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gation contents

왜 "뚱뚱한" 와타나베 나오미는 안 되고 "Black Lives Matter"의 오사카 나오미는 되는가. -도쿄 올림픽 개막식 이야기-

관리자2021.08.0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목차
1. 혹평 받는 올림픽 개막식
2. 개막식이 지겹도록 졸린 이유
3. 개막식의 진짜 청중은 누구인가.
4. 성화 점화자, 오사카 나오미와 다양성이라는 "세계적" 가치
5. 중국계 이바라기현 출신의 뚱뚱한 여성과 돼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혹평 받는 올림픽 개막식

 지난주에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국내외를 통틀어 이번 개막식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나쁘다. 해외에서는 "솔직히 우리 모두 졸고 있었다." (언론인 피어스 모건), "역대 최악의 개막식" (폭스 뉴스)과 같은 혹평이 줄을 이었다. 일본에서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유명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는 생방송에 나와 "보는 내내 잤다. 세금 물어내라. 개막식 때문에 부끄러워서 해외에 갈 수가 없다. "고 일갈했고 2채널을 만든 인플루언서 히로유키는 "형편없는 어른들을 방치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개막식과 같은 작태가 벌어졌다"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메시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번 개막식에서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글자 그대로, "다양성"이란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요소들을 한 장소에 모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이에서 스릴감 넘치는 역동성이 저절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다양성"의 기치를 내걸었다는 개막식이 침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히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다양성과 관련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행했는데 왜 이것이 "졸립고 지루하게만" 느껴질까.

2. 개막식이 지겹도록 졸린 이유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쿄 개막식이 내건 "다양성"에는 어떤 "갈등"이나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즉, 이질적인 것들이 모였을 때 당연히 발생하는 위험이나 갈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상투적이고 안이한 방식으로만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문화비평가 후지타 나오야는 대회 입장할 당시 일본선수단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시킨 사례를 들면서 개회식이 주장하는 다양성이란 결국 "(규율 훈련에 의한 형식적인) 조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바하 올림픽 위원장의 지루한 연설이 이어질 때 뒤로 눕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딴청을 부리는 외국 선수단과 차렷 자세로 경청하는 일본 선수단을 비교하면서 "누가 더 다양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평론가 사사키 아쓰시에 따르면 이번 개막식에서는 일본 사회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201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 기류에 발맞추어 사회 지도층들은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말만 그럴싸할 뿐,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개막식에서도 이질적인 문화가 등장하지만 서로 겉돌면서 그 안에서 어떠한 조화도 탄생할 수 없었다. 사사키는 마치 서로 다른 TV의 채널을 보듯이 개막식의 퍼포먼스들이 각자 따로 놀고 있는데 개막식에서는 이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비판한다.

  말하자면, 일본의 개막식에서는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윤리적인 메시지를 강요할 뿐,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들려주지 않았다. 그러기에 장장 20분 동안 이어진 바하 위원장의 연설처럼 개막식에는 일방적인 훈계만 있고 "갈등과 극복"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그 근본 원인은 "다양성"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사사키도 지적하듯, 개막식이 외치는 "다양성"이란 일본 사회가 현재진행형으로 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유럽 등지에서 공수해온 직수입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막식에서는 일본에 어떤 갈등이 있으며 어떻게 이가 해결되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구호뿐인 "다양성"을 공허하게 읊어대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본의 근대부터 내려오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난다. 전후 최고의 사상가, 요시모토 다카아키 (吉本隆明「転向論」)에 따르면 일본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고상한 가치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는 이를 절대시한다. 또한 자신이 배운 서양의 가치에 어긋나는 일본의 현실을 무시한다. 그리고는 일본의 현실에 대한 어떠한 고민 없이 일본의 대중들에게 생경한 서양의 가치들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양의 가치에 정통한 지식인들은 무지몽매한 대중들에 비해 지적, 윤리적 우월성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

3. 개막식의 진짜 청중은 누구인가.

