에 도착했다. 나는 물을 몇 모금 마셨다.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지만, 이 정취는 좋다. 그러고는 우물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온몸의 초록색 털, 이마에 난 작은 뿔 두 개, 성인보다 반 정도 큰 키, 뒤에 난 큰 꼬리. 우물은 이게 나라고 한다. ,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꺄아아아아악!!”

비명이 숲속에 울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한 여성이 나를 바라보면서 주저앉아있다. 그럴 법도 하다. 이런 이상한 게 숲속에서 나타났으니까. 물을 마시려고 한 게 실수였던 것 같다. 나는 도망치는 여성을 뒤로한 채, 다시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밤에 일어났다. 아무래도 문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조심스레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닫아둔 채로 말했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옆 마을에 사는 사람입니다.”

옆 마을이라면 아마 클라시코마을이겠지. 이 산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목소리로 보아 중년의 남성인 것 같다.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

무슨 일로 이런 산에 찾아오셨죠? 밤이 깊은데요.”

그렇지요. 잠을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제 옆집의 처자가 이 근처에서 괴상한 동물을 보았다고 해서요. 혹시 보신 일이 있으신가 하여 왔습니다.”

그 여자구나. 역시 들키면 안 됐던 걸까? 아무래도 우물에 간 게 실수였던 모양이다.

글쎄요? 저는 본 적이 없네요.”

그러신가요? 이런 산속 오두막에 살고 계시니, 한 번은 보셨을까 싶었는데요.”

제가 못 봤던가, 그분이 잘못 본 거겠지요. 대답이 되었을까요?”

내가 대충 얼버무리니 노인도 적당한 대답을 내뱉었다.

, , 보지 못하셨다면야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남자는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문밖에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러시죠?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 저기, 여쭤볼 게 있어서요. 이 오두막에는 알베르트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거든요.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요. 혹시 어디 가셨는지 알고 계시는가요?”

알베르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대로 이야기가 길어지면 필요 없는 오해를 사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이 노인을 돌려보내야 한다.

아뇨, 죄송합니다. 어디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실례지만, 그쪽은 누구시죠? 알베르트 씨의 지인이신가요?”

그건 왜 물으시죠? 중요한가요?”

, 방금까진 아니었는데, 이젠 중요해진 것 같네요.”

남자는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서 사납게 말했다.

너 누구야. 뭔데 이 집에 살고 있지?”

조카입니다. 저는 알베르트 씨의 조카예요.”

조카. 대충 둘러댄 말이다. 그러니 저 사람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저 노인이 알베르트를 잘 모른다면, 어찌어찌 상황을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나는 그대로 정체를 들킬 것이다. 그러고 나면, 좋은 꼴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점점 긴장이 심해져, 작은 오두막 안은 내 거친 숨으로 가득 차올랐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밖에서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발소리도, 말소리도 없다. 나는 긴장을 무릅쓰고 다시 한 번 말을 걸어보았다.

왜 그러시죠? 괜찮으신.”

총소리가 오두막을 흔들었다. 총알이 문을 뚫고 내 팔을 관통했다. 듣기 싫은 더러운 비명이 울려 퍼지며, 무거운 몸뚱이가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외동아들인데 말이야. 조카라니 신기하네.”

말끔한 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 알베르트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앞에 앉더니, 검은 턱수염을 만지며 내게 총구를 겨눴다.

그래, 주인 없는 집은 편안하셨나, 괴물 씨?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다니 말이야.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어.”

그는 내 팔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고서는 휘저었다. 극렬한 고통이 뇌를 관통했다.

이런 상처를 입어도 바로 회복하니까, 정말이지 부럽단 말이야. , 빨리 회복 안 하고 뭐 해? 괴물이라 이 정도 상처는 그냥 둬도 괜찮나?”

괴물.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그 두 글자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괴물이 아니야!”

, 그래? , 그럴 수도 있지. 네가 괴물이 아니라 돌연변이 사슴일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건 그거고, 네가 내 집을 점거하고 있는 건 맞잖아? 그럼 나도 저항할 권리가 있는 거 맞지?”

그는 일어나서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더니, 성냥갑에 긁으며 불을 붙였다.

이제 곧 너를 불태워 죽일 거야. 이 아까운 오두막까지 함께 사라지겠지. 그 전에 물어볼 게 딱 두 개가 있어. 그것만 대답해주면 곱게 죽여주지. 우선 첫 번째, 왜 그 처자를 살려 보냈지? 사람들이 네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려고?”

죽일 이유가 없잖아? 그냥 길 가던 여자인데.”

그래? 참 착한 괴물이구나? 그럼 하나만 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제간이라는 마을이 있었거든? 근데 거기가 두 달 전에 불타버렸단 말이지? 하룻밤 사이에 말이야. 혹시 아는 거 없어?”

제간. 그 이름만큼은 잊을 수 없다. 나를 낳은 마을. 내가 없앤 마을.

괴물이. 모두 불태웠어. 내 몸을 빼앗아서는, 모조리.”

괴물? 괴물은 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원. 지능이 높은 녀석일까 싶었는데, 역시 괴물은 괴물인 건가?”

아무래도 그는 내 말을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팔은 계속 피가 나고 있고, 이대로 몇 마디 말을 한다고 한들 살려줄 것 같지도 않다. ‘그래, 이런 몸으로 살 바에는, 빨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나는 그런 생각을 되풀이하며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남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창밖에 눈이 꽂혀있었다. 그러더니 다급하게 문을 나서서는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자리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이내 팔을 부여잡고서 일어났다. 아까 몸에 걸쳤던 천으로 팔을 감싸고, 무엇이 그리 놀라웠던 것인가 싶어 나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마을이 있었다. 그가 말했던 클라시코 마을이다. 나는 그의 감정을 바로 이해하였다. 그 마을도 보라색 불길이 휘날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그 마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마을이 걱정돼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적당한 이유야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아마 가장 큰 계기는 불이 보라색이었다는 거겠지. 그 색깔에 자극되어 이유도 모른 채 달리고 있다. 이 몸으로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된다던가,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잠시 달리자 알베르트가 보였다. 그는 분명 나를 죽이고 싶어 하지만, 우리 둘 다 저 마을이 목적지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속도로는 제때 마을에 도착할 수 없을 듯했다. 그렇기에 나는 공포를 무릅쓰고 그를 들어올렸다.

