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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창명성2019.11.23


 

(그림: )

 

살아갈 이유를 증명해내지 못하면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들은 무엇을 가져야 나아갈 수 있을까.

#라이트노벨 #판타지 #겨울 #우리는 무엇인가 # 고민과고뇌

 

방 한켠에 놓인, 방 전체가 비치는 전신거울.

거울 속의 내가, 더 이상은 싫다는 듯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꼴사납게 비벼 부은 눈을 하고 호흡까지 들썩이는 나와는 달랐다.

꼿꼿이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한없이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서는 적어도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거울 앞에서 울고 있었을 내 얼굴도 결국 거울 속 나와 비슷해지고야 말았다.

누구야, 너는.”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따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똑같이 생긴 나임에도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게, 비웃으려는 듯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한심한 스스로의 모습이 꼴 보기 싫어 거울조차 쳐다보지 않게 되었던 건.

방을 빠져나와 중앙 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어젯밤의 일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

어째서 그 일이 나한테.

왜 이제야 나한테.

또 그렇게 멍하니 걷고 있네. 어제도 늦잠 잔거야?”

나는 아무래도 낼 수 없을 활기찬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익숙하기에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목소리의 주인이 이내 뛰어와 내 옆에 나란히 서서 걷는다.

그 모습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대신, 그 옆에 있는 것. 정확히는 목소리의 주인 옆에 둥실거리며 떠 있는 것.

피어나기를 며칠 앞둔 것 같은 하얀 꽃망울이, 그 활기를 먹고 자라려는 듯 그녀를 떠돌고 있다.

그 꽃 때문에 너도 고생이겠네. 너야말로 못 자고 있는 건 아니고?”

내 말에 둥실거리던 꽃망울을 조심스럽게 양 손으로 잡아들고 그녀는 싱긋 웃었다.

그래도,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쁜걸.”

. 알다마다. 그랬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겪어보고 싶다던, 기쁨도, 슬픔도, 달콤함도, 씁쓸함까지도 모두 맛보고, 언젠가 그것들을 되새기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해왔다.

그렇기에 너에게는 찾아오기에 충분한 때임이 틀림없었고.

그렇기에 나에게 찾아오기에는 너무 멀었음에 틀림없었다.

너도 얼른 이 기쁨을 알면 좋을 텐데…….”

미안. 그건 잘 모르겠어.

.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지 않았음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아이 앞에서는.

 

중앙 탑에 가까워질수록, 같은 곳을 향하는 발걸음이 늘어난다.

대개 비슷한 나이들. 스물에 치르는 성인식을 코앞에 두거나 치른 이듬해, 그 이듬해.

가끔씩 보이는 서른과 마흔을 넘긴 자들까지.

그들은 어떤 명확한 증명’, 혹은 막연한 현상을 가지고 중앙 탑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하여.

올해는 유독 사람이 많아 보이네. 다행이다. 그치?”

……그러게. 다들 열심히 살려고 하네.”

중앙 탑에 도착하자, 그녀는 조금 긴장한 듯 꽃망울을 감싸 쥐었다.

그런 그녀에게 덧붙여준다.

너도 그렇잖아. 다행이야.”

멋쩍은 듯, 그러면서도 기쁜 듯 그녀가 웃어 보인다.

이제 슬슬 그럴 때도 됐잖아.”

그 말에는 나도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지……. 잘 다녀와. 너무 긴장하지 말고.”

.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고 나와 그녀는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그녀는 중앙 탑의 가장 아래로.

나는 그 아래를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지상 회랑으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 은은하게 빛나는 희고도 흰 꽃망울은 명확한 증명에 속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 신념, 그녀의 바람은 스스로 보기에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명확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한 달 전부터 그녀에게 찾아온 그것은 처음엔 씨앗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지금 꽃망울까지 자라났다면, 그 끝은 아마도 그 꽃의 만발. 혹은 더 나아가 그 꽃이 맺는 열매일까.

……. 그건 저 아래에서 있을 일이, 머지않은 시간이 대답해 줄 일이다.

