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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 : 그 칼날로 일본을 베다

정준희2020.12.28


 

 

21세기가 시작한 지 어언 20년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21세기, 이 20년을 대표하는 일본 만화는 무엇일까? <강철의 연금술사>, <블리치>, <데스노트> 등 수많은 작품이 거론되겠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하나 있다. 일본 만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1억 부를 돌파한 작품, 21세기 만화 중 권당 판매량이 가장 높은 작품, 연간 누계 발행 기록으로 <원피스>를 누른 그 작품. 바로 <귀멸의 칼날>이다.

 

이 작품이 처음부터 이런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던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초반부는 낮은 질로 비판받았으며, 이야기의 전환점인 <무한열차 편> 이후에야 <주간 소년 점프>에서 중간 가는 정도의 작품으로 취급받은 정도이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나 <블랙 클로버>, <약속의 네버랜드> 등 2010년대에 연재를 시작한 인기 만화들이 초반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출발이다.

 

이 작품의 명운을 가른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애니메이션 화였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귀멸의 칼날은 2019년, 사의 손에서 애니메이션화 되었다. <공의 경계>, 등으로 유명한 ufotable 사는 귀멸의 칼날 또한 성공적으로 만들어내었다. 아니, 성공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애니메이션 하나로 귀멸의 칼날은 원피스에 맞먹는 작품이 되었으니까. 그만큼 애니메이션화 이후 일본에서 귀멸의 칼날이 보여준 폭발력은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그 폭발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현재 일본에서 개봉 중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은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100억 엔을, 또 1,000만 관객을 달성하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뛰어넘어 일본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사회 현상으로까지 부를 정도이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애니메이션만의 공으로 돌릴 수 있을까? 만화가 훌륭한 애니메이션 회사를 만나 성공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강철의 연금술사>가 그랬고, <원펀맨>이 그랬으며, <진격의 거인>이 그랬다. 귀멸의 칼날이 앞선 사례를 뛰어넘는 상업적 성공을 이룬 것은 이 만화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과연 사람들은 귀멸의 칼날에서 어떤 매력을 찾은 것일까? 귀멸의 칼날은 어떻게 점프의 한 세대를 상징할 작품이 되었을까?


<귀멸의 칼날>은 어떤 작품인가? 

귀멸의 칼날은 다이쇼 시대에 사는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의 이야기이다. 숯쟁이 집안의 장남 탄지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느 때처럼 숯을 팔러 마을에 내려간다. 늦은 귀갓길, 사부로라는 노인이 밤에는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말하며 탄지로를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한다. 다음날 탄지로는 집에 돌아갔으나, 밤사이에 여동생 <카마도 네즈코>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죽었음을 알게 된다.

 

탄지로는 살아남은 네즈코를 데리고 마을을 향하나, 네즈코는 사납게 날뛰며 탄지로를 공격한다. 네즈코는 도깨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탄지로는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네즈코를 막지만, 곧 도깨비 사냥꾼, <귀살대>의 토미오카 기유를 만나게 된다. 인간 편인 도깨비는 없다며 네즈코를 죽이려고 하는 토미오카.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자신을 공격하는 탄지로와 도깨비임에도 가족인 탄지로를 지키려 하는 네즈코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꾸게 된다.

 

이후 탄지로는 토미오카에게 소개받은 노인, <우로코다키 사콘지>에게서 수련을 받고 귀살대에 들어가게 된다. 탄지로는 <아가츠마 젠이츠>와 <하시비라 이노스케>, 그리고 귀살대의 <주>(귀살대의 최고 전력 아홉 명)와 만나게 된다. 도깨비 사냥꾼인 이들은 도깨비인 네즈코를 경계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탄지로와 네즈코를 받아들이게 되고, 오히려 그들을 통해 자신들을 돌아보게 된다. 탄지로의 순수한 선함과 네즈코와의 가족애가 그들을 감화시킨 것이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도깨비의 왕, <키부츠지 무잔>이다. 그는 도깨비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도깨비로, 무수히 많은 일반 도깨비는 물론 <십이귀월>이라는 강력한 12명의 도깨비도 부리고 있었다. 도깨비는 몇 백 년에 걸쳐 인간들을 해치고 귀살대를 압박해왔다. 그러나 수많은 전투와 이별 속에서 탄지로와 동료들은 십이귀월은 물론 키부츠지 무잔도 쓰러뜨리며, 네즈코 또한 인간으로 되돌리는 데에 성공한다. 몇백 년간 이어져 온 귀살대의 마음, 그리고 동료와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이 이뤄낸 승리였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 무잔은 도깨비의 영생과 귀살대의 파멸이라는 자신의 유지를 탄지로에게 강제로 삽입하여 그를 도깨비로 만들어버린다. 목이 잘려도, 태양 빛을 맞아도 죽지 않는 탄지로를 막을 방법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러나 탄지로는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제어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동료가 놓아준 약 덕분에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러한 영웅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격렬한 전투 속에서 단명의 운명을 얻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일군 평화는 백여 년 뒤 레이와 시대까지도 이어져, 그들의 후손은 그 평화를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작품의 매력