뭐야! 너 뭐 하는 거야?! 왜 여기 있지?!”

너도 저 마을로 가는 거지? 그 속도로 가다가는 다 죽어버릴 거야! 그러니까 일단 참아. 나는 나중에 죽어 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질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마을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10분을 달리니 마을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이 몸인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클라시코 마을은 제간 마을보다 조금 큰 크기였다. 마을이 이미 모두 불타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직은 집 몇 채가 불타고 있는 정도였다. 내가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알베르트는 거칠게 움직이며 내게서 벗어났다.

일단 확인하겠는데, 네가 한 짓은 아닌 거지?”

애초에 그 오두막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 됐으니까 빨리 어떻게든 해결해 봐. 할 수 있으니까 달려온 것 맞지?”

그래. 저 불은 끌 수 없지만, 이 짓을 벌인 범인은 잡아낼 수 있지.”

그는 아까 성냥갑을 꺼냈던 주머니에서 이번에는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그 나침반 안에는 보라색 액체가 들어있었는데, 평평한 상태인데도 마을을 향해 쏠려있었다.

아직 마을 안에 있어. 이쪽이다!”

그렇게 말하고, 알베르트는 확신에 찬 발길로 달렸다. 나는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관계없는 곳으로 달리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 이상한 나침반과 확신에 찬 언동을 믿어보기로 했다.

몇 집을 넘어가자 그의 발길이 멈췄다. 초록색 털에 큰 꼬리, 성인보다 반은 더 큰 키와 이마의 뿔까지. 거기엔 나와 비슷한 모습의 괴물이 있었다. 내가 흥분하여 달려들려 하자, 알베르트는 나를 막아섰다.

잠깐만, 일단 진정해. 안 들켰는데 나서서 소란 피울 이유는 없잖아.”

그의 말 대로였다. 괴물은 우리가 온 것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알베르트의 대응은 침착했다. 그는 차분히 총을 꺼내서 괴물을 겨눴고, 그대로 여섯 발을 쐈다. 모두 괴물의 몸에 명중했고, 괴물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치명타는 되지 못한 듯했다. 놈은 우리에게 포악한 눈초리를 내비쳤다.

이제 어떡할 거지, 알베르트? 이걸로 끝이야?”

당연히 아니지. 어차피 저 정도 상처는 곧 재생할 거야. 그보단 피를 흘리게 하는 게 중요해. 괴물의 피는 기름이야. 몸을 피와 함께 태우면, 괴물도 더는 재생하지 못하고 죽어버리지.”

그 말을 듣고 보니, 괴물은 나와 달리 보라색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금 뒤, 피는 피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미 땅에 흘러내린 피마저 놈의 몸으로 되돌아갔고, 그럴수록 상처는 아물어갔다. 그리고 괴물은 우리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알베르트가 큰 목소리로 피하라고 말하는 것이 들리고, 다음 순간 보라색 불길이 휘날렸다. 우리 둘은 간신히 불길을 피해냈다.

입에서 불을 쏘는 거였어? 어이가 없네!”

잘 들어. 내가 놈의 오른팔에 총을 네 방 쏠게. 그럼 네가 저놈을 붙잡고, 그대로 팔을 잡아 뜯어. 그러면 피를 한가득 흘리고선 회복도 못 할 거야. 할 수 있겠어?”

반대로 묻겠는데, 넌 나를 믿을 수 있겠어? 나보고 괴물이라더니?”

괴물이고 자시고 일단 저놈이 먼저야. 할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총을 장전했고, 다시 괴물을 겨냥했다. 괴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건 우리를 향해 매섭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달려!”

알베르트는 외마디 말과 함께 총을 쏘았다. 그의 말대로 모두 괴물의 오른팔에 명중하였다. 제아무리 괴물이라도 총은 아픈지, 휘청거리며 오른팔을 부여잡았다. 나는 그대로 괴물에게 달려들어서는 놈을 깔고 앉았다. 겨우 붙어있던 괴물의 팔이 어느새 피를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그 팔을 강하게 붙잡고, 그대로 뜯어 버렸다. 아까 오두막에서도 들었던 역겨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날뛰는 괴물을 제압하고 있는 사이, 알베르트는 성냥에 불을 붙이며 걸어왔다.

잘했다, 조카야. 우리 사이의 일은 조금 있다가 정산하자고.”

알겠으니까 빨리 불이나 붙여! 이놈 날뛰는 것 안 보여?”

그는 내 말이 들리기나 하는지, 느긋하게 휘파람을 불면서 성냥을 던졌다. 나는 곧바로 몸을 피했고, 괴물의 피는 빠르게 타올랐다. 그리고 피 위에 쓰러져있던 괴물은 성난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울부짖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보여, 조금 측은하게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 일단 그 오두막으로 돌아가자고. 여기 있으면 괜히 귀찮아질 것 같거든. 네 생김새가 생김새니까 말이야.”

알베르트의 말대로, 내가 여기 있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우리는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악!!”

어딘가 귀에 익은 비명이 들렸다. 돌아보니 예상대로 아침에 보았던 그 여성이었다. 나를 보고서 놀란 것인지, 아니면 불타는 괴물을 보고서 놀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소리가 괴물을 자극한 것은 틀림없었다. 놈은 불길 속에서 여성을 향해 더러운 입을 벌렸다.

, 뭐 하는 거야! 기다려!”