나로서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지켜볼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회랑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난간 너머로 넘실거리는 불꽃이었다.

밑바닥부터 회랑에 이르기까지 15미터는 될 푸르른 불꽃.

그럼에도 느껴지는 것은 삼켜질 것 같은 거대한 열기가 아닌 쓰다듬는 듯한 온기였고, 역시 그 규모에 압도되기보다도 왠지 모를 포근함이 앞서 느껴진다.

이제는 익숙해진 위화감을 뒤로 하고 늘어선 의자에 앉는다. 곧바로 가장 아래에 다다른, 그녀를 포함한 오늘의 주인공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수는…… 열일곱 명. 대개 비슷한 나이들. 성인식을 코앞에 두거나, 성인식을 치른 이듬해, 그 이듬해. 그리고 중년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그들 모두가 각자 증명이 될 만한 것, 혹은 증명까지는 될 수 없을 징조로 보이는 무언가를 곁에 두고 있을 터였다.

그녀의 꽃망울과 같은 의미를, 하지만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 무언가.

푸르른 불꽃을 정면에 두고 그들이 한 줄로 모여서자, 불꽃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섰다.

머리의 후드를 시작으로 발목까지 완벽하게 감싼 잿빛 겉옷. 팔 역시 안쪽부터 까맣게 그을린 붕대, 그 위로 다시 겹쳐 감은 흰 붕대, 군데군데 묻은 재가 합쳐져 검정도 하양도 아닌 색감이었다.

잘 와주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도, 오랫동안 보아 온 분들도. 보시다시피 저는 이 불을 지키는 신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마흔이 넘어 보이는 남성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후드 사이로 비친 머리에는 한 올의 머리칼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증명을 들고 서 있던 중년 남자가 툭 쏘아붙였다.

, 그거 참 반갑수다. 반년에 한 번씩 봤으니 이게 몇 번짼가? 마흔 네 번째네? 숫자 한 번 재수도 없지.”

마흔 네 번이면…… 올해 41살이구나. 이 탑에서 22년을 지낸 건가.

신관은 그 말에 담긴 가시까지 받아들이듯 쓰게 웃었다.

그렇지만 지금에라도 이렇게 찾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쏘아붙였던 남자는 젠장할.’ 이라고 작게 되뇔 뿐이었다.

신관이 다시금 불 앞에 선 열일곱 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앞에 서신 열일곱 분도, 위의 회랑에 계신 많은 분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처음 오신 분들께서는 낯설고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이곳에 서신 이상 그 누구도…… 자신 또한 속일 수 없다는 걸 알 테지요.”

그 말의 무게가 와닿은 걸까. 아래의 열일곱 명도, 잡담이 오가던 위의 회랑도 순간 숙연해진다.

신관은 그 울림을 잠시 기다리듯, 잠깐 말을 멈추고 덤덤히 다시 이었다.

보여주세요. 여러분이 이 탑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증명. 혹은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징조. 저 불꽃이 여러분의 증명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이 탑을 나가실 수 있게 됩니다.”

그 말에, 방금 전 신관에게 쏘아붙였던 중년 남성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아무것도 없던 그의 손에 흐릿하게 나타난 것은, 쪼개지 않은 새빨간 장작이었다.

이젠 진짜로 지긋지긋하더군. 반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기서 나가게 해 주시오라고 빌었더니, 말 그대로 이 불꽃에 집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을 내려주시더라고.”

신관은 남자가 내려놓은 장작을 10초 정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푸르른 불꽃으로 다가가 팔에 감아 놓은 붕대 한 가닥을 풀었다.

그리고 붕대를 불꽃에 가져다댔다. 은은히 넘실거리던 푸른 불꽃이 천천히 붕대로 옮겨붙는다.

신관은 장작 앞으로 돌아와, 그대로 타오르는 붕대를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이 선별의 과정이었다. 붕대가 다 타 없어질 때까지 불꽃이 장작에 옮겨붙는가. 그러지 못하는가.

불이 옮겨 붙으면 합격. 저 장작은 그대로 저 불꽃 속으로 들어가 양식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저 중년 남성은 이 세상에 기여를 한 셈이 된다.

