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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너의 거짓말>에 나타난 클리셰

강수연2020.12.22

 

 <4월은 너의 거짓말>에 나타난 클리셰

 

 

 

 


 

‘클리셰’란?

‘클리셰’란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진부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상투적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나 표현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1]

 최근에는 클리셰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며 기존의 클리셰를 깨는 작품이 유행하고 있다. 2020 4월에 방영한 <여성향 게임의 파멸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 영애로 환생해버렸다…>라는 작품은 정의롭고 선한 주인공을 내세우는 여타 소설이나 만화와 다르게 악역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색다르고 재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클리셰를 깨는 작품은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작품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클리셰를 사용하면서도 명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한 작품 중에서도 <4월은 너의 거짓말>은 클리셰를 잘 활용한 예시로 들기에 손색없는 작품이다.

 

 

 

첫 번째 클리셰: 주인공의 천재성

 <4월은 너의 거짓말>에는 많은 클리셰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주인공의 천재성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미숙하더라도 적어도 한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의 천재성이란 사실상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이는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에게 반전을 주어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빠른 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떠한 역경이 와도 주인공의 천재성만 있다면 그 일은 노력과 재능으로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시련이 되는 것이다. 덕분에 작가는 내용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 지지부진 하지 않을 수 있고, 독자는 처지는 전개에 지루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천재라는 존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시선을 끌 수 있게 도와준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캐릭터에게 매력이 부여되는 것이다.

 

작중의 주인공 아리마 코세이는 존재감도 없고 소심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며 인간 메트로놈으로 불릴 정도로 정확하고, 그 나이에 어려운 피아노 기술도 실수 없이 선보이는 대단한 천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작중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 천재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갈고 닦았던 기술로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이 작품의 기본적인 플롯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갈등 해소와 성취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주인공이 가진 천재성은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확인할 수 있는데 <4월은 너의 거짓말>과 비슷하게 클래식을 소재로 삼은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 노다메, <피아노의 숲>의 주인공 이치노세 카이 등이 있다. 이들도 아리마 코세이와 마찬가지로 삶의 난관과 부닥치지만 스스로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그것을 해결해 나간다.

 

 

 

두 번째 클리셰: 옅은 부모의 존재

두 번째 클리셰는 옅은 부모의 존재이다. 부모의 존재는 자식에게 보호의 울타리이자 가이드라인이다. 그러나 종종 주인공들은 한부모 밑에서 성장하거나 고아인 경우가 있다. 어째서일까? 우선 그 이유로 주인공의 독립성을 들 수 있다. 기나긴 여정을 떠나야 하거나 다이나믹한 사건에 휘말려야 하는 주인공 특성상 관심과 보호를 주는 부모의 존재는 스토리 전개에 아이러니하게도 장애를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결핍이 주인공을 평범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간극은 작품 내적 인물(등장인물)이나 외적 인물(시청자)로 하여금 연민과 공감을 불러 일으켜 스승이나 동료와 같은 주변 인물과의 짙은 서사를 통해 손쉽게 대체할 수 있게끔 해준다. ‘부모가 없다는 설정은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다는 것이며, 시청자의 동정심을 얻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2]는 것이다.

 

 주인공 코세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콩쿠르를 보러 나오지 않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해 괴로워하는 코세이를 돕지 않는 등 의무를 다 하지 않는다. 보호자의 역할은 오히려 선생님인 세토 히로코가 대신한다. 그는 주인공의 정서적 보호자와 스승의 역할을 함으로써 주인공을 이끌어 나간다. 이처럼 주인공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는 부모가 아니라 그 외의 인물들, 친구나 선생님이 맡게 된다. 이렇게 부모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르게 자라나는 주인공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세 번째 클리셰: 시한부

 세 번째 클리셰는 시한부 설정이다. 시한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둠.[3]이라는 뜻으로 따라서 시한부 인생은 제한된 삶을 가진 이를 가리킨다. 이는 쉬이 사람들의 연민을 이끌어내고, 시한부 캐릭터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시청자의 동정심을 얻기 더 쉽다. 이들이 삶에 집착하거나 반대로 체념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설정은 캐릭터의 극적인 변화를 납득시키거나 기행의 원인을 설명해준다. 또한, 존재의 유한성을 이유로 언행이 다소 미화되는 효과도 있다.