알베르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여성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몸은 생각이 짧아지는 효과라도 있는 모양이다. 내가 그녀를 감싼 순간, 등에 강렬한 불길이 작열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나를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갔으나, 그것도 세 번의 총성과 함께 끝났다. 이것이 최후의 단말마였는지, 괴물은 미동도 하지 않는 채 조용히 타올랐다. 나는 고통에 물든 신음을 뱉었고, 그녀는 공포와 안도가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정말 작게, 들리지 않는 크기로 한 마디를 내뱉고는 이 끔찍한 현장에서 도망쳤다.

감사합니다.”

 

눈뜨니 아침이다. 아침이 돼버렸다.

나는 오두막 안에 누워있었다. 집안에는 나뿐이다. 온몸에 붕대가 묶여있는 것으로 보아, 알베르트가 나를 옮겨 준 모양이다. 그는 어디 있나 잠시 찾았는데, 아무래도 문밖에서 나는 인기척이 알베르트인 듯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문턱을 넘어섰다. 알베르트가 벽에 기대선 채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문소리를 듣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조카. 아까 말했던 제간 마을,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중한 말투가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의 손에 총은 없었고, 달리 나를 경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제간에서 태어나고 자랐어. 우리 마을 근처에는 산이 하나 있는데, 괴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 나는 그 산에 올랐다가 괴물을 만났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어. 눈을 뜨니 나는 괴물과 몸이 바뀌었고, 마을은 보라색 불꽃으로 완전히 타오르고 있었지.”

그럼 너는 그 괴물을 어떻게 하고 싶지? 죽여서 복수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네 몸을 되찾고 싶은 건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잊고 살고 있었어. 아니, 잊고 싶었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재앙이 내 탓이라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래. 나는 내 고향을 없앤 놈에게 복수하고 싶어. 그리고 내 몸도 되찾아야지.”

그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성냥갑을 꺼내, 입에 물고는 태우기 시작했다.

하나만 더. 왜 그 여자를 감쌌지? 너는 몸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잖아?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고.”

죽게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것뿐이야.”

알베르트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고는, 한숨을 쉬듯이 뱉어내었다.

아까 그 괴물은 상당히 약한 편이었어. 아마 네가 만났다는 괴물은 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열하고 악랄하며, 또 강할 거다. 나는 괴물 사냥꾼이야. 괴물을 몇 마리나 죽여 왔지. 그 괴물을 죽이고 싶다면, 나를 따라오지 않겠어?”

왜지? 나를 믿는 건가?”

당연히 믿지. 인간을 구하겠다고 자기 목숨을 던지는 괴물은 없거든. 그래서 따라올 거야 말 거야?”

잠시만 기다려.”

나는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혼자 갈 생각이었지만, 굳이 알베르트가 따라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을 걷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로저를 묻어둔 묘지였다.

나는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바라본 뒤, 나는 알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이제 됐어. 가자.”

네 가족인가? 유감이로군.”

가족은 아니야. 그냥 과거의 인연이지.”

그 인연에서 떠날 수 있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애초에 돌아갈 곳 같은 건 없어.”

 

내게는 삶의 목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하기도 싫은 농부가 될 처지었고, 그대로 내 인생이 끝나버렸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강력한 목표를 가져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 마을을 불태운 괴물. 놈을 찾아서 죽인다. 그리고 내 몸도 되찾는다. 지금, 나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나는 기차 안에 간신히 들어섰다. 좌석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크기라, 내게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계속 서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좌석에 어설프게 걸터앉았다. 알베르트는 내 맞은편 좌석에서 불쌍하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창피해서는 적당한 말을 꺼냈다.

그래, 알베르트. 이렇게까지 해서 가는 곳이 어디라고?”

코요트. 서쪽에 있는 크지 않은 마을이야. 포도주가 유명하다던가?”

그래, 코요트. 거기를 왜 가는 건데? 포도주나 마시러 가는 건 아니잖아?”

그는 자세를 다잡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문 때문이지. 이상한 소문 말이야.”

소문이라면, 괴물 말이야?”

뭐 들어봐. 작년부터 코요트에 사는 아녀자가 실종되는 일이 많아졌데. 그런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식인마짓이라는 소문이 돈다는 거야.”

식인마? 사람을 먹는 녀석이 있다고?”

그래. 납치범도 아니고 살인마도 아니고 식인마.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아?”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게다가 마을에 숨어있다면 내 몸과 관련된 놈일지도 모르고.”

아까도 말했지만, 괴물이 아닐 수도 있어. , 그게 더 좋은 일이지. 하지만 괴물이 맞다면 우리 담당이야.”

그러고 알베르트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기에 무슨 생각을 하나 싶었지만, 말을 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도 창밖을 바라보면서 작은 좌석과 흔들리는 기차를 즐겼다. 한 역, 한 역을 지나고, 알베르트는 겨우 내 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아직도 한참은 가야 할 거야. 한숨 자두는 게 어때?”

아니. 잠은 전혀 오지 않아. 아무래도 이 몸은 수면도 필요 없는 모양이야.”

그래. 그럼 자는 척이라도 하고 있어. 혹시라도 도착하면 깨우고.”

알베르트는 그대로 눈을 붙이고 잠들었다. 나는 역시나 잠들지 못한 채로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여섯 역을 지나고, 나는 알베르트를 깨웠다. 기차는 어느새 코요트에 도착했다.

 

알베르트는 역에서 내리자마자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전에 클라시코 마을에서 꺼낸 것과 같은 나침반으로, 역시 안에는 보라색 액체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액체는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한쪽으로 쏠리는 일 없이 고요했다. 알베르트는 혀를 쯧 하고 쳤고, 우리는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이 나침반은 뭐야? 괴물 탐지기 같은 건가?”

그런 셈이지. 이 나침반 안에 든 건 괴물의 피야. 저번에 봤다시피, 괴물의 피는 피부로 스며들면서 괴물을 회복시켜. 놈들은 자기 피만이 아니라 다른 괴물의 피도 회복에 이용하지. 그걸 역이용하는 거야.”