푸른 불꽃은 곧바로 옮겨붙지는 않은 채로, 저 스스로 중년 남성이 했던 말을, 그의 바람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장작 위에서 넘실거렸다.

빌어먹을…… 이제야 얻은 증명이라고. 저게 옮겨붙지 않으면 난 여기서 도대체 얼마나 더 썩어야 하는 거야……!”

그가 초조함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렇지만 우아하게 푸른 불꽃은 끝내 장작에 옮겨붙지 않았다.

회랑에 앉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흔을 넘기도록 탑을 빠져나가지 못한 그를 비웃거나, 혹은 안타까워하며 측은해하는 사람들. 자신이 저 앞에 서 있을 때를 걱정하며 탄식하는 사람들.

……나는,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쉽게 됐군요. 당신은 이 탑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는 바람으로 그 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뿐이라면 이 탑을 나선 다음에 당신이 가질 바람이 없습니다. 불꽃은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던 거겠지요.”

신관은 비웃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측은해하지도, 탄식하지도 않은 채 덤덤히 이야기했다.

젠장, 젠장……! 다들 입 닥쳐! 이 빌어 처먹을 불꽃에 왜 내 삶을 맡겨야 하는 건데! 말 한 마디도 뻥끗하지 않는 이 불꽃 따위에 왜 내가 여기 갇혀 있어야 하는 거냐고……!”

신관은, 그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덤덤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불꽃이 없으면 저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실낱만큼의 온기도 없이 영원히 차가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바람을 먹고 온기를 가져다주는 이 불꽃이 없다면 인간은 몰살입니다.”

그 말에 중년 남자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신관은, 그럼에도 무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유감스럽지만, 다른 바람을 찾아보도록 하세요. 이 불꽃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신관은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중년 남자에게서 몸을 돌렸다. 붕대가 타고 남은 재만 남아있던 장작에 금이 갔다.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증명을 가져오시길.”

 

그렇게 모두들 증명을 꺼냈다. 스물 중반쯤 되어 보이던 남녀는 서로를 상징하는 반지 한 쌍과 붉은 실을 보여주며 붉은 실을 불꽃에 태웠고,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되어 탑에 들어와 마흔을 넘긴 또 다른 한 여성은 눈물 모양의 진주를 꺼내 불꽃에 집어넣었다.

처음으로 선별에 참가했던 한 소년은 푸른 불꽃과 같은 색으로 빛나는 글씨가 적힌 꿈 일기를 가져와 징조로써 인정받았다.

예쁜 꽃망울이군요. 조금만 더 당신의 바람을 키워 꽃망울이 자라나면, 머지않아 활짝 필 겁니다. 그때엔 불꽃도 기뻐하며 받아주겠죠.”

그녀의 증명인 꽃망울도, 신관의 미소와 함께 통과.

열일곱 명 중 열여섯 명이 통과하고, 그렇게 보름에 한 번 있는 이번 선별은 끝이 났다.

 

꽃망울을 소중히 안고 그녀는 회랑으로 돌아왔다.

거 봐. 너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자, 눈에 띄게 기뻐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제야 안심한 듯, 꽉 쥐고 있던 꽃망울을 놓아주었다.

그런가봐. 정말로 다행이다... 처음 분이 통과하지 못했을 땐 나까지 가슴이 먹먹해졌다니까?"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자기 곁을 맴도는 꽃망울을 보며, 그녀가 다시 입을 연다.

"그나저나... 너에게도 어서 '징조' 가 나타나면 좋을 텐데..."

그 말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징조' 가 나타나지 않는 게 딱히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한 번 더 입을 다물려 했지만, 그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들도 벌써 스물일곱이 되어가잖아. 빨리 불꽃에게도 인정받아서,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싶어지지 않아?"

"......그렇게 되고 싶네."

그렇게만 말했다. 이 이상 말해서 그녀의 신념과 바람에 얼룩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

"미안한데, 먼저 가 있어. 신관님을 잠깐 뵙고 싶어서."

", . 이따가 저녁 같이 먹자~!"

