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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 ‘그나마 나은 게임’을 위한 표류

진예은2020.12.28



서론-여성 게이머의 시각에서 게임 보기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해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여성적 가치가 논의되는 현재, 특히 게임계에서는 이때까지 가려져 있던 ‘여성 게이머’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게임이 이른바 소통의 시대를 맞게 되어 이는 더욱 증폭되었다. 보이스 채팅, 채팅을 이용한 남성 유저들의 성희롱을 미러링한 한 여성 유튜버가 논란이 되었고, 대작이라 불리던 게임의 후속작이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결국 페미니즘이 게임 내외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내 다양한 여성혐오를 지적하고 있는 주체인 여성 게이머는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다. 2007년 발행된 전경란의 논문 「여성 게이머의 게임하기와 그 문화적 의미에 대한 연구-고 레벨 여성 게이머의 게임하기를 중심으로」에서는 디지털 게임이 성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여성이 디지털 게임을 하는 데 있어서 성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성 게이머 인터뷰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많은 디지털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의 구조를 기다리는 수동적 역할이거나 남성 캐릭터를 돕는 현명한 노파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캐릭터의 역할이나 성격과 관계없이 성적인 측면이 과도하게 강조되는 면이 있다.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이러한 디지털 게임을 향유하는 여성의 경우, 게임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자기 배제’, ‘가장’, ‘비자발적 타협’이 일어난다. ‘여자치고 잘하시네요’라는 평가에 스트레스받는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배제하거나, 이 때문에 남자인 척 가장하고, 게임계 전반적인 분위기를 비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게임이랍시고 캐주얼한 코디 게임이나 남성 캐릭터와 연애하는 게임이 발매되고, ‘일반적인’ 게임 속 여성이 철저하게 성적으로 묘사된 지금 게임계의 분위기에 여성 게이머는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다. 서브컬처 내 여성혐오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일본, 그리고 그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사인 닌텐도가 발매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이 게임을 환영하면서도 한계를 느끼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일일 것이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어떤 게임인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지난 2017년 3월 3일에 발매된 닌텐도 스위치 타이틀이다. 의문의 목소리에 의해 깨어난 용사 링크가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재앙 가논을 무찌르기 위해 하이랄 성으로 향한다는, 아주 전형적인 영웅 서사이다. 이런 단순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 중 하나라고 평가되고 있는데, 발매 당시 게이머 사이에서는 ‘젤다 하려고 약 35만 원 가량의 스위치를 사도 될 정도’라는 말이 왕왕 나돌 정도였다.

마왕을 무찔러야 한다는 직관적인 목표 의식과 더불어 동서양의 묘한 조화가 느껴지는 특유의 세계관, 그러한 세계관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섯 종족의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 그리고 압도적인 자유도와 참신한 시스템 디자인 등으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은 남성 게이머뿐 아니라 여성 게이머에게도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왜 위대한가를 논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당시 TIME, 메타크리틱, GOTY 등 수많은 평론 매체에서 그해의 게임이라는 영광을 안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이미 수많은 게이머가 ‘단점이 없는 게임’이라고 평하고 있다. 해당 게임의 표절 작품으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원신’에 대한 평가가 대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찬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아, 결국 ‘원신’에 대한 적대감 중 일부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 대한 호평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성 게이머는 이런 위대한 게임조차 불편해하고 있고, 동시에 호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전통적 여성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구조적인 한계를 보이며, 페미니즘 텍스트로서의 분명한 가치를 보이면서도 이를 이야기의 중심선이 아닌 부차적인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본론1 : 공주와 노파, 입체적으로 그려진 여성 캐릭터와 그 한계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서는 2007년 전경란이 그의 논문에서 지적한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남성 주인공의 구출을 기다리는 여성 캐릭터’(젤다)와 ‘주인공을 돕는 여성 노파의 존재’(임파)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적인 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들에게 서사를 입힘으로써 여성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는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링크의 구출을 기다리는 공주 : 젤다