피는 괴물을 향할 테니, 그걸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그렇지. 물론 이것도 완벽한 건 아니야. 무엇보다도 범위가 짧은 게 난점이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걸로 탐지하기만 하면 찾은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하지만 괴물의 피라니. 역겨운데.”

그런 말을 주고받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마을 입구에 도착하였다. 코요트는 클라시코 마을보다 큰 마을이다. 하지만 밤이어서 그런지 그 소문 때문에 그런지, 사람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은 그저 고요했다.

상황이 굉장히 심각한걸. 마을이 완전히 활기를 잃었잖아. 원래 코요트는 낮에 일하고 밤에 즐기는 마을인데 말이야.”

여기 와본 적이 있어? 언제?”

“20년 전에. 하긴, 그 사이에 마을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지.”

그렇게 선술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우리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복장을 보니 경찰인 듯하다.

잠깐만요, 신분 확인하겠습니다.”

신분 확인? 그냥 마을에 들어가는 건데?”

알베르트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대답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현재 발생 중인 연쇄 실종사건 때문입니다. 반복합니다. 두 분 모두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옆에 덩치 크신 분은 얼굴도 보여주시고요.”

얼굴.”

이번에는 내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경찰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옆에서 알베르트는 눈빛과 손짓으로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솔직히 무슨 뜻인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깊게 심호흡하고, 그대로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 서! 이봐!”

알베르트도 함께 달리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나보다는 느렸다. 거기에 경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알베르트를 들고서 달렸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 산속에 들어서고 나서야, 우리는 안심하고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설마 괴물이 아니라 경찰에게 쫓길 줄이야. 이것도 계획에 있었어, 알베르트?”

아니.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네. 실종 사건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 경찰들은 치안 유지를 위해 마을을 지키는 중인 거지.”

그건 참 좋은 일이지만, 이래서야 어떻게 괴물을 찾아내지? 애초에 마을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래. 너나 나나 완전히 찍혔겠지. 여전히 나침반은 탐지도 못 하고 있고. 얼핏 보자면 완전히 막힌 상황이로군.”

그는 마을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곧장 어디론가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마을 외곽을 빙 돌더니, 어느 지점에 도착하고는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괴물이든 살인마든, 이 마을 안에 누군가가 숨어든 것은 분명해. 그렇다면 그 방법은? 어떻게 이 마을에 숨어들었는가? 오히려 이런 상황인 덕분에, 우리도 그놈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그 방법이 땅굴이라는 거야? 그럴 바에는 몰래 기어가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서 네가 초보라는 거야, 조카야.”

그럼 뭐야. 너는 프로라고?”

그는 손을 멈추고, 흙 밑에 묻혀있던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무로 된 지하통로였다.

물론이지. 가자. 마을로 들어가면 뭐라도 될 거야.”

 

길고도 긴 통로를 지나자, 굉장히 넓은 포도주 창고가 있었다. 기차가 세 칸 모여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알베르트는 가만히 서서는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아까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20년 전에.’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저기, 알베르트. 혹시 코요트에 온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줘. 너도 나를 도와주기로 했으니, 나도 너를 도와줘야지.”

다른 이유는 없어. 우린 괴물을 사냥하러 온 거야. 목적은 오직 그것뿐이지.”

알베르트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서는 벽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천장을 밀어 올리니, 뚜껑이 열리듯이 통로가 나타났다.

잠깐 와 볼래? 괴물은 너랑 비슷한 크기일 테니까, 네가 올라가 보는 게 더 낫겠다.”

그가 그렇게 화제를 돌렸으니, 나도 굳이 깊게 묻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그가 서 있는 곳에 갔다. 머리 위로 그다지 넓지 않은 통로가 보였다.

이리로 나가면 가정집이 나와. 내 생각에는 괴물도 이 통로를 사용했을 거야. 아니면 아무도 괴물의 모습을 보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괴물이 그 산에서 통로를 찾아내고, 다시 여기에서 천장을 열어본다고? 그게 가능해?”

그러게 말이다. 사실 말하면서도 이해는 가지 않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괴물이 누군가를 쫓아서 왔다던가 말이야.”

그래, . 일단 남은 이야기는 내가 저 위를 본 다음에 하자. 애초에 못 지나다니면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거니까.”

나는 천장의 구멍으로 손을 뻗어, 그곳을 집고 몸을 들어 올렸다. 성인 남자가 둘은 동시에 오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통로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인간 이야기여서, 아무래도 내가 마음 편히 오고 가는 것은 어려울 듯했다.

알베르트, 무리야. 놈도 나랑 비슷한 크기라면, 아마 가던 중에 끼었을 거야.”

그래? 알겠어, 일단 내려와. 비슷한 통로가 세 개 더 있으니까, 그쪽도 살펴보자.”

그 말을 듣고는 이 포도주 창고와 알베르트의 관계에 관한 의문이 피어올랐으나, 얼마 안 가 꺼지고 말았다. 통로 저편에 중대한 위협이 보였기 때문이다.

, 저기 알베르트? 이것도 계획에 있었어?”

그야 뭐, 인간용 통로니까. 괴물이 움직이기 힘든 거야 예상했지.”

그게 아니라, 통로에 애가 한 명 있는데?”

뭐라고?”

알베르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 그가 당황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소란을 피우니 아이는 통로 깊숙한 곳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빨리 나와 봐! 내가 직접 확인해볼 테니까!”

그 말을 듣고 서둘러서 몸을 치우자, 알베르트는 재빠르게 통로로 들어갔다. 잠시 쿵 쿵 거리는 소리고 들리더니, 곧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이 몸으로는 도저히 통로를 지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이 창고를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가만히 창고에 앉아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추워라

괜히 그런 말을 뱉어본다. 사실은 전혀 춥지도 않은데 말이다. 단지 아까보다는 쓸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혼자였는데,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쓸쓸한 기분이 든다. 이런저런 감성적인 생각이 들려던 찰나, 다시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천장에서 알베르트가 떨어졌다.

어때, 알베르트. 애는 찾았어?”