  이는 요시모토가 비판한 근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오늘날 상황이 얼마만큼 변했는지 의문이다. 인플루언서 히로유키는 "이렇게 더운 여름에 올림픽을 여는 것은 미국의 시청자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도쿄 올림픽은 역대 최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더라"고 비꼬았는데 이번 개막식을 돌아보면 누구를 향해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있다.

 사사키 아쓰시도 지적했듯이 왜 개막식의 메인 테마로 현대 일본의 J-POP이 아니라, 이미 두 번이나 올림픽에서 사용되었던 50년 전 곡인 존 레논의 Imagine을 불러야하는가. 왜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된 일본의 소수민족인 아이누족 공연이 아니라 일본인도 잘 모르는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재즈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어야 하는가. 왜 서양 아이처럼 금발로 염색한 아이들과 검은 머리의 일본 아이들이 함께 뛰어노는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가 화합했다고 자축하는가. 왜 일본에서 대활약 중인 중국계 여성 코미디언(와타나베 나오미)이 올림픽 개막을 선언하는 원안을 파기하고 일본어도 못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테니스 선수(오사카 나오미)를 마지막 성화 점화자로 선택했는가. 일본의 개막식에서 말하는 세계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가.

4. 성화 점화자, 오사카 나오미와 다양성이라는 "세계적" 가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첨언하자면 마지막 성화 주자, 오사카 나오미 선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도 없다. 일본인과 아이티인 사이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란 오사카 나오미는 23살의 나이에 테니스 대회를 4번이나 우승했다. 게다가 백인 일색인 테니스 대회에 나와 "Black Lives Matter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인권 운동 표어)" 마스크를 쓰고 흑인 차별에 대해 강력히 항의해 "Breaking the Mold(틀을 깬다)" 라는 나이키 광고 모델로도 채택되는 등 미국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는 "문화적 다양성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개막식에서 가장 각광받는 성화 점화자로 낙점 받았다고 "다양성이라는 세계적 가치"가 갑자기 일본에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성화 점화자로 그녀가 나섰을 때 파격성이 안 느껴지는 건 그녀가 상징하는 가치가 일본 사회와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Black Lives Matter"는 오사카가 몸담고 있는 미국 사회를 향할 때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지, 일본 대중은 사회적 가치를 파는 나이키 광고를 대하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좋은 말이니까 당연히 응원한다. 그러나 나와는 관계없다고.

물론 흑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 그룹이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이상, "Black Lives Matter"와 일본 사회가 관련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이를 연관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흑인과 일본 마이너리티 그룹이 공감대를 쌓고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Black Lives Matter"와 같은 일들이 일본에서 벌어지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Black Lives Matter"가 일본 안에서 의미를 지니고 이를 표현한 오사카 나오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을 생략한 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다양성의 아이콘", 오사카 나오미를 점화자로 임명하면서 일본 사회도 변했다고 더욱 다양해졌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갈등에 대한 아무 이해나 고민 없이 무대에 세워졌을 때, 당연히 대중은 "생뚱맞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나이키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의류 광고 모델로 오사카 나오미를 알고 있는데 기껏해야 사회적 가치를 담은 나이키 문구 이상의 감동을 대중들이 받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오사카 나오미의 잘못이 아니다. 오사카는 자기가 이제까지 살아 왔던 미국 사회를 향해 흑인 정체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미국사회에서 받았던 차별에 대해 저항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일본 대중들에게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사카가 개막식에서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일본어도 못하고 아시아인이 받는 차별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않고 광고만 찍는 사람을 왜 성화 봉송자로 채택했는가" 라는 반응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우후죽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들과 언론에서는 이런 일본 대중을 두고 "차별주의자", "외국인 혐오주의자", "국수주의자"라고 욕하기 바쁘다. 생각해보자. 정작 비난을 받아야할 사람이 누구인지. 개막식 이전에 나이키 광고를 통해서만 오사카 나오미를 알고 있는 대중인가, 오사카 나오미의 경험을 일본 사회에 소개하기 보다는 오사카가 미국에서 얻은 명성에 부화뇌동하기 바쁜 지식인들인가.