젤다는 마왕에게 잡혀 용사의 구출을 기다리는 공주 캐릭터이다. 100년이라는 긴 잠에서 깨어난 링크가 재앙 가논을 무찌르기 위해 하이랄 성으로 향하기까지 하이랄 성에서 그를 기다리는 인물이다. 마왕의 곁에서 용사가 자신을 구출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전통적인 ‘히로인’ 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간접적으로나마 젤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선택권 없이 공주와 용사로 묶인 젤다와 링크의 관계 속에서, 천재 검객인 링크에 비해 특별한 능력을 발현할 수 없는 젤다는 큰 중압감을 느낀다. 때문에 마리오에게 항상 상냥한 피치 공주와는 달리 링크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젤다는 항상 그와 소원한 관계에 있었다. 결국 재앙 가논이 깨어나기까지 능력 발현에 실패한 젤다는 동료들을 모두 잃고, 크게 다친 링크를 100년이라는 긴 잠에 들게 한다. 그리고 링크가 잠에서 깨어나 하이랄 성으로 돌아오기까지, 하이랄 성에서 홀로 재앙 가논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못 하도록 붙들어 놓는다.

 

 

 

링크의 여정을 돕는 노파 : 임파

100년의 잠에서 깨어난 링크는 그의 임무를 확인한 후 ‘카카리코 마을’에 당도한다. ‘시커족’(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에 등장하는 종족. 뛰어난 과학기술을 자랑한다.)의 수장이자 ‘카카리코 마을’의 원로인 임파를 만나기 위함이다. 임파는 링크에게 앞길을 제시하는 노파로서, 링크가 그의 여정 속에서 첫 번째로 마주하는 여성 NPC이기도 하다.

주인공을 보조하는 노파 역할을 맡은 임파 또한 사실 100년 전에는 하이랄 왕가를 호위한 닌자라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링크의 옛 동료이기도 한 셈이다. 또한 그는 현재 얼마 남지 않은 ‘시커족’의 리더이며 높은 인망을 자랑하는 마을의 원로이다.

 

 

 

젤다와 임파가 링크와의 관계 속에서 가진 이야기는 그들의 표면적인 역할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재능의 차이로 열등감을 느끼고, 때문에 남자 주인공에게 쌀쌀맞은 공주 캐릭터. 결국 중압감과 부담으로 인해 쓴 실패를 맛보지만 굴하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마왕에게서 버티기도 한다. 또한 재앙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자신의 사람을 챙기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일족의 수장이자 마을의 리더로서 사람들을 이끄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은, 어찌 보면 부상 한 번에 1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남성 캐릭터보다 훨씬 강한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속 여성 캐릭터는 기존의 클리셰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설정과 이야기가 덧붙으며 젤다와 임파가 ‘여성’보다는 ‘인간’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링크에게 쌀쌀맞은 젤다의 모습은 같은 회사의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 마리오에게 항상 상냥한 피치 공주와는 분명 다르다. 많은 여성 게이머들은 이처럼 젤다와 임파가 이전의 전통적 역할만이 강조된 ‘공주’, ‘노파’와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구출을 기다리는 공주와 남자 주인공을 돕는 노파라는 역할에 묶여있게 된 것 자체가 그들이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지우기는 힘들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가 명맥을 길게 유지하고 있고, 기존에 존재하던 여성 캐릭터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그들을 성적으로 객체화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이라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여전히 여성 캐릭터를 보조적 역할에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본론 2 : ‘겔드족’으로 읽는 현실-배제와 억압, 여성성이라는 허상


사막에서 생활하는 ‘겔드족’은 남성을 반기지 않는다. ‘겔드족’이 사는 ‘겔드 마을’은 그들을 이끄는 리더부터 장군, 병사, 그리고 마을의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성뿐이다. 남성이 들어가려고 하면 곧장 경비에게 발각되어 마을에서 쫓겨나기 일쑤이다. 때문에 남성 캐릭터인 링크는 이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여장을 하는 등 상당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사막에서 살아간다는 설정 탓인지 ‘겔드족’의 의상 디자인은 제법 노출이 있는 모습으로, 전사들임에도 신체 대부분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있다. ‘여성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여성우월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겔드족’은 사막에서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하이힐을 신기도 한다. 