그래. 그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일단 다시 나가자. 여기 계속 있으면 경찰들한테 들킬지도 몰라.”

뭐라고? 그럼 괴물 추적은? 일단은 포기하는 거야?”

그런 셈이지. 일단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아.”

우리는 들어왔던 통로를 따라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창고로 들어올 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통로는 아까 통로와는 다르게 나도 충분히 오고 갈 수 있는 넓이였다. 괴물이 몰래 숨어들었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가서는 어디로 간 걸까? 그건 조금 뒤에 알베르트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산으로 돌아와 잠시 숨을 돌리니,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앞으로 몇 시간이면 마을도 움직이기 시작할 터이다. 앞으로의 작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마을에 온 이후로 알베르트가 보이는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 알베르트. 네가 여기 온 이유가 괴물 사냥이라는 것은 물론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게 너와 코요트 마을의 관계를 지우는 건 아니잖아. 괜찮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그는 주변을 걸어 다니다 나무에 몸을 기댔다. 품에서 담배와 성냥을 꺼내 피우고는, 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코요트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나는 다른 마을에서 자랐지만,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 아까 그 창고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포도주 창고이고.”

그건 대충 이해했어. 제일 궁금한 건 그다음이라고. 대체 왜 포도주 창고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있는 거지?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아버지에게는 빚이 있었어. 그것도 엄청난 빚이. 아버지는 그걸 갚을 생각은 안 하고 도망쳐버린 거지. 이 비밀 통로들은 모두 야반도주하기 위해 아버지가 미리 준비하신 것들이야. 새로 단장할 때 이미 계획을 세우셨다더군.”

빚 때문에 야반도주.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다만 그걸 위해 창고를 개조했다는 건 역시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담담하였기에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 내 과거는 그 정도야. 그보다 중요한 건 아까 그 애겠지?”

그래, 맞아. 그 애는 대체 누구지? 그 통로는 어디로 이어지는 거야?”

통로는 옛 아버지의 집으로 이어져. 아버지가 떠난 이후로는 채권자가 소유했겠지. 하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이미 죽었을 거고, 그럼 후계자가 이어받았겠지?”

집은 그 자식의 소유이고, 아이는 자식의 자식이라는 건가?”

직접 이야기해서 확인했어. 어머니 이름이 엘리스, 자기 이름이 바이올렛이라더군. 그 아이는 우연히 통로를 발견한 모양이야. , 우리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 사실 조금은 걱정되긴 하네.”

그는 멋쩍게 웃더니 고개를 돌려 일출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그에 대한 의문은 풀렸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갈 수도 없고, 괴물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니, 사건의 범인이 괴물이라는 확신도 없다.

결국 창고를 중심으로 수색할 수밖에는 없는 건가? 답답한 상황이네.”

그래.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받아.”

그는 나에게 작은 병 하나를 던졌다. 보라색 액체가 든 병이었다.

통로는 셋. 혼자 찾기는 너무 비효율적이지. 사실 네가 들면 피가 너한테 향할 테니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괴물한테 다가가면 반응은 있을 거야.”

아니, 피는 가만히 있는데?”

뭐라고?”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분명히 병 안에 든 피는 고요했다.

넌 저번에 총에 맞았을 때도 치유를 못 했지. 괴물마다 특성이 다른 건가?”

아무튼 쓰기 편하니 좋지 뭐. 조금 숨 돌리고 바로 수색을 시작하자.”

우리는 피에 관한 것은 일단 접어두고 함께 마을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빛을 받으며 문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저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악이 있을 터이다. 우리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해가 중천을 넘어 저물기 시작할 즈음, 내가 맡은 통로의 수색이 끝났다. 세 통로 중 내 몸 크기에 맞는 통로는 하나뿐이었는데, 하필이면 넓은 하수도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렇다고 대충 수색하고 돌아올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냄새 나는 하수도 전체를 샅샅이 뒤졌다. 덕분에 천은 더러운 물에 젖었고, 징그러운 쥐들에게 몇 번이나 발을 물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고생했지만, 피는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힘들어. 지치지는 않는데, 정신적으로 힘들어.”

그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으니 다른 통로에서 알베르트가 돌아왔다. 다만 표정을 보아하니 좋은 소식은 없는 모양이다.

그쪽도?”

이쪽도.”

우리는 짧게 상황을 확인하고, 곧장 휴식에 들어갔다. 잠시 쉬고 난 알베르트가 말했다.

긴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서로 최선을 다한 건 눈에 보이니까. 그보다는 앞일에 집중하자.”

그래, 맞는 이야기네. 하지만 세 통로 전부 반응이 없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세 통로? 무슨 소리야?”

세 통로 맞잖아.”

내가 재차 확인하였는데도 알베르트는 이해가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생각을 가다듬고 조금 더 정확하게 물어보았다.

밤에 네가 천장 통로를 확인했잖아. 지금 남은 두 통로를 확인했으니 통로 세 개. 끝났잖아.”

, 그런 이야기구나. 미안, 천장에서 피를 확인하지는 못했어. 아이 때문에 다급해서 말이야.”

그래? 그럼 뭐, 일단 그쪽을 확인하고 이야기해야겠네. 부탁해, 알베르트.”

알베르트는 말없이 천장 위로 올라갔다. 자신밖에 지나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사이에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푸는 중이었다. 육체적인 피로가 없더라도 힘든 건 힘든 모양이다.

잠시 후에 알베르트가 돌아왔다. 별 기대감 없이 그를 바라보았는데,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하고 몸을 일으켰다.

반응이 있었어. 괴물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디 즈음이었는데? 통로 중간 즈음인가?”

그가 고개를 젓는다.

집 안이야. 괴물은 집 안에 있다.”

 

괴물이 집 안에 있다. 그것을 확인한 시점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조심스레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해가 떠 있어 그런지, 경찰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걸어 다니다 한 집 앞에 멈춰 섰다. 알베르트의 말로 보아 이곳이 비밀 통로와 연결된 집이 틀림없었다. 이 집에 괴물이 있을 테지만, 분명 알베르트에게는 그것만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는 괜히 알베르트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오히려 태연해 보였다.