묻고 싶은 게, 하다못해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이내 밝게 웃고 회랑을 나섰다.

그런 점이 만들어낸 게 아닌, 타고난 것이라는 게 정말로 아름답다 느껴진다.

가질 수 없는 것이라서 그런 걸까.

 

의자에 앉은 채로 불꽃을 바라보던 신관은 인기척을 느끼고 곧바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잘 오셨습니다. 아까 꽃망울을 들고 왔던 아가씨...와 늘 함께 다니시는 분이시군요."

"알아봐주시니 영광이네요... 아니, 여기 꽤 오래 있었으니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으신 걸까요.

내 말에 신관이 처음으로 빙긋, 하고 웃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비교적 오래 계셨으니 기억하게 된 건 맞고, 그게 싫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쩐 일이신지요. 다시금 불꽃을 바라보며 묻는 신관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나는 묻는다.

"이 불꽃이 저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번에는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신관은 일말의 여지없이 대답한다.

"당신이 무언가를 강하게 바라는 것입니다. 그 바람이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는다……는 눈빛이네요. 가족의 복수라는 바람을 가졌던 한 사람은, 복수를 위한 칼을 '증명' 으로 얻었고, 그 계획서를 이 불꽃에 태우고 나갔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았다.

"……그럼, 제 얘기를 해 드리죠."

그렇게 말하고, 신관이 나를 향해 의자를 돌렸다.

내 눈을 마주보며, 그는 다시 한 번 빙긋 웃었다.

"제가 왜 여기서 신관을 하고 있는지, 아실런지요."

나는 즉답했다.

"당신의 '바람' 이 이 곳에 머무르는 것과 관련이 있어서가 아닐까."

신관은 이내 참지 못하고 후후,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불꽃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맞아요. '증명' 은 이 옷이었죠. 불꽃이, 제게 '자기 옆에 서 있어라' 라고 명령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신관이 다시 내 눈을 바라본다.

"'바람' , '불꽃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다' 였습니다. 당신이 제게 던진 질문과 같았습니다."

.......

그것은,

아쉽게도 대답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저에게, '징조' 가 나타났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보여드릴 수 없지만."

신관은 계속하라는 듯 침묵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살아갈 이유가 없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도, 그 사람들이 '징조' '증명' 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신관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신관님께서 말씀하신 불꽃이 맞다면, 저는 분명 평생을 가도 타오르지 않을 폐품이겠지요. 그런데도 어째서, 저에게 '징조' 가 나타난 걸까요."

신관은 감았던 눈을 떴지만, 역시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같은 폐품도, '증명' 을 찾아 이 탑을 빠져나가야만 하는 걸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 역시 불꽃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정신을 차려보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몽롱하게 자고 깨기를 몇 번.

탑에서의 일이 2시쯤이었고……해질녘이니 적당히 6시가 되어가고 있으려나.

당장 밥이 먹고 싶지는 않다. 낮에 했던 신관과의 대화가 낳았던 우울함이 아직 남아있다.

빨갛게 석양이 날아드는 창가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빨갛게 물든 침대에 내 모양의 그림자가 덧칠해져, 이윽고 지금 내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신관이 말한 대로, 정말로 불꽃은 인간이 무언가 강하게 바라는 것을 바라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은 나에게 징조가 나타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걸까.

정말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게 나타난 '징조' 에 조금이나마 단서가 존재하리라는 것이다.

'징조' 는 언젠가 반드시 '증명' 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꽃망울처럼 누가 보아도, 스스로가 보기에도 바람이나 신념이 뚜렷할 경우, '징조' 의 형태 또한 명확하다. 씨앗이었던 것이 한 달 만에 꽃망울로 변한 것처럼, 그것이 언제 '증명' 으로 피어날지도 비교적 알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자신에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쫓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언제 '증명' 이 될지 알 방법이 없다.

그야말로 내 경우다.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쫓을 생각도 없다.

그런 내게, '징조' 는 무엇을 보여줄까.

……그것만큼은 조금 흥미로웠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수다스러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방에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어제의 그 때쯤이 가까워오고 있다.