1.보편적인 교훈

나는 작가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사랑, 평화, 반전, 아니면 차별과 평등. 더 무거운 주제도 좋다. 그렇기에 <나루토>나 <진격의 거인>을 좋아하고, 반면 <블리치>는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 보았던 <모노노케히메>를 이후 다시 보고서는 그 깊은 내용에 충격 받은 것이 계기였던 것 같다. 물론 이것만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아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매력적인 캐릭터, 흥미진진한 전개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 중에서 가장 우선으로 두는 가치가 작가의 목소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일본 작품들이 좋았다. 다양한 장르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 작품을 잘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일본 서브컬처의 갈라파고스 화에 질렸기 때문이다. 속칭 이세계 전생 작품들은 일본 내에서 유행한다는 이유로 계속하여 양산되는데, 이들 중 몇몇은 자기 장르의 특징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주제 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디지몬 어드벤처>처럼 이세계 전생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는 옛 작품들이 사랑과 검소함 등 보편적인 가치를 풀어내어 재미 가운데에서도 교훈을 주는 것과 달리, 최근 이세계 전생 작품들은 그저 이야기 자체의 흥미에 중시하는 듯, 주인공의 시련이 갖는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재미를 위한 이야기, 눈요기를 위한 여성들, 대리만족을 위한 능력. 물론 모든 작품이 이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특징을 가진 작품들이 계속하여 만들어지니, 나는 일본 서브컬처 자체에 싫증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귀멸의 칼날은 달랐다. 이 작품에 빠져들게 된 것은, 이 작품은 보편적 가치인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교훈을 풀어낸다. 상투적이고, 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교훈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나는 감동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행복을 빌기도 했다. 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강철의 연금술사>가 떠오르기도 하여 쉽고 강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가족애와 더불어 귀멸의 칼날을 관통하는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주인공인 탄지로는 올곧고 바른 마음을 지녔다. 탄지로가 자신보다 강력한 도깨비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결코 자신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단죄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낳을 수많은 비극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개인의 욕구를 위해 인간을 해치는 도깨비들과 대비된다. 어떤 강적, 어떤 난처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선함을 설파하는 탄지로의 모습은 곧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십이귀월 중에서도 세 번째 강함을 자랑하는 <아카자>와의 싸움이다. 아카자는 육체적인 강함을 추구하며, 자신이 만난 강한 귀살대원에게는 도깨비가 되라는 권유를 한다. 그러나 그의 권유를 받아들인 대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기른 힘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지키고 도깨비를 무찌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멸의 칼날은 선을 추구하고 타인을 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탄지로의 선하고 올곧은 모습, 그리고 네즈코와의 따뜻한 가족애는 내가 이 작품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니, 이 작품을 읽는 동안만큼은 아이처럼 그들의 행복을 바라게 되었다 하는 것이 맞겠다. 탄지로가 겪는 시련은 나를 가슴 아프게 했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곧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이미 나는 귀멸의 칼날이라는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이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만큼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다루기도 어려워 보이는 복잡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아이도 볼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런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이 작품은 교훈도,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단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교훈마저도 갖지 않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은 요즈음이기에, 보편적인 주제로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귀멸의 칼날은 내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2. 빠른 전개 속도

<블리치>나 <나루토>를 사랑한 독자로써, 장기 연재는 내게 안타까운 단어였다. 인기가 있었기에 더 오래 연재할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작품이 망가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귀멸의 칼날의 짧은 연재는 아쉽기도 하면서 안도하기도 하였다.