천은 제대로 둘렀지, 조카야? 이제 노크한다?”

알베르트는 마른기침을 뱉고는 문에 노크했다. 곧 발소리가 들리더니,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저는 알베르트라고 합니다. 옆에는 제 조카고요.”

그래서요? 용건이 없으면 돌아가 주시겠어요?”

제 아버지는 에드워드입니다. 모르는 이름입니까?”

불편하기 그지없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조금 뒤에 문이 열렸다. 안에는 알베르트와 비슷한 나이의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분명히 이 사람이 엘리스 씨일 것이다.

그래서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요?”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왔습니다.”

그녀는 조금 고민하더니, 곧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집은 평범한 이층집이었다. 마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가정집. 하지만 알베르트는 추억인지 미련인지 모를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알베르트가 신경 쓰이는 한편, 나도 현관 옆의 벽에 눈을 두고 있었다. 거기에는 부부와 두 딸의 모습이 찍힌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괴물의 존재가 신경이 쓰여서인지, 그 사진에서 영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저녁은 아직이시죠?”

그녀는 우리를 부엌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리고는 맛있는 스테이크를 구워 내주었다. 알베르트는 예의 있게 감사 인사를 하고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식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와 알베르트 사이의 분위기가 신경 쓰여 도저히 고기를 썰 수 없었다. 이 불편한 기류를 깬 것은 엘리스 씨였다.

에드워드 씨가 빚을 남긴 건 30년이나 전 이야기예요. 왜 이제 와서 갚을 생각이 난 거죠?”

아버지의 뜻이었거든요. 평생을 후회하면서 사셨죠.”

그러면 처음부터 도망치지 않았으면 됐을 텐데요. 참 편하게 말씀하시네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갚으려는 것 아닙니까.”

그런 말을 하고서, 알베르트는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는다. 엘리스 씨는 물론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알베르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저기, 저는 아직 아무것도 받지 못했는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스테이크가 굉장히 맛있어서요. 이것만 마저 먹겠습니다.”

그리고도 알베르트는 필요 없는 여유를 부리며 남은 고기도 썰어 먹었다. 입가를 깔끔하게 닦고서, 알베르트는 품에서 흰 종이를 꺼냈다.

저녁 감사합니다. 여기, 서류입니다.”

서류? 무슨 내용이죠?”

“‘새르피에 있는 집과 농장을 양도한다는 내용입니다. 아버지의 유언이었죠.”

농장이요?”

. 아주 큰 농장은 아니지만, 빚을 갚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그녀는 가만히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듣는 나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분명 서류에는 엘리스 씨에게 농장을 양도한다고 적혀있다.

죄송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여서요. 바로 결정하기가 어렵네요.”

이해합니다. 직접 보지도 않고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러니 내일이라도 직접 보여드리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나는 조용히 차를 한 잔 마셨다. 이 계획에서 나는 전혀 역할이 없었다. 어차피 괴물을 찾아야 하니 왔을 뿐, 이 단계에서는 괜히 말을 꺼내는 것이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걸 알고 있기에 계속 가만히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만히 남의 상속 이야기만 듣고 있다 보니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통로에서 본 그 아이, 바이올렛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 그래. 안녕?”

나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몸집 때문에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침 두 사람도 이야기가 끝난 듯, 엘리스 씨가 내게 말했다.

조카 분은 올라가 계시죠. 저희는 조금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으세요.”

알겠습니다. 알베르트, 나중에 봐.”

그래, 조카야. 잘 자려무나.”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나누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바이올렛도 어른들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나를 따라 올라와서는 방까지도 함께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았는데, 바이올렛은 나를 따라하는 듯이 크게 뛰어올라 내 옆에 안착하였다. 그 아이의 활달한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긴장되어있던 내 마음도 풀렸다.

그래서요, 아저씨. 그때 통로에서는 뭘 하고 있던 거예요?”

그때? . 그때 알베르트 아저씨가 말해주지 않았니?”

그 수염 달린 아저씨요? 아뇨, 저랑 어머니 이름을 묻더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만 하고는 돌아갔어요.”

하아, 알베르트. 아무튼, 그때는 찾는 물건이 있어서 여기저기를 뒤지던 중이었어.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다.”

아니에요. 놀랄 일은 아닌걸요.”

아이는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됐나 싶었지만, 아이가 궁금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음식, 가고 싶은 마을, 우리는 그런 별것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이는 어떤 이야기든 관심 있게 들어주고, 또 신이 나서 말하였다. 그 모습이 못내 귀여워서, 나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그 겨울날이 겹쳐 보였다. 친구를 찾아달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고는 내 손이 보였다. 거칠고 커다란 초록색 손이. 나는 차마 그 손을 아이의 머리에 놓지 못하고,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바이올렛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분명 피곤한 탓이다. 나는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확실히 시간은 이미 아이가 잘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이제 들어가서 자는 게 좋지 않을까? 어머니가 보시면 놀라실 거야.”

알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저씨.”

아이는 눈을 비비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바이올렛.”

,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그런 말을 아이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인사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아저씨라. 사실 이제 20살인데 말이야.”

나는 애써 불길한 생각을 잊었다. 당장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있으니 새벽이 되어, 이번에는 알베르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준비는 됐어? 바로 찾아보자.”

그의 손에는 나침반이 들려 있었다. 얼핏 피는 움직이지 않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니 계속해서 아래쪽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 서두르자. 오늘 밤에도 피해가 나올지도 몰라.”

우리는 조용히 방을 나와 창고로 향했다. 나침반을 보아 분명히 이 방향에 괴물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창고로 이어지는 문은 잠겨있었다.

어떡할까, 알베르트. 설마 부술 건 아니지?”

물론이지. 우리가 괴물도 아니고, 잠긴 문이야 열면 되는 것 아니겠어? 이렇게 말이야.”