5. 중국계 이바라기현 출신의 뚱뚱한 여성과 돼지

최근에 <주간지 문춘(週刊文春)>에서는 일본의 광고대행사 덴쓰의 개입으로 취소되어 버린 개막식의 원래 계획안을 공개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오토바이가 경기장을 질주하고 도쿄의 고층빌딩을 재현한 홀로그램이 난립하는 가운데 코미디언 와타나베 나오미가 뛰어나와 "Are You Ready?"를 외친다. 이에 폭죽이 터지고 개막식이 열린다. 개막식의 중심에 와타나베 나오미라는 여성 코미디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와타나베 나오미는 일본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를 두고 대만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해 대만인 어머니 밑에서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자랐지만 20세가 되도록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각고의 노력으로 와타나베는 일본 최고 정상의 코미디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에 중국에서도 "뚱뚱해도 멋있는 여성(太ってもオシャレ)"으로 알려지며 인기를 누린다. 중국 SNS에서도 "비만을 부끄럽게 여기는 일본에서 그녀는 특유의 코믹함으로 관중을 사로잡고 있다"고 소개되며 그녀가 입은 패션까지 유행한다. 대만에서도 사랑을 받아 와타나베는 "대만 친선 관광 대사"로 임명되었다. 현재, 와타나베는 일본에서의 인기에 머물지 않고 미국에 유학을 떠나 레이디 가가에게도 인정받고 있다.

 요약하자면 와타나베의 국제적인 스펙은 이렇다. 어릴 때부터 일본어와 중국어 사이에서 이중언어의 아픔을 겪지만 이를 극복해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 인정받고 현재 미국 헐리우드에 도전하고 있다. 게다가 "뚱뚱한 여자"에 대한 일본인의 각종 편견을 이겨내고 시골 이바라키현에서 상경해 자수성가한 코미디언이다. 이런 와타나베야말로 올림픽 개막식이 제창하는 "다양성"에 최적화된 인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와타나베를 지금의 일본은 어떻게 대했는가. <문춘>에 따르면 광고 대행사 덴쓰(電通)는 와타나베가 활약하는 원안을 파기하고 자기 회사 출신인 사사키 히로시를 개막식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래서 새롭게 내놓은 사사키의 아이디어가 와타나베를 돼지로 분장시켜 개막식에 출연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일본 대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결국 사사키도 스스로 사임했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와타나베를 출연시키는 것을 전면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접한 와타나베는 정작 자신은 본인의 체형에 행복하다며 "각자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즐겁고 풍요로운 세계가 되도록 진심으로 기원한다 (それぞれの個性や考え方を尊重し、認め合える、楽しく豊かな世界になれる事を心より願っております)"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러한 와타나베의 메시지야말로 올림픽 개막식이 보여주어야 할 "다양성"의 실제 사례였다.

  사사키의 차별적 발언보다 정말 아쉬운 것은 바로 와타나베의 출연 취소이다. 일본은 개막식의 총괄 책임자 사사키의 망언에 책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더욱 와타나베를 출연시켰어야 했다. 그래서 일본이 현재 앓고 있는 갈등이 뭔지를 보여주고 아울러 극복 의지를 동시에 내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맨 얼굴을 노출하기 싫었던 일본은 미국에서 활약 중인 오사카 나오미를 "생뚱맞게" 데리고 와서는 안이하게 "다양성"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연출가 송승환이 "의미는 강하고 감동은 없다"고 총평했듯이 이번 개막식에는 듣기 좋은 이야기만 가득하고 정작 내실은 없다. 이는 개막식에서 나이키 모델 오사카 나오미와 뚱뚱한 코미디언 와타나베 나오미를 어떻게 처우했는지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갈등 없는 다양성, 아픔 없는 가치는 허구이다. 이를 직면해야 할 시기에 일본이 와 있다.



*위의 이미지는 https://bunshun.jp/articles/-/44482?page=2 에서 가져왔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