 

 

 

한편 ‘겔드족’이 방문자의 성별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외양이다.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도 전투 복장의 링크는 마을에서 무조건 내쫓긴다. 그러나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겔드족’의 의상만 걸치면 손쉽게 ‘겔드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들이 우월하다 주장하는 ‘여성성’은 옷만 바꿔 입어도 구분이 가지 않는 것이다.

 

(전투복장을 입은 링크는 겔드 마을에 출입할 수 없지만, 복장을 바꿔 입자 손쉽게 마을에 출입할 수 있다.)


‘겔드 마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링크가 여장을 위해 입는 겔드족 의상과 ‘겔드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방어구는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의 옷’과 ‘여성의 장신구’만을 판매하고 있는 마을의 구석진 곳에는 암호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출입 가능한 방어구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남성용 전투복을 구할 수가 있다.

‘이 마을에선 불법이긴 하지만, 의외로 수요가 있다’는 NPC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남성성’이 금기시되는 ‘겔드 마을’에서도 남성복을 입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결국 음지로 밀려나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곳곳을 모험하다 보면 운명의 상대를 찾아 ‘겔드 마을’을 떠나온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이 또한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져준다. 그들 공동체가 남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되레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겔드족’과 ‘겔드 마을’은 앞서 논한 젤다와 임파보다 훨씬 더 깊게 현실을 반영한다. ‘겔드족’의 금남 사상 자체는 현실 속 금녀 조직을 풍자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금남 사상을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국내에서 돌풍처럼 불고 있는 소위 ‘래디컬 페미니즘’의 위험성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 안에서 한 쪽 성별을 배제한 조직은 결국 그 조직원까지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타 게임에 비해 여성의 성적인 측면이 과도하게 강조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겔드족’을 통해 현실을 다각적으로 풍자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겔드족’의 캐릭터 디자인이 전경란이 그의 논문에서 지적한 ‘성격과 역할에 맞지 않는 성적 측면만이 강조된 여성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겔드족’의 상당수가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의상의 방어력이 최하인 점을 고려했을 때,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표현하고자 하는 ‘강한 여성’이 ‘전투에 도움 되지도 않는 의상을 걸치고 사막에서도 하이힐을 신는 주제에 남성을 배제하는 허영’이라는 편견에 기초한 디자인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결론 : ‘그나마 나은 게임’을 찾아서, 위대한 게임에서 지워지는 여성의 목소리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모습은 분명 그동안의 많은 여성 캐릭터에 비해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많은 여성 게이머에게 이유 있는 찝찝함을 남기기도 한다. 상기한 젤다와 임파의 이야기, 그리고 ‘겔드족’에 관한 담론은 재앙 가논을 무찌른다는 목표와 큰 관련이 없는 화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는 봐도 되고 안 봐도 되는 ‘서브 퀘스트’의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많은 게이머에게는 결국 젤다와 임파의 역할(구출을 기다리는 공주, 주인공을 돕는 노파), ‘겔드족’ 여성의 노출 있는 의상만 인상에 남게 되고 이에 대한 지적과 다양한 해석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얼마나 위대한 게임인지 앞다투어 떠드는 목소리에 의해 소거된다. 다른 일본 게임들, 남성을 타겟으로 하는 정통 액션 게임에서 드러나는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에 비하면 그나마 이것이 낫기 때문에, 위대한 게임의 성적 대상화나 여성혐오를 지적하고 이에 관해 토론하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여성 게이머는 언제까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나마 나은 게임’을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게임 내외적으로 여성은 철저히 객체로서 묘사되고 수용되고 있다는 2007년의 결론이 현시점에 정말로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속 여성 캐릭터들은 분명 이전의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들에 비해 서사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입체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씁쓸한 그 모습, ‘역할’이라는 구조에서 해방되지는 않았다.

 

 

 

 

 

 

 

참고문헌

전경란, 「여성 게이머의 게임하기와 그 문화적 의미에 대한 연구-고 레벨 여성 게이머의 게임하기를 중심으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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