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gation contents

‘애니’ 속 npc의 모순

나물2019.11.23



키워드: 이세계물, npc, 일본 전후 만화, 신도 신앙

 


‘애니’ 속 NPC의 모순

 

npc란 non-player character의 약어로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 세계의 주민들을 지칭하는데, 인격이 없으며 사전에 설정된 대사를 말하고 게임 내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대부분의 npc는 한자리 또는 한 지역에 머물면서 도우미 역할을 하고, 플레이어는 이들에게서 퀘스트를 얻어 수행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다. 이 때 플레이어가 npc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npc를 ‘클릭’해야만 하고, ‘대화창’을 통해서 대화가 가능하다.

(게임메이플스토리』: 플레이어가 전직을 하기 위해 NPC "시그너스 여제"와 대화하는 모습)

 

이세계물 애니는 게임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에 게임적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따라서 npc도 등장하는데, 그 npc들은 애니 속에서 프로그래밍된 대사만 읊지 않고, 마치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같이 대화창없이 npc가 입으로 직접 말을 하고, 표정을 짓고,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로그 호라이즌』이라는 애니의 1화에서 상점npc가 플레이어와 흥정하는 장면이 나오고, 3화에서는 악당 플레이어가 상인 npc를 협박하며 금품을 갈취하는데 이에 npc들이 나무 뒤에 숨어서 플레이어를 두려워하며 울고 있다. 5화에서는 주인공이 npc를 만나는데 알고보니 그들에게 각각 이름이 있고, 그들 나름의 과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은 “그들은 인간이야. 저 ‘사람’들한테는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감정이나 추억도 있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오버로드』라는 애니의 1화에서 특히 게임 속 npc와 애니 속 npc의 차이점이 두드러지는데, 커맨드를 통해서만 작동되고 대화했던 게임 npc와는 달리 게임이 현실이 되자, 애니 npc들은 커맨드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 또한, 실제 사람처럼 대화하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목소리의 높낮이 등이 나타났다.

 

이러한 애니의 npc들은 단지 대화창을 통해서 정해진 대사만 읊는 것이 아니라, 대화창 없이 대화가 성립하고 표정이 변하며,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을 내비치고 있다. 마치 ‘npc’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게임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npc들은 항상 특정한 자리에만 위치하고, 대화창을 통해 프로그래밍된 대사만 읊고 퀘스트만 주는 정말 npc의 정의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며, 필자 또한 이 캐릭터들을 특별히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반면, 애니 속 npc들은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며 각자의 과거가 있었고, 실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왜 애니메이션의 npc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기호’적 표현을 의인화하는 일본 전후만화

 

1979년, 데즈카 오사무는 한 인터뷰에서 “만화의 본질은 기호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즉 npc뿐만 아니라 조연, 심지어 주인공 캐릭터 또한 기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도 만화와 다르지 않다. 그저 기호들의 조합을 빠르게 보여주어 연속성을 부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또한 기호(記號)적인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오쓰카 에이지 『망가·아니메』가 만화의 기호적-신체적 양의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기원을 데즈카 오사무의 초기작 『승리의 날까지』의 한 장면에서 보고 있는데, 그 장면에서는 만화적인 캐릭터가 기호적인 표현인데도 불구하고 총탄 세례를 받고 피를 흘리고 있다. 오쓰카 에이지에 따르면 데즈카가 기호의 집적에 지나지 않는 캐릭터에게, 총에 맞으면 피를 흘리는 살아있는 신체를 부여한 순간 ‘전후 만화’가 발생한다.

 

단순한 기호적인 표현에 불과한 만화 캐릭터가 총에 맞으면 피를 흘리고 아파하며, 가까운 이가 죽으면 슬퍼한다. 인간과 같은 신체를 부여하고 감정을 부여하여, 다치면 피를 흘리고 슬프면 운다. 기호로 리얼한 인간을 표현하였기에 우리는 이런 캐릭터를 사람처럼 느껴서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게임 속 npc에도 인간과 같은 신체를 부여했지만, 신체의 외형만 주어졌을 뿐, 게임 npc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대화창이 필수적이며, 게임 npc에게 공격스킬을 써도 피가 튀거나 아파하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말 "npc"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감정, 사고, 신체 모든 것이 인간과 같은 애니 속 캐릭터들은 (주인공이든지, 기계든지, 심지어 npc든지) 애니 속에서 실제 ‘사람’과 같이 대화를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그 세계의 한 ‘일원’으로서 행동한다. 이것이 게임과 애니의 npc의 차이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기호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캐릭터성을 부여해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전후 만화”에서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통이다.

