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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일본의 특별함’ - 도쿄올림픽 개막식 살펴보기-

강수연2022.01.07

들어가며

 

 20217232020 도쿄올림픽은 수많은 우려 속에서 시작되었다. 올림픽이 다 끝난 현시점에서 봤을 때, 이번 올림픽은 다른 여타 올림픽과 비슷한 감동, 오히려 이전 올림픽을 더 뛰어넘는 감동이 있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다.

 우리의 일상을 잠식했던, 아직도 잠식 중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723일의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우리에게 상상 이상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5년 전 2016년 리우올림픽 폐막식, 마리오 분장을 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4년 후 도쿄올림픽에서, 이번에는 우리가 감동을 전할 차례라고 선언했었다.1)

 

 

<사진 1>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일본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로 분장해 무대에 등장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사진 2> 2018 평창올림픽 개막식 드론으로 만든 오륜기.   <사진 3>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드론으로 만든 엠블럼.

 

 그러나 실제로 진행된 개막식에서는 마리오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리오는커녕 서브컬처가 전면으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기 어려웠고, 내포하는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퍼포먼스들이 이어졌다. 특히, 위 사진과 같이 드론으로 만든 올림픽 엠블럼은 지난 2018 평창올림픽에서의 드론 퍼포먼스와 겹치면서 새로움을 느끼기 어려웠다.

 우리가 기대했던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마리오, 도라에몽 이외 다수 일본 서브컬처로 이루어진 문화강국 이미지였지만, 실제 도쿄올림픽은 다소 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의 여타 올림픽과 다른 특별한 차이점을 찾을 수 없는 올림픽이었다.

 바로 이번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이다지도 혹평을 받게 된 이유는 일본만의 특별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부키와 목공 등 일본의 전통을 내세운 퍼포먼스들이 있었던 것을 들어 일본만의 특별함을 내보였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전통적인 일본의 모습이 전체 퍼포먼스와 제대로 섞이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지금부터 이 글에서는 우리가 일본에게 바랐던 일본만의 특별함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기술 강국 일본, 문화 콘텐츠 강국 일본

 

 먼저 일본의 올림픽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1964,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쿄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때의 일본은 기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당시로는 믿기 힘든 시속 210km의 신칸센 고속철을 선보였고 그로부터 약 15년 후에는 소니의 비디오카세트 레코더, 도시바 플래시 메모리, ‘오락실의 대명사스페이스 인베이더 등을 내놓았다.2) 세계에서 일본은 기술 강국으로서 이미지를 공고히 했고, 누구라도 일본의 기술력을 인정했다. 이 당시 일본의 특별함이란 세계무대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이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이미지는 문화 콘텐츠 강국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오타쿠 문화는 오타쿠라는 단어를 그대로 쓸 만큼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계적으로 봤을 때 애니메이션은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현재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도라에몽>, <포켓몬스터>, <나루토>, <원피스>, <블리치> 등의 작품의 인지도는 해외에서도 대단히 높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우리가 2020 도쿄올림픽을 기대했던 이유도 이와 같다. 예고편에 등장한 헬로키티, 도라에몽, 슈퍼마리오는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일본만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일본이라면 그러한 문화 콘텐츠를 내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지가 이 도쿄올림픽 개막식의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을 깨고 실제 개막식에 나온 것은 기술력, 전통, 서브컬처 등이 제대로 융화되지 못하고 따로 놀아 어느 것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다양성이었다.

 그 퍼포먼스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픽토그램3)이었다. 사실 픽토그램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일본만의 특색이 살아있는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픽토그램 자체가 서브컬처라고 볼 순 없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픽토그램이 하위문화인 서브컬처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일본만의 특색 있는 퍼포먼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를 뒤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곳곳에 등장한 서브컬처 요소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최초로 스포츠 픽토그램이 탄생했다는 의미와 더불어 50여 가지의 스포츠를 표현한 픽토그램을, 사람이 직접 나와서 마임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 다른 올림픽에선 볼 수 없었던 퍼포먼스였다.

 여기서 찾아볼 수 있는 일본만의 특별함이란 자연스러움, 유쾌함, 과장성, 캐릭터성이다.4) 픽토그램은 완벽하지 않았다. 상황의 급박함, 이리저리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중간에 도구를 놓치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실수하는 것도 그대로 방송되었다.

 그러나 픽토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그 실수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했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했고, 실수한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유쾌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 콘텐츠에서 자주 보이는 과장된 모습이 이 픽토그램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중간중간 등장한 사람들의 밝고 활기찬 캐릭터성도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사진 4> 배우들이 올림픽 경기 종목 픽토그램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 5> 인도네시아, 우간다 선수들의 입장.

