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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광물 사이

관리자2018.12.12

 

박물학의 스펙트럼

 

 

 

사실 생물과 광물을 엄격히 나누는 사고방식은 최근에 와서야 정립되었다생물학이란 말 자체가 1736년에 출간된 린네의 저서에서 파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물과 다른 체계를 지닌 자연물로 생물을 바라본지 채 300년도 흐르지 않은 것이다.

 

 



 

기우치 세키테(木内石亭, 1725-1808)의 雲根志 중에서 

 

이렇게 과학이 출현하기 이전 인류는 생물과 광물을 이분법으로 구분 짓기 보다는 이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박물학의 시각에서 자연을 접했다여기서 박물학이란 실험과 분석 보다는 경험과 기억을 통해 자연물의 생태를 기록하는 학문을 지칭하는데 박물학의 과거 서적을 살펴보면 광물로도 생물로도 분류하기 힘든 자연물들이 무수히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다시 말해 실험도구와 공식이 아니라 육안과 소문을 통해 만난 자연은 광물과 생물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17세기경 세포의 발견으로 생물에 관한 정의가 명확해지고 점차 배타적인 학문으로써 생물학과 광물학이 발전하면서부터 박물학은 해체되기 시작한다박물학의 쇠퇴와 함께 광물과 생물을 구분하지 못 하던 인간의 감각은 자연스레 부정되고 이를 대신해 현미경을 통해서 보이는 세계만이 진실로 통용된다.

 

 

시무사와의 광물 컬렉션 

 

 

 


 

(이치카와 하루코가 그린 시부사와 다츠히코의 초상)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오늘이라 해도 현미경을 항상 눈에 끼고 살지 않는 한 광물과 생물의 모호한 경계에 의문을 품지 않고 지내기는 쉽지 않다일상을 살다보면 생물 같은 광물과 광물로 보이는 생물에 몇 번씩 조우하기 마련이고 이런 경험에 대해 현존하는 과학은 만족스런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다그 답답한 심정을 일본에서는 시부사와 다츠히코가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

 

시부사와는 과거의 박물학을 끊임없이 인용하며 광물과 생물 사이에 위치한 존재에 관한 기억을 부활시켰다특히 과학에 의해 무생물로 분류되면서 신비감을 잃어버린 광물의 매력을 일반 대중 사이에 전파한 그의 공로는 컸다일본에서 광물이 인기를 끄는 데 기폭제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시부사와의 에세이, “돌의 꿈”(1974)에는 천연의 그림이 새겨진 돌을 비롯하여 신을 품은 돌”, “최초이자 최후의 물질인 돌”, “태초의 물 이전의 액체가 담긴 돌에 관한 예전 박물학의 기록들이 망라되어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또한 시부사와는 직접 수집한 광물로 구성된 자신만의 컬렉션을 선보이며 광물 수집의 재미를 알려주었다.

 

보석의 신체

 

 

그러나 시부사와의 남다른 광물 사랑이 거둔 최고의 성과물은 무엇보다도 이치카와 하루코(市川春子, 1980- )와 같은 만화가를 육성한 것에 있다 할 수 있다스스로를 대마왕 시부사와를 모시는 하급 악마라 칭할 정도로 열렬히 시부사와를 추종하는 이치카와 하루코는 대마왕님의 미학에 듬뿍 젖은 작품을 세상에 유포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 공언하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이치카와는 보석의 나라”(宝石2012- 연재중)라는 진기한 작품을 지었다.

 


 

 

 

보석의 나라는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 남겨진 각양각색의 보석들이 살아 움직이며 자신들을 포획하러 하늘에서 내려오는 월인(月人)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보통 서브컬처 작품에서 무생물을 의인화할 경우에는 원래의 무생물이 갖고 있던 성격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강조되어 통속적인 휴머니즘이 작품에 진하게 배이기 마련이다그러나 보석의 나라의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형태로 활동하면서도 보통 생물과 다른 신체 감각을 보이고 있다그들의 몸은 작은 결정들로 짜여 신체 파트들을 언제든지 떼었다 붙일 수 있으며 더욱이 그 안에어떠한 중심도 통일성도 없다보통 생물의 뇌와 얼굴을 특권화하고 소중히 여기기 쉬우나 보석의 나라의 주인공은 팔 다리는 물론 머리가 없어져도 특별히 슬퍼하지 않으며 그 자리에 다른 광물을 이식시킬 따름이다그렇게 신체의 파트를 바꿔가면서 현재 주인공은 11 종류의 광물로 구성된 몸을 지니게 되는데 여기에는 생명이 순수하고 완전무결하다는 통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따라 주인공 안의 이물질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새로운 박물학의 향하여

 

만약 현대 과학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가 광물과 생물 사이에서 발견된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석의 나라의 주인공들은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실 보석의 나라의 재미는 전체 줄거리보다도 생물이라고도 광물이라고도 정의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생태를 발견해가는 데 있다

 


 

 

 

그네들은 먹고 마시지 않으며 늙지도 않지만 또 성장하지도 않는다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신체에 건조한 표정으로 영원의 시간을 견디는 그들은 광물학이나 생물학으로는 기재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작품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박물학자가 되어 세계를 탐구할 것을 명령받는데 이는 박물학이 아니고서는 그들을 기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보석의 나라라는 작품 자체가 오늘날 새롭게 쓰인 박물학 서적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보석의 나라는 작년 말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비평과 흥행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다광물과 생물의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들을 사람들은 두 손 벌려 환영했던 것이다.

 

 

(이석, 일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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