 


npc마저 의인화하는 일본의 신도 신앙


 

실제 로봇이나 복제인간을 인간처럼 보는 경우는 많아도 npc같은 존재조차 인간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일본 외에 유래를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일본 애니는 왜 npc조차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에서 찾을 수 있다.

“신도 신앙은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의 일종으로 만물에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미야자키 하야오의 신도적 애니미즘 연구, 조혜정, 2015)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등 대다수의 종교에서 신이란 ‘인격’을 갖춘 존재로 등장하는 반면, 일본의 신도 신앙에는 돌, 나무, 동물 등 인간으로 체화되지 않는 대상을 숭배하는 원시 종교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따라서 신도는 모든 물체 안에 영이 존재한다고 믿는 원시자연종교의 형태로서, 애니미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의 ‘신’의 개념은 신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성스러운 힘이나 초월적인 권능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는 모든 존재들을 포함하는데 이렇듯 일본인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신도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일본인들은 아무거나 믿는다”라고도 할 수 있다. 집 앞의 나무도, 물도, 죽은 사람도, 모든 것이 일본인에게는 신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신도 신앙이 바탕을 두고 있는 애니미즘은 생명이 없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영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동물, 식물 심지어 무생물조차 신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신도 신앙에 바탕을 두고 인격이 없는 존재인 npc 또한 생명이 있고, 영과 더불어 살아가며 신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인 npc를 사람처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즉 이러한 일본의 신도 신앙에서 npc도 의인화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NPC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결정적 이유 – 일본 전후 만화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도 신앙은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의 일종이다. 애니미즘과 토테미즘과 같은 신앙이 언제부터 탄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원시 시대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이고 또,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토테미즘의 예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곰과 호랑이가 나오는 한국의 단군왕검설화를, 애니미즘의 예로는 태양과 물에 대한 숭배를 들 수 있다.

물론 일본의 신도 신앙이 npc의 의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맞다. 인격이 없는 npc에도 영이, 즉 생명이 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npc를 ‘사람’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 일본이 아니었더라도 애니미즘의 영향을 받았던 나라에서도 npc를 의인화하여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인화된 npc는 다른 나라보다 일본에서 유독 인기가 높다. 따라서 일본의 신도신앙의 영향만으로 일본의 npc 문화를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에 필자는 일본의 전후만화가 신도 신앙보다 더 일본의 npc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실 아즈마 히로키의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을 읽고 난 후 npc뿐만 아니라 애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기호였다는 사실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아즈마의 글을 읽기 전에 필자는 자연스럽게 애니나 게임 속 캐릭터들을 인간이라고 인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자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현재 캐릭터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게 당연하듯이, 그 반대였던 시기가 전후만화 탄생 전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연했던 사실을 바꾼 것이 바로, 기호에 지나지 않는 캐릭터에 인간의 신체를 부여하여 탄생한 ‘전후 만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상식을 ’그렇지 않다‘라고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신도 신앙이 분명 ’기호‘를 ’생명‘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것은 맞지만, 실제로 캐릭터에게 신체를 주어서 결국 많은 사람들이 기호를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한 ’전후 만화‘가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장치인 ‘전후만화’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npc가 인격적으로 묘사되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npc의 정의 – 애니 로그 호라이즌』 5화 중

2. Paula, 2011, ‘신도-일본 애니메이션 속에 나타난 신도 사상에 관하여’,

http://m.blog.daum.net/aspire7/8436365?tp_nil_a=2(검색일: 2019.11.11.)

3. 아즈마 히로키, 장이지 옮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2012.

4. 조혜정,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도적 애니미즘 연구, 한국영화학회, 201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