방에 켜 놓았던 등을 끄고 거울 앞에 앉는다.

어젯밤 그랬던 것처럼, 어둑한 달빛만이 거울의 일부분을 비추었고,

어젯밤 그랬던 것처럼, 어슴푸레한 그 거울을 정면으로 쳐다본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쳐다본다. 지금의 나를 비추듯 무심하게.

그리고는 어젯밤 그랬던 것처럼 서늘하게, 비웃으려는 듯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나왔구나. 징조.”

어젯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곧바로 입을 열 수 있었다.

거울 속의 나라는 형태를 한 징조는 이제 막 일어난 듯 기지개를 크게 켜고, 의자에서 일어나 흥미로운 듯 방 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지금의 나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어찌 보면 그녀와도 닮은 밝고 활발한 움직임에서 나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라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혹은, 그걸 일부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지도.

미안한데, 방 구경은 내가 잠들었을 때 하시지. 서로 할 이야기가 있지 않아?”

그 말에 징조는 그대로 몸을 빙글 돌려, 대답은 없이 의자로 되돌아와 앉았다.

나와 같은 무심한 표정으로 되돌아온 징조는 지루한 듯 다리를 꼬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 한 번 지껄여보시지, 하는 눈으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 말에 다시금 징조는 시니컬하게 빙긋 웃어보였다.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나는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이, 징조라는 존재에 나도 조금은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

너는, 내가 여길 나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말에, 거울 속 징조는 잠시 손을 뒤로 가져갔다. 다시 거울에 비친 손에는, 몇 페이지나 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두꺼운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여지없이 징조는 책을 펼쳤고, 그곳에는.

누구에게나 여길 나갈 자격은 있어. 살아갈 이유가 있던, 그렇지 않던 말이야.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신관이 한 말과도, 여길 나간 사람들의 경우와도 다르잖아.”

마치 나 혼자를 위하는 것만 같은 그 말이 기만처럼 느껴진다.

징조는 다시금 무표정하게 페이지를 넘겨, 다시금 내게 보여준다.

신관이 어째서 네게 그런 말을 했는지,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어.

나는 대답 대신, 낮에 있었던 신관과의 대화를 되짚어야 했다.

당신이 무언가를 강하게 바라는 것. 불꽃은 나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기를 바란다고 신관은 말했다.

거기서 끝나면 안 되지. 신관 스스로는 무엇을 바랐는지 다시 한 번 떠올려봐.

어김없이 생각을 읽듯, 징조는 페이지를 넘겨 내게 재촉한다.

그의 바람은 불꽃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증명으로써 그는 불을 지키는 신관으로서의 의복을 받아 밖에 나가는 대신 이 곳을 지키며 사람들이 증명을 얻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아쉽지만, 그것만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징조의 웃음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강하게 바라는 것을 바란다. 불꽃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다. 그 사람은 어디에 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멋대로 생각한 걸까.

징조가 처음으로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라고 칭한 것. 그런 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을 짚어야만 했다.

신관이 했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거야?”

아니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조금 더, 한 글자라도 더 징조의 말을 끄집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진실을 알고, 그 진실로부터 너를, 너희들을 속이려 했을 때에 비로소 거짓말이 될 수 있으니까. 신관은 진실을 아는 것도, 너희를 속이려 하는 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한 징조는, 페이지에 한 문장을 잇는다.

하지만, 너희들이 무언가를 강하게 바라는 것을 바라는 것만은 사실이지.

어째서인지 싸한 기분이 든다.

이 예감은, 마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찬미하지는 않는.

그렇다면, 우리를 속이는 건 바로 징조…… 아니.

혹시나. 어쩌면.

그렇다면 너는, 어째서 그가 신관이 되도록 한 거야? 어째서 신관에게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낼 권리를 안겨준 거지?”

징조는 다시금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즐거워하는 듯하다. 하지만 억누르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 사이로 숨길 수 없이 새어나오는 그것은.

확실한 모멸의 감정이었다.

……이게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얼어붙어버릴 정도로 추운 바깥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온기를 안겨주는 불꽃인 건가?