알베르트는 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안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졌다.

저기. 설마 훔친 거야? 차라리 부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잖아.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없어.”

그런 이미 문제가 됐네요, 알베르트 씨.”

우리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2인조 도둑 같은 우리를 엘리스 씨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빚은 핑계고 이게 목적이었나요?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딱 맞네요.”

욕은 해도 상관없는데, 이 상황이 오해라는 말은 해야겠군요.”

다가오지 마세요!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경찰이 올 거예요.”

, 잠깐만요, 엘리스 씨! 정말 오해입니다! 저희는 도둑질하려는 게.”

조카분도 조용히 계세요. 더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열쇠만 돌려주시고 가만히 계세요

나는 알베르트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평소대로지만, 아무리 보아도 안 좋은 생각을 하는 듯이 보였다. 나는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가 더 빨랐다.

죄송하지만, 변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 그는 문 너머 창고로 달려갔다. 엘리스 씨는 당연히 당황하고 흥분하였기 때문에, 그녀를 막는 것이 남겨진 나의 임무였다.

엘리스 씨, 일단 진정해주세요!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 남의 창고를 뒤지는 데에 대체 무슨 사정이 필요한 거죠?”

내가 필사적으로 그녀를 설득할 핑계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사이, 시끄러운 소리에 놀랐는지 바이올렛도 창고 문 앞으로 걸어왔다. 아이를 바라보자, 아까도 떠올랐던 불안한 생각이 다시금 엄습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상황을 넘길 방법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가족사진, 네 명이 찍혀있더군요. 나머지 두 사람은 지금 어디 있죠?”

그녀는 순간적으로 행동을 멈췄다. 그러고는 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없는 사람이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깊어서 하는 말입니다. 다르게 묻죠. 두 사람은 실종되었나요?”

그 말까지 듣자, 그녀는 완전히 몸에 힘을 잃었다. 뒤에 있던 바이올렛도 어두운 표정이었다. 내 예상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포도주 창고의 비밀 통로는 은밀히 숨어있어서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 집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집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산까지 도달하였다가 괴물에게 들킨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당신들이 도둑질을 하는 것과는 관계없잖아요.”

아니요, 믿어주세요! 저희는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 밑에 그 범인이 있어요!!”

그게 무슨. 저희 집에 범인이 있다고요?”

. 그러니 죄송하지만, 제발 지하에 내려가게 해주세요. 경찰은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사실 경찰을 만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일단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 말이 그녀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녀가 말을 할 틈은 없었다. 창고에서 작은 총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가볼게요! 절대로 내려오지 마세요! 절대로요!”

나는 엘리스 씨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지하로 내려갔다.

 

집이 상당히 크니 당연하지만, 창고도 상당한 크기였다. 하지만 총소리가 들렸을 위치를 생각하면 위치는 의외로 낮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알베르트가 병을 하나 줬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히 몸을 덮은 천들 사이에 넣어놓았을 터였다. 나는 그 안에 들어있는 피를 가만히 보았다. 피는 창고의 한 벽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또 다른 계단이 있었다. 지하실 안에 있는 지하실. 도저히 불길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포도주 창고에 있던 것과 비슷한 기나긴 비밀 통로가 있었다. 길은 한 갈래. 피는 앞을 가리키고 있다.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도 들렸기 때문에, 나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곧 내 눈에는 팔을 움켜쥔 채 서 있는 알베르트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흉측한 무언가가 보였다.

알베르트, 그 녀석이.”

, 조카야. 이제 왔구나. 그래, 이 녀석이야.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하기엔 나와는 연이 없지만, 아무튼 이번 일의 원흉은 맞겠지. 이제 죽이고 도망치기만 하면 돼.”

괴물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뱉으며 피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 몸은 나는 물론 알베르트보다도 훨씬 작아서, 창고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크기였다. 알베르트는 지쳤는지, 말없이 성냥을 꺼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에 괴물이 보인 행동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안타깝군. 꽤 즐거운 삶이었는데.”

말했다. 괴물이 우리에게 말을 했다. 마치 그날의 그 괴물처럼.

네놈, 어떻게.”

어떻게? 이곳을 찾은 방법 말인가? 그야 쉽지는 않았다만.”

그게 아니라! ,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괴물은 상처투성이인데도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모를 만도 하지. 웬만한 괴물들은 불태우고 부수는 것밖에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괴물이 인간을 먹는다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언어 같은 것 말이야.”

지식을 얻는다. 언어. 괴물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직접 듣고 있는 목소리를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베르트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당황하지 않고 성냥에 불을 붙였다.

좋은 것을 가르쳐줘서 고맙다, 괴물아. 이제 죽어야지.”

여기서 불태우려고? 통로에 있는 나무가 다 타버릴 텐데?”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이제 그 입 다물어.”

물론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닌데, 저 사람이 걱정할까 봐.”

저 사람. 돌아보지 않은 시점인데도 무언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나, 우리 뒤에는 엘리스 씨가 서 있었다.

, 여기는 뭐죠? 저 사람은 누구고요?”

엘리스 씨! 제가 오지 말라고!”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수는 없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한 순간, 나는 물론이고 알베르트까지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물론 괴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돌아보았을 때, 그놈은 이미 알베르트를 향해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알베르트를 향해 몸을 던졌다. 보라색 불길이 좁은 통로를 휘감았고, 내 몸을 두른 천은 완전히 불타고 말았다. 나는 그 천을 벗어서는 버렸다. 화상 때문에 온몸에 두르고 있던 붕대가 드러났다.

엘리스 씨! 괜찮으세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큰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곧 불길이 사그라지고, 괴물이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당황하느라 경황이 없었지만, 알베르트는 침착하게 총을 쏘았다. 여섯 발이 모두 괴물의 등에 명중하였고, 괴물은 힘없이 엘리스 씨 옆에 쓰러졌다.

조카야, 받아! 가서 피를 불태워!”

