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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다츠히코의 장난감

관리자2018.12.12

 

대마왕 시부사와!?

 

시부사와 다쓰히코 (澁澤龍彦, 1928-1987) 만큼 일본 서브컬처에 깊은 울림을 남긴 이도 드물다일본의 유명 무크지에서는 작년에 그의 사후 30주년 특집호를 발간했는데 그 잡지에는 종교학자소설가패션 아티스트뮤지션평론가잡지 편집장 등 서브컬처 일선에서 활약을 펼치는 이름이 망라되어 있다이들의 연령도 다양하여 시부사와가 직접 가르쳤던 70대 불문학과 교수를 기점으로 시부사와를 대마왕이라 부르며 추앙하는 30대 인기 만화가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출판된 지 4,50년이 지나도 시부사와의 책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으며 시부사와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이번 달에 개봉할 정도로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다.

 

 


 

 

시부사와의 인기의 비결

 

이처럼 시부사와가 폭넓은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미의식이 독특하기 때문이다우선 그는 생산과 관련된 모든 덕목을 부정한다따라서 시부사와는 노동과 실리효율 따위 사회가 장려하고 수호하는 가치들을 경시하고 그 대신 유희와 탕진무의미 등 지극히 소모적이고 한시적인 가치들을 높이 평가한다.

 

사회에서는 생산과 노동을 통하여 개인이 자립한다고 주장하며 그 능력을 기준삼아 개인을 나누고 있다그러나 사실 노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는 말은 아우슈비츠의 강제 수용소에 걸려 있던 표어로 생산과 노동의 핵심은 각자의 개성을 뺏고 개인을 사회에 종속시키는 것에 있다. (그 이론적 근거로써 시부사와는 마르크스와 니체의 글을 빈번히 인용한다.) 시부사와가 활동하던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일본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며 생산과 노동이 곧바로 이윤으로 직결되었기에 생산과 노동에 관한 신화가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시부사와는 시종일관 생산과 노동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며 생산과 노동 탓에 한없이 왜소화되는 개인들에 초점을 맞췄다.

 

장난감의 미학

 

그렇게 사회 보다는 개인을 중시한 시부사와가 내세운 것은 장난감의 미학이었다시부사와에 따르면 장난감은 어떠한 목적이나 쓸모도 없이 단지 소비되기 위해 만들어진 대상이다그렇게 사용되고 없어질 뿐 사회가 원하는 그 무엇도 생산하지 않는 장난감을 시부사와는 평생 동안 동경했다체제의 지속과 발전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지금 사라지는 소모품 보다 미래를 생산할 수단에 중점을 두기 마련이다그러기에 오늘날 사회 안에서 소모품인 장난감의 위치는 열악한 것이다그러나 시부사와에 따르면 자취를 남기지 않고 소멸하는 장난감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존재이다그리고 이 순수함이 생산을 강요하는 사회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킨다장난감에 몰두할 때 개인은 미래와 목표를 잊고 진정한 의미의 현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개인은 그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며 이로써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쟁취한다시부사와가 장난감을 통해 반사회적 경향의 나르시시즘을 읽어낸 이유도 개인 본연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장난감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난감의 덧없고 짧고 은밀한 가치를 시부사와는 일생에 걸쳐 변호하고 설명하고 주장했다시부사와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예술가들의 인형과 마네킹놀이 기계들을 알기 쉽게 해설하며 새로운 장난감들의 탄생을 축복했다그렇게 시부사와가 애정을 쏟은 장난감 중에 한스 베르메르라는 독일 초현실주의자가 고안한 구체 관절 인형이 있다

 


 

 

 

구체관절 인형의 소개

 

한스 베르메르는 신체를 하나의 물체 (프랑스어로 오브제라 한다)로 간주하여 이를 구체 관절 인형으로 형상화했는데 시부사와는 그 구체 관절 인형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했다낱낱의 파트로 이루어진 구체 관절 인형은 신체의 구성이 작위적이며 일시적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하며 영원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닳고 소모되는 사물로써 인간을 보게끔 일깨워 준다즉물적이고 파편적인 구체 관절 인형의 아름다움을 시부사와는 대중에게 알리며 구체 관절 인형이 본고장인 독일보다도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이는 생산력이나 노동량으로 신체를 재단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역행하는 행태로 그 전통은 오늘날의 구체 관절 인형에도 남아 있다.

 

오늘날까지 시부사와가 기억되며 그의 이름이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사회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생산과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며 개인을 구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과거의 시부사와는 사회에 대항하여 구체 관절 인형과 같은 장난감을 유행시키며 순간적이고 파편적인 미학을 역설했다그의 글과 말을 통해 개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보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의 주류 문화와 상반되는 일본 서브컬처의 맹아들이 싹트기 시작했다일본 서브컬처는 기본적으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석, 일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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