 

귀멸의 칼날은 2020년 5월, 205화를 마지막으로 완결되었다. 2016년 2월에 연재를 시작하고 완결까지 4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인데, <원피스>나 <나루토>와 같은 인기 만화가 10년이 넘는 기간을 연재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귀멸의 칼날이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고 바로 작품을 완결 냈기 때문이다.

 

작품을 관통하는 목표는 만화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독자는 주인공이 바라는 목표를 통해 주인공의 인간상을 이해하고, 그 목표의 달성을 응원하게 된다. 이렇게 설정한 목표를 도중에 바꾸는 만화는 많지 않으나, 그 과정은 어떨까?

 

<나루토>를 보자. 주인공인 <우즈마키 나루토>의 목표는 <나뭇잎 마을>의 수장인 <호카게>가 되어 불합리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에 암약하는 악당, <오로치마루>를 물리쳐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복잡해진다. 모든 일의 원흉인 줄 알았던 오로치마루는 사실 탈주 닌자 집단인 <아카츠키>의 일개 조직원이었을 뿐이다. 이후로 적은 계속 늘어만 간다. <페인>, <토비>, <우치하 마다라>, <오츠츠키 카구야>, <우치하 사스케>까지. 모든 적들을 물리친 나루토는 드디어 호카게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나루토의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카게가 되는 것뿐이었지만, 그 과정은 점점 늘어지고 복잡해졌다. 덕분에 나루토를 중심으로 하는 깊이 있는 서사를 볼 수 있었지만, 그 안에서 개연성이나 주제 의식이 상실된 면도 분명히 있다.

 

귀멸의 칼날을 보자. 탄지로의 목적은 명확하다. 자신의 동생인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그리고 모든 도깨비를 없애는 것이다. 그 과정도 명확하다.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강한 도깨비의 피가 필요하며, 도깨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들어내는 키부츠지 무잔을 없애야 한다. 즉, 작품이 초기에 내세우는 목표는 키부츠지 무잔을, 그리고 십이귀월을 포함한 그의 부하 도깨비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모든 목적을 달성했을 때, 만화는 거기에서 끝을 맺는다. 배후에서 무잔을 조종하던 악당도, 도깨비 외의 인간을 위협하는 세력도 없다. 네즈코는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왔으며, 인간은 도깨비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덕분에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다. 빠른 연재 종료 덕분에 조연의 비중 문제나 지나치게 상승하는 전투력 수준 등, <드래곤볼> 이래로 수많은 작품이 겪은 문제도 귀멸의 칼날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눈앞의 수익을 포기한 꼴이었을지도 모르나, 덕분에 작품이 더 높은 완성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작품의 아쉬운 점


1.단순하고 예측되는 이야기

앞서 명확한 주제 의식이 귀멸의 칼날의 장점이라 말했다. 상투적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어낸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공감되는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주제를 넘어 이야기 진행마저도 상투적이다. 심지어 작품 내에서도 일어나는 사건들마다 진행되는 방식이 유사하여, 어느 시점부터는 대략 작품의 전개가 예상가는 수준에 이른다.

 

귀멸의 칼날은 소년만화답게 전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이 새로운 적과 만나며, 새로운 동료와 함께 적에게 맞서 싸운다. 어려운 싸움 속에서 그 동료는 자신의 가슴 아픈 과거를 회상하고, 결국 동료와 함께 적을 쓰러뜨린다. 하현 1 <엔무>, 상현 6 <다키>, 상현 4 <한텐구>까지, 작품이 궤도에 오른 이후 모든 전투가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거기에 그 전투 과정과 결과마저도 대부분 유사하니, 독자들이 작품에 질릴 빌미를 스스로 만드는 꼴이다.