 

 주인공 아리마 코세이의 어머니, 히로인인 미야조노 카오리도 모두 시한부이다.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설정은, 앞서 말했듯이 그들이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해도 면죄부를 준다.

 

 특히나 이 면죄부는 주인공의 어머니인 아리마 사키에게 더욱더 강하게 부여되는데, 자신의 아이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사키는 혼자 남을 아이를 걱정해 코세이를 학대하면서까지 피아노 기술이 손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본인의 사후 남을 아이에 대한 염려 때문에 아이를 몰아세웠고, 이는 아이에게 상흔으로 남아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상처는 스토리 내내 주인공이 넘어야 할 산이 되어 주인공을 괴롭힌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자신에게 남은 어머니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는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면죄부가 된다.

 

 미야조노 카오리는 아리마 코세이의 어머니인 사키와 마찬가지로 시한부라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그 또한, 다소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기행을 저지르지만 이를 통해 주인공이 피아노를 쳐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인공이 가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영향을 준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앞서 말했던 요소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어린 나이에 죽는다는 점이 애틋하게 비춰지는 캐릭터이다.

 

 

 

네 번째 클리셰: 소꿉친구

 네 번째 클리셰는 소꿉친구이다. 소꿉친구는 주인공의 이해자이자 정서적 교류 상대이며 사건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아리마 코세이라는 인물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고, 주인공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사와베 츠바키, 와타리 료타는 클리셰를 착실히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미야조노 카오리와 아리마 코세이가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인물들이면서, 동시에 카오리와 코세이의 갈등을 만든 이들이기도 하다.

 

 와타리 료타는 카오리와 코세이의 관계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같은 이성을 좋아하는 라이벌 관계로서 코세이의 정신적인 성장 또한 도와주었다. , 가벼워 보이면서도 가끔 보이는 진지한 면이나 아닌 척하면서도 코세이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은 흔한 애니메이션 속 멋진 친구의 모습이다.

 

 사와베 츠바키는 코세이의 옆집에 살면서, 코세이가 그의 어머니에게 혹독하게 피아노 레슨을 받는 것을 지켜봐 왔으며, 코세이와 자신을 멀어지게 하는 음악을 싫어하기도 한다. 결국, 코세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코세이가 지망하는 학교와 가까운 학교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이들은 사랑에 있어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츠바키는 소꿉친구인 코세이를 좋아하고, 코세이와 료타는 카오리를 좋아한다. 엇갈리고 엇갈리는 관계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고전적인 클리셰이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이처럼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작품 속에 상당히 많은 클리셰적인 소재를 갖고 있음에도 명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클리셰가 자칫 잘못 사용된다면, 내용이 예측 가능한 진부한 작품이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셰가 사용되는 이유는 사회적 통념상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그 안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4]

 

 단순히 클리셰를 터부시하고 고루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클리셰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지속되어 온 약속이고, 이것이 명작으로 평가받아 왔기 때문에 쓰이는 것이다. <4월은 너의 거짓말> 이라는 작품 속에서도 수많은 클리셰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잘 녹아 들어 조미료와 같은 매력을 뽐낸다. 막상 작품을 보고 있는 와중에는 클리셰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지 않고, 보고 난 후에 그것이 클리셰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의 주요 소재가 청춘과 사랑이기 때문에 클리셰가 더 빛을 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소재의 참신함을 무기로 내세우지 않아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클리셰와 맞아 떨어져서 플러스 효과를 낸 것이다. 클리셰를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 충분한 개연성과 납득 가능한 설명만 있다면 클리셰의 사용은 충분히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1] . 시사상식사전, 클리셰, 접속일자: 2020.08.18.,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3062&cid=43667&categoryId=43667

[2] 듀나, 2019,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 제우미디어, 24.

[4] 시사상식사전, 클리셰, 접속일자: 2020.08.18.,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3062&cid=43667&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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