다시금 날카로워진 내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며 징조는 페이지를 또 넘긴다.

그야, 그렇게 해야 더욱 확실한 신념을, 더욱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사람들이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그 대답뿐이었다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불꽃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기에,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찬미하지는 못하는 나이기에.

나는 이어서 입을 열수 있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더더욱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건데.”

징조는 처음으로, 펴 두었던 페이지를 덮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앉아있던 그 자세를 무너뜨리고는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의 모습을 하고 내가 꺼낸 말에 박장대소하는 그 모습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배를 부여잡고 웃어대던 징조는 30초 정도가 지나 다시 의자에 고쳐 앉았다.

그 뒤에 징조가 이을 말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징조는 이내 페이지를 다시 폈고, 그곳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너이기에 얘기해주는 거야. 잘 듣고, 평생 잊지 말고 바깥세상으로 나가도록 해. 너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이 말이 네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될 테니까.

나는 대꾸하지 않는다. 대꾸할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징조는 다시 보인 적 없던 웃음을 지었다.

그것에는 나에게서,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동시에 그것이 자신에게 커다란 즐거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했다.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희망이, 그리고 바깥에서 치는 발버둥이 크면 클수록 그 때 얻는 좌절도 더욱 크잖아? 그걸 보는 게 나의 유일한 즐거움인걸.

그 말에 확신할 수 있었다.

너는, 너무나도 추운 바깥에서 살아가기 위한 신념과 희망, 그것을 보인 증명으로써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주는 푸른 불꽃. 너는.

너는 바깥의 냉기. 추위를 내린 그 무언가와 같은 존재였던 거구나.”

그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온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인간의 문명과 정신을 꺾어왔던 그 냉기를 내릴 수 있는 존재라면, 그 반대로 냉기를 견뎌 나갈 온기를 내릴 수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너희들이 시련이라고 미화해서 부르는 그것들. 추위, 고통, 이별, 망각.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악질인 게 바로 희망인데. 마치 견뎌내면 그 뒤에 무언가라도 있을 것처럼,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주제에, 무언가라도 본 것처럼 너희를 움직이게 하는 그 막연하고도 불합리한 마음.

징조. 아니, 불꽃. 아니, 바깥의 겨울…… 이젠 뭐라 부를 수도 없을 거울 속의 존재의 표정에 담긴 모멸이 한층 깊어진다.

한때는 그렇게 끈질기게 버티다 얼어 죽던 너희에게 질려서 져버렸다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말이야. 다시 보니 이토록 재미있는 장난감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우리에게 불꽃을 통해 바깥으로 나갈 계기를 주고, 바깥의 추위 속에서 우리들이 발버둥 치다 좌절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울 속의 그것이 내 눈을 마주보며 빙긋 웃는다. 멀고도 많은 것들을 향한 시선에서 돌아와, 드디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다.

역시 너는 눈치가 빨라. 왜 내가 너에게만 이걸 이야기하는지까지 깨닫는다면…… , 정말로 즐거울 것 같은데. 지금 바깥에 나가 있는 녀석들 사이에서도 기억해 뒀다 지켜보고 싶어질 정도로, .

그 말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그것의 잔혹한 마음을 나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라는 건가.

정말로 유감스럽지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너는 나와 닮았어. 어느 부분이 닮았냐면, 인간들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찬미하지는 않는 점이 말이야.”

그런 내가 싫지만, 그렇기에 이 녀석은 나에게만 이 진실을, 바깥의 냉기도 이곳의 온기도 전부 인간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정말로 유감스럽지만, 살아갈 이유가 될 것이라는 그 말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거울 속의 그것이 빙긋 웃는다.

, 못 견디겠지?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던 너는, 바깥으로 나간 다른 녀석들의 발버둥을 지켜보면서 평생 고뇌하고 괴로워할 거야. 그렇지만, 너와 함께 나갈 그 아이…… 세상의 모든 것을 겪겠다던 귀엽고 당돌한 그 아이를 절대로 외면할 수 없겠지. 그 아이는,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은 네가 말하는 진실을 믿을까, 아니면 믿지 않을까. 아니면 믿으면서도 외면한 채 발버둥 칠까.

