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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포항 중학생의

이석2019.05.19

목차 

 1. 1980년 당시 유시민의 "적자생존"

2.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1980년의 독자들

3. 2019년 포항 중학생의 유서와 서브컬처

4. 기울여진 운동장에서의 "적자생존"

 

1. 1980년 당시 유시민의 "적자생존"


2019420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한 유시민은 자신이 작가가 된 것은 "적자생존" 덕분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적자생존이란 "적는 사람이 생존한다."는 뜻으로 1980년 군부 독재시절에 유시민이 학생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라고 한다. 유시민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 학생회에서는 성명서를 내기 전에 학생들로부터 글을 모집해 그 가운데 가장 우수한 글을 성명서 초안으로 삼았다. 그러나 자유로이 모집해도 아무도 써오는 사람이 없어 당시 유일하게 투고한 유시민의 글이 항상 뽑혔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총학생회 성명서를 유시민이 전적으로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유시민은 "적는 사람이 이긴다"는 원칙을 경험으로 배웠다고 말한다.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한 유시민은 25살 때 감옥에서 쓴 항소이유서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그 이후 40여 년 동안 오피니언리더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시민의 "적자생존"의 전략이 언제나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적는 사람"이 적자생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그에 알맞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글 솜씨가 아무리 뛰어난다 하더라도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없다면 "적는 사람"은 생존하지 못한다. 군인 독재의 탄압과 폭력 아래서 유시민은 글을 썼지만 그에게는 서울대 총학생회 성명서를 기다리는 전국 수십만의 대학생 독자가 있었다. 한쪽에서는 검열하고 금지하는 정권이 있었지만 또 한쪽에서는 기대하고 바라보는 독자들도 있었다. 유시민이 성명서를 쓰고 항소이유서를 쓸 때 적어도 이 글들이 하나의 논쟁거리로 발전할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10, 20대는 어떠한가. 그들 가운데 제2의 유시민이 등장할 수 있을까. 그들이 홀로 무언가를 아무리 열심히 적는다고 한들, 유시민처럼 그들은 "적자생존"할 수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생각을 학수고대하는 독자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할까.

 

2.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1980년의 독자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화제를 일으킨 글은 아마 유시민이 1980년에 연행되어 쓴 진술서일 것이다. 당시 유시민의 진술서로 다른 학생 운동가들이 체포되었다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폭로에서 논쟁이 시작되어 관련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증언하고 한 세대의 기억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소환된다. 그러한 담론 판에 10, 20대 젊은이들조차 말려들어 댓글로 서로 다투고 시비를 가리는 소동이 지금도 한창이다.

"대화의 희열"에 나온 유시민은 더 이상 과거를 회고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학생운동 시절에 대해 젊은 세대는 "알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출연 패널은 "왜 알 필요가 없어요" 하고 질문하고 유시민은 1시간 방송 내내 40년 전 일을 회상하고 복기한다. 그러자 이 방송을 지켜 본 심재철 의원이 그 기억의 정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40년 전의 유시민의 진술서를 물증으로 제시한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고 각 인터넷 포털에서는 1980년에 관한 기억과 진상을 놓고 댓글 전쟁을 벌인다. 서로 정치적 성향도 다르고 의견 대립도 심하지만 그러나 1980년 담론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일하다. 모두들 1980년에 대해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그 역사를 너무나 알고 싶어 한다. 아마도 그날 그때의 진실을 알게 되면 자신들의 오늘날 삶이 크게 변하고 나아지리라 기대하는 모양이다.

 

 


 

3. 2019년 포항 중학생의 유서와 서브컬처

 

그러나 그럴 때 어느 포항 중학생의 유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 중학생도 절박한 마음에 홀로 글을 적었지만 도저히 이슈가 되지 않는다.

2019325일 경북 포항의 한 중학생이 도덕 교사의 꾸중을 듣고 자살했다. 그 중학생은 자습시간에 선정적인 만화책을 봤다고 도덕 교사에게 혼나자 자신이 본 책은 성인물이 아니라 여성의 그림이 담긴 서브컬처 소설책이라고 항변했다. 이에 도덕 교사는 수영복을 입은 여자 사진은 뭐냐고 했고 주변 학생들이 크게 웃었다. 도덕 교사로부터 20분간 얼차려를 받은 중학생은 다음 시간인 체육시간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도덕교과서에 쓰인 유서를 보면 "살기 싫다 무시 받았다" , “내용도 똑바로 안 보고 서브컬처를 무시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중학생이 본 "서브컬처 소설책"이란 "현자의 손자"라는 라이트노벨이었고 도덕교사가 지적한 "수영복을 입은 여자 사진"이란 라이트노벨의 만화 일러스트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학교 체벌과 훈육" 혹은 "학생 관리와 감독 책임"의 문제로 보고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공개적으로 체벌한 교사가 잘못했다"거나 "나약한 학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교사나 학생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댓글을 달았다. 개인 블로그에서는 서브컬처와 라이트노벨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지적하기도 했으나 이에 대한 진지한 논쟁이 공론의 장에서 전개된 경우는 없다. 중학생은 분명히 유서를 통해 "서브컬처를 무시하는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대중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교사에게 혼나기 직전에 작성한 설문지에서 중학생은 "가장 인상 깊게 본 책이나 영화""킬라킬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뽑았다. "킬라킬"2013-2014년에 방영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개성 넘치는 작화와 특이한 스토리로 호불호가 크게 갈려 결코 대중적이라 부를 수 없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최고의 명작으로 뽑은 것으로 짐작하건대 이 중학생은 평소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과 같은 서브컬처에 매우 친숙해 있었다. 또한 소심한 성격을 지녔다고 말해지는 중학생이 자신이 본 책이 성인물이 아니라 서브컬처 소설책이라고 교사에게 항변한 사실로부터 이 중학생에게 서브컬처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중학생은 위의 설문지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도덕 교사를 뽑았고 그 이유로 "올바르고 정직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서브컬처를 무시당했을 때 중학생의 상심은 매우 컸을 것이다. 어찌 보면 얼차려와 같은 체벌보다 서브컬처에 대한 교사의 무지와 경시가 더 큰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4. 기울여진 운동장에서의 "적자생존"

 

그러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도덕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서브컬처라는 젊은이문화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무관심과 무지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만약 공론의 장에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서브컬처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더라면 라이트노벨을 손에 쥔 교사의 태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혹은 라이트노벨이나 서브컬처에 대한 확신만 있었더라면 교사로부터 꾸지람을 듣더라도 중학생은 자기가 부정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그런 확신을 주기는커녕, 유서에 적힌 중학생의 메세지조차 차분히 읽어주지 않는다. 중학생의 유서를 읽어줄 독자가 우리 사회에는 현격히 부족한 것이다.

유시민이 말한 "적는 사람이 생존한다""적자생존"의 법칙에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40년 전에 작성된 1980년의 진술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한 달 전에 적힌 2019년의 유서는 소홀히 하는 사회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은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기울여진 운동장에서 1980년의 진술서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2019년의 유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 끊임없이 이 유서를 읽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10, 20대가 자신의 의견과 취향을 피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그렇게 적은 글들을 읽을 독자를 늘리는 것에 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1980년의 절박함만큼 2019년의 젊은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구체적 답변을 아직 찾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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