 

소년만화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볼>과 비교해보자. 물론 드래곤볼도 전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이야기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리저 편>을 보자면, 작품은 <나메크 성>이라는 행성에서 세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는 구도로 이뤄진다. 각각 <프리저>의 군단, <베지터>, 그리고 <크리링>과 <손오반>, <부르마>로 이뤄진 주인공 일행이다. 그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나메크 성의 <드래곤볼>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프리저 군단은 압도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다. 물량과 전투력 모두 다른 세력에 비해 압도적이며, 무엇보다도 전투력을 바탕으로 타인의 위치를 탐지할 수 있는 장치, <스카우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은 그들만이 가능한 기 조절을 사용, 스카우터로부터 탐지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베지터는 두 세력의 다툼 사이에서 조용히 이득을 챙겨간다. 이러한 구도는 <기뉴 특전대>와 <손오공>의 등장, 그리고 <베지터>의 아군 합류 등을 통해 완전히 변화하여, 이제 작품은 주인공 손오공과 절대 악 프리저의 결투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게 된다.

 

보다시피 드래곤볼은 결코 계속되는 전투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다. 적과 아군 사이의 힘의 관계를 중심으로 상황을 전개하며, 새로운 적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 등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최후에 기다리는 악당과의 한판 대결을 더욱 짜릿하게 만든다. 이는 비단 드래곤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유☆유☆백서>, <나루토>, <죠죠의 기묘한 모험>, 최근의 작품으로 보자면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까지. 물론 단순한 선악 구도는 귀멸의 칼날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를 기반으로 풀어내는 전개마저도 단순한 것은 결코 매력이 될 수 없다. 만약 도깨비 군단과의 싸움을 더 복잡하고 흥미롭게 풀어냈다면 작품의 매력을 더욱 빛낼 수 있지 않았을까?

 

 

 

2.너무나 빠른 후반부 전개

위에서 언급하였듯, 귀멸의 칼날의 이른 연재 종료는 많은 독자의 소망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연재하면 작품성을 해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결을 맞은 현재, 나는 이 작품에게 더 긴 연재 기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작품의 최종 국면에 들어서면, 키부츠지 무잔은 갑자기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서 귀살대의 본부를 급습한다. 구도는 명확해졌다. 주인공 일행은 세 마리 최강의 도깨비들을 포함한 무잔의 수하들을 물리치고, 최후에는 무잔을 물리쳐야 한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누야샤>에서 악당인 <나라쿠>가 도주를 반복하여 독자들의 원성을 샀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오히려 시원시원한 전개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시원한 전개와 급한 전개는 다르다. 가령 상현 2 <도우마>는 자신의 강함은 물론, <극락교>라는 종교단체를 거느린다는 점에서 전투가 기대되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무잔의 갑작스러운 징집 탓일까, 그는 종교단체의 수장이라는 설정이 무색하게 단신으로 세 명의 적과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든 독자가 기다리던 키부츠지 무잔과의 전투는 어떨까? 무잔은 <타마요>라는 아군이 만들어낸 독에 무력하게 당한다. 이 독은 엄청난 성능을 자랑해서 무잔을 만 살 정도 늙게 하는가 하면, 그를 천천히 인간으로 되돌려놓기도 한다. 무잔을 너무나 강력하게 설정한 탓에 당장 결말을 내기 위해서는 독 밖에는 수단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조금 더 연재하였더라면 어땠을까? 도우마와의 싸움은 종교 속에서 도깨비를 신처럼 받드는 인간들과의 갈등을 다룰 수 있었을 것이다. 무잔과의 싸움은 그의 약화를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설득했을 수도, 주인공 일행의 강화를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품이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문제라니. 회사로서는 이후 작품을 밀어주면서 세울 전략으로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

 

 

 

결론

귀멸의 칼날은 완벽한 작품이 아니다. 아쉬운 점들도 많으며, 아예 등을 돌린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실패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귀멸의 칼날이 세운 기록적인 성공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일본에서 귀멸의 칼날은 한 세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고, 훌륭한 애니메이션 덕분에 만화가 완결되었음에도 현재 진행형인 프랜차이즈로 존재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된 아쉬운 점들도 애니메이션화 과정에서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귀멸의 칼날은 일본 서브컬처 역사에 남을 대형 프랜차이즈이다. 귀멸의 칼날에 남은 과제는 해외시장 공략과 실사 영상화 같은 앞으로의 계획이다. 과연 귀멸의 칼날은 해외에서도 애니메이션 팬만 보는 작품을 넘어서 대중적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실사영화는 돈만 좇아 만들어진 흔한 만화 원작 영화가 될 것인가? 나는 귀멸의 칼날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이 작품의 미래를 앞으로도 관심 있게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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