알베르트는 내게 성냥갑을 던졌다. 그는 이미 괴물과의 전투로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나는 성냥갑을 받아들고 괴물을 향해 달렸다. 열심히 성냥에 불을 붙이려 애를 썼지만, 조바심 때문인지 아무리 해도 불이 붙지 않았다. 괴물은 그런 나를 돌아보더니 입을 작게 오므렸다. 작은 구멍에서 보라색 불이 마치 총알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모두 빗나갔으나 한 발이 오른팔에 맞았는데, 하필 지난번 알베르트에게 총을 맞은 부위였다. 나는 극렬한 고통에 성냥을 놓치고 말았다.

엘리스 씨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괴물을 바라보았다. 괴물은 이미 피를 흡수해 상처를 회복하였다.

안녕, 엘리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그놈은 더러운 입으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엘리스 씨는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네 장녀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어. 그 아이를 먹은 덕분에 나는 지성을 얻었고, 산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도 발견했지. 게다가 그녀를 찾겠다고 설치던 아버지도 먹을 수 있었고 말이다.”

괴물은 천천히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알베르트는 서둘러 총을 장전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는 없어 보였다. 그놈은 엘리스 씨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너는 마지막에 먹어주려고 했는데. , 지옥에서 남편이나 만나라고.”

그 순간, 무언가 액체가 날아와 괴물을 덮쳤다. 괴물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바이올렛이었다. 우리가 불태우라고 말한 것을 들었는지, 창고에서 기름을 찾아 끼얹은 것이다. 덕분에 괴물은 한순간 방심했고, 나는 그 틈을 타서 성냥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 꼬맹이가!”

괴물은 엘리스 씨를 집어 던지고 아이를 향해 돌진했지만, 그 짧은 틈에 알베르트는 이미 장전을 마쳤다. 그리고 괴물은 다시 총알을 맞고서는 쓰러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괴물의 몸이 피는 물론 기름에도 한껏 젖었다는 것, 그리고 내 손에 불이 붙은 성냥이 들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나마 멀쩡한 왼팔로 괴물에게 성냥을 던졌다. 성냥은 그대로 괴물의 몸에 닿았고, 자비 없는 붉은 불길이 놈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이미 저번에도 예상 못 한 반격을 당했으므로, 이 상황에 안도해있을 여유가 없음은 알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엘리스 씨와 알베르트, 그리고 바이올렛까지 데리고서 이 불타는 나무 통로를 빠져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트는 그 짧은 사이에 다시 장전했는지, 불타는 괴물에게 마지막으로 총알을 박아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통에 신음하는 괴물을 뒤로하고 통로를, 그리고 집을 빠져나왔다.

 

지하에서부터 불이 올라왔으니 집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불을 끌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 괴물이 다시 살아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민가를 불태운 셈이었다.

괜찮니, 조카야? 몸은 더 다치진 않았고?”

그래, 다행히도 말이야. 그보다 이건 어떡할 거야.”

엘리스 씨는 가만히 불타는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껄끄러웠는지, 아니면 경찰이 쫓아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알베르트는 나에게 도망가자며 눈치를 주고 있었다. 그런 우리를 바이올렛이 붙잡았다. 바이올렛은 눈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슬프고 괴로울 터인데, 그런데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목멘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에, 죄책감이 나의 가슴을 찔렀다. 엘리스 씨도 우리를 돌아보더니, 도저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알베르트에게도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침반을 확인했다. 괴물이 죽었다면 더는 피가 움직이지 않을 터. 그걸 확인하는 것으로 사냥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피는 불타는 집을 향해 요동치고 있었다.

엘리스 씨, 거기서 피하세요!”

알베르트의 거친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타오르는 집 안에서 보라색 불길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괴물이 집 밖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뭐야 저건, 불사신이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지만, 그 모습은 불사신과는 거리가 있었다. 뛰어난 재생 능력도 타오르는 불길을 이기지는 못하고, 괴물은 천천히 죽음을 향해가고 있었다. 괴물의 행동은 최후의 발악이었다.

전부 다 먹어주마!”

괴물은 입을 벌렸다. 나는 서둘러 엘리스 씨와 바이올렛 앞에 나섰다. 그러나 괴물이 불을 뿜는 일은 없었다. 경찰들이 도착해 괴물에게 총을 쏘았기 때문이다. 놈은 결국 한 걸음도 더 움직이지 못하였고,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새벽에 이뤄진 괴물 수색은 이렇게 끝났다.

 

경찰이 엘리스 씨에게 사건의 경위를 묻는 사이, 우리는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경찰들이 쫓는 일은 없었다. 아마 엘리스 씨가 잘 말해준 거겠지. 덕분에 우리는 문제없이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표를 구매해 기차에 올라탔다. 창고 수색이니 괴물과의 전투니, 코요트에서는 힘든 일투성이였다. 그러니 기차 안에서라도 푹 쉬고 싶지만, 그 전에 알베르트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알베르트, 엘리스 씨는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되겠어? 빚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너무 미안한데.”

걱정하지 마. 그녀가 서류를 챙긴 건 확인했으니까. 그거면 빚에 그 집을 더해도 남을 재산일 거야.”

서류? 그거 가짜 아니었어?”

그 사이에 가짜 서류를 준비하는 게 더 힘들겠다. 아버지가 죽은 날부터 늘 들고 다녔어.”

괜한 말인 건 아는데, 한마디만 할게. 우리 목적은 괴물 사냥뿐인 것 아니었어?”

미안, 그건 거짓말이다. 그래도 괴물이 있을 것 같지 않으면 오지도 않았어. 그건 믿어줘.”

그래, 그래. 믿다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베르트는 완전히 잠들었고, 나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기차는 계속 달린다. 언젠가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알베르트의 이야기는 방금 한 단락을 끝맺었다. 나는 어떻지? 내 이야기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내 마을을 불태운 괴물과 만날 수 있을까? 만나서는 어떻게 되지? 몸을 되찾고 복수를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해야 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 내게 주어진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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