입술을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으니까.

나의 뜻인지, 이 순수하고도 잔혹한 세계의 뜻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채로, 나는 이제 바깥으로 나가야만 한다.

어느 쪽이었는지는, 나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에겐 무슨 증명을 줄 거지?”

거울 속의 그것은, 잠시 책에서 손을 떼고 다시 한 번 뒤로 손을 가져간다. 곧바로 그 손을 꺼내지는 않은 채, 다시 한 번 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있지, 내게 있어 너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네가 이 진실을 바깥에 나가 이야기할지 그렇지 않을지야. 그리고 너의 말을 사람들이 믿을지 믿지 않을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나라는 존재를 똑바로 쳐다보려는 시선과 함께, 빙긋 웃었다.

네가 언제 바깥에서 온기를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할지…… 그렇지 않으면,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얼어붙은 손발로 무언가를 계속 찾아 헤맬지. 옆에 있는 그 아이는 그런 너에게 있어 어떤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 후후…….

침묵하고 있는 나에게, 이윽고 그것은 뒤로 가져갔던 손을 다시 꺼낸다.

그런 너에게 주는 건, 그야말로 선물로써 주는 것이기도 해. 마음껏 바깥을 구경하고, 마음껏 발버둥 치고 좌절하도록 해. 하지만 너는 다른 사람들처럼 바깥의 그 어딘가에 언제까지고 머물지는 못할 거야. 끝없이 떠돌아야겠지. 그런 네가 금방 고꾸라지지 않게끔, 최소한의 돌아갈 장소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꺼낸 손에는, ‘증명이라 직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여기지만, 너에게만은 그럴 기회를 줄게.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와도 좋아. 다시 돌아온 이곳이 너에게 어떻게 와닿을지는 그 때의 문제겠지만……. 후훗.

거울 속에서 나를 향해, 거울 밖으로 뻗어 나온 손. 그 손에 들린 증명.

그것은 나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이자 믿음인 증명이 주어지는 순간이자, 유감스러울 정도로 빌어먹을 이 세계의 진실을 깨달은 순간이자,

그런 세계와 내가 끝끝내 악수를 한 순간이었다.

 

 

 

또 그렇게 멍하니 걷고 있네. 어제도 늦잠 잔 거야?”

나는 아무래도 낼 수 없을 활기찬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익숙하기에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목소리의 주인이 이내 뛰어와 내 옆에 나란히 서서 걷는다.

그 모습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대신, 고개를 아래로 살짝 숙인다. 정확히는, 내 목 아래로 시선을 옮긴다.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을 형상화한 무늬가 새겨진 열쇠. 그것을 꿰어 사슬로 엮은 목걸이. 한 번 나가면 잠겨 돌아올 수 없는 이곳으로 언제든 돌아올 수 있지만, 그런 나를 놓지 않겠다는 듯 열쇠를 굳게 꿴 사슬들.

열쇠를 들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보여주었다.

나에게도, 증명이 생겼어. 선별로부터 하루가 지나긴 했지만, 신관에게 보여주면 아마 같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그녀의 옆을 둥실거리며 떠 있는 꽃망울이 피어나듯,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어난다.

정말? 정말이야? 다행이다! 정말 기뻐! 함께 불꽃에게서 온기를 받아 나갈 수 있다는 게, 함께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나에겐 정말 최고의 선물이야!”

그녀가 활짝 웃으며 양손으로 열쇠를 쥔 내 손을 잡는다.

정말로 기쁜 거겠지. 그녀 혼자 나가는 것이 외롭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언제까지고 이곳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던 내게 증명이 생겼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으리라.

. 알다마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깨닫고 있었다는 게 그 무엇보다도 다행이었고,

그녀는 끝까지 깨닫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다.

너에게만은, 끝까지 모른 채로 있게 할 테니까.”

? 어떤 걸?”

불꽃의 진실을, 바깥을 덮고 있는 이 추위의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아이 앞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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