 

 서브컬처에 요소가 곳곳에 등장하긴 했다. 그러나 완전한 서브컬처는 아니었던 픽토그램과 달리 서브컬처임에도 이러한 요소가 일본의 특색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위의 피켓을 자세히 살펴보면 만화 요소인 말풍선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경 써서 보지 않는다면 눈치채기 어렵다. 오히려 선수단의 유니폼이 훨씬 더 눈에 띌 정도이다. 만화·애니메이션이 유명한 일본의 특색을 살린 피켓으로 볼 수 있지만, 퍼포먼스만큼 눈길을 끌 만한 것도 아니었다. 우선 퍼포먼스를 통해 애니메이션, 게임과 같은 콘텐츠로 문화강국으로서 일본의 이미지를 다지고 피켓을 보여줬다면 더욱 눈에 띄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요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피켓과 같이 선수단이 입장할 때 많은 게임 OST가 같이 등장했다. 게임 음악을 선수 입장으로 사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통 선수 입장곡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대중가요나 전통 음악 등이 사용되기 때문이다.5) 쓰인 곡들을 살펴보자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대표곡인 '서장: 로토의 테마'를 시작으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승리의 팡파레'가 연이어 흘러나왔으며, 킹덤 하츠, 소닉 더 헤지혹, 그라디우스, 니어 레플리칸트의 음악들이 사용되었다.6)

 이전까지의 올림픽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을 사용했다는 것과 더불어 일본이 게임 강국임을 어필할 수 있는 독특한 요소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마니악한 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서브컬처 자체가 마니악한 것이지만,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도 알법한 애니메이션 OST, 혹은 열풍을 일으켰던 닌텐도의 OST도 아니었다는 점은 실망스럽다. 닌텐도는 한국의 ‘No Japan(일본 불매운동)’도 이겼을 만큼 그 영향력이 상당하고,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등의 게임은 어느 정도 게임에 대해 알고 있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해외 인지도가 높은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를 썼다면 반응은 더 좋았을 것이다.

 지난 2018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K-pop을 사용한 것은 이미 한국하면 K-pop을 떠올릴 정도로 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게임 OST를 사용한 것이 일본의 콘텐츠 강국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게임은 능동적으로 직접 찾아서 해보지 않는 이상 접하기 어렵다. 수동적으로 TV 방송에서 채널을 돌리다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비해서 그 접근성과 파급력이 떨어진다. 게임 마니아들에겐 높은 호응을 끌어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게임을 잘 모르는 필자는 게임 OST에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개막식 이후, 올림픽 경기와 폐막식에서 <하이큐>, <귀멸의 칼날>과 같은 애니메이션 OST가 쓰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만회되었다. 그러나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에서부터 사용했었다면 더욱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나가며

 

 일본 특유의 마임, 일본의 특색을 살린 픽토그램은 사람들에게서 큰 호응을 이끌어내며 이번 올림픽의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다른 퍼포먼스들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오히려 지루하다는 혹평만 들었다.

 1964년이 아닌 2021년 일본의 특별함은 기술력이 아닌 문화 콘텐츠였다. 일본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깨닫고 서브컬처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기술력, 또는 전통을 잘 섞었다면 이보다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모든 일본의 특색이 서브컬처, 문화 콘텐츠에서 나온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일본에서 세계가 기대하는 것이 문화 콘텐츠라는 점에서 일본은 세계의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새로운 특색을 가져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혹평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서브컬처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였던 것은 서브컬처가 중심이 아니었다는 것에 있다. 말풍선 피켓이나 게임 OST 등 서브컬처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되지 못했다.

 코로나19는 일본이 서브컬처를 개막식에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준비해왔을 올림픽이 계속해서 무산될 위험 속에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있었음은 세계인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일본이라면 그 어려움을 딛고, 코로나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세계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올림픽 개막식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일본의 모습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위험 속에서 밝고 행복하기만 한 개막식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를 택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일본은 일본의 특별함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이 어떤 특별함을 가졌는지, 세계인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동안 세계인을 감동시켜왔던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개막식에 나오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너무나도 높았던 기대치가 이번 올림픽 개막식 패착의 요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 고선윤, 2021, [세계의 창] 아베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2020 도쿄올림픽, 그리고 개헌https://news.imaeil.com/Satirical/2021081610120679011(검색일: 2021.9.6)

2) 최서윤, 2021, "한국에 상대 안되네"57년만의 도쿄올림픽, 기술대국 의 굴욕https://news.nate.com/view/20210720n11914?mid=n0501(검색일:2021.10.9)

 

3) 픽토그램: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통할 수 있는 그림으로 된 언어체계를 의미한다. 픽토그램이라는 단어 자체는 생소하게 느껴지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철, 화장실, 식당 등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고 언어를 모르더라도 그림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게 쓰인다. NAVER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607519&cid=58598&categoryId=59316(검색일: 2021.9.6)

4) 김혜빈, 2021, [Opinion] 픽토그램 시퀀스, 한마디 말 없이 보여준 '일본' [문화 전반],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5097(검색일:2021.11.11)

5) 이재오, 2021,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울려퍼진 게임 OST,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664294(검색일: 2021.9.12)

    6) 위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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