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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들아, 그만 빼앗아다오
1. 들어가며
2023년 3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인 멜론에서 imase의 <NIGHT DANCER>가 ‘톱100’의 17위까지 올라갔다.1) 멜론 서비스 역사상 처음으로 톱100에 J-pop이 입성한 것인데, 뒤따라 ‘아이묭’, ‘후지이 카제’, ‘유우리’등의 J-pop 가수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등의 숏폼 컨텐츠의 영향이 크다. 곡이 발매된지 수개월부터 수년이 지난 시점에서 숏폼 컨텐츠의 BGM으로 쓰이거나 ‘챌린지’ 영상의 해시태그로 재발굴되며 발매일과 관련 없이, 한박자 늦은 인기를 누릴 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J-pop 팬들은 이런 상황이 얼떨떨하다. ‘나만 알고 있던 가수인데’라며 국내 발라드나 미국의 팝송, 힙합의 소비층이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일본의 멜로디를 갑자기 좋아한다고 하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들이 ‘다른 J-pop 추천해줘’라며 말을 걸어오면 왠지 모를 질투심까지 느껴진다. 나만 알고 있던 가수를 빼앗겼다는 심리를 뒷받침할 만한 타당한 이유는 찾기 어렵다. 마이너한 취미를 소비하는 것으로 남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구분을 지어서 개성을 확보하려는 심리는 옹호받기 힘들다.
2. 오타쿠와 찐따
하지만 이 정도로 J-pop을 쉽게 놓아주기엔 마음속 한쪽이 아려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주류 문화가 비주류 문화를 침범한 사회적 현상이 이미 한 번 있어서, 자신의 영역이 두 번이나 침범당한 ‘우리들’이 쉬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인싸·아싸’라는 신조어의 사용 행태다. 인싸와 아싸라는 단어가 어떤 형태로 쓰이고 있는지 알아보기에 앞서, 어떤 사람들이 문화가 침범당한 피해를 받았는지를 살펴보자. 그 사회 계층 중 한 부류는 ‘오타쿠’다. 오타쿠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만화 브리코’잡지의 ‘오타쿠 연구’ 내용을 살펴보자.
뭐랄까, 보세요, 어느 반에나 있을 겁니다. 운동은 젬병이고, 쉬는 시간에도 교실 안에만 있고, 그늘에서 꼼지락거리며 장기 같은 것에 열중하곤 하는 놈들이, 바로 그들입니다.2)
이 글에서는 또한 ‘엄마가 사다 준 옷을 입는다, 뚱뚱하다, 친구가 없다’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칭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오타쿠는 다를수도 있지만, 저 범주에 여전히 속하고 있는 사람들은 스쿨 카스트에서 최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운동은 젬병이고 쉬는 시간에는 교실에만 있다는 특징은 한 연구의 ‘찐따’의 특징으로도 묘사된다.3) 위 연구에서 찐따는 스쿨 카스트 자체에 관심이 없고 숨어지내며, 학급 내 ‘일진’에게 알아서 무릎을 꿇기도 하는 약자라고 한다. ‘찐따’와 ‘오타쿠’라는 두 집단은 결코 같은 집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공통점이 많은 부류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두 집단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학급 내 최하층인 ‘찐따’ 계층 또한 앞으로 언급할 문화를 침범당한 사회 계층의 하나다.
3. 인싸와 아싸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싸와 아싸라는 단어는 위와 같은 ‘학급’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초·중·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생의 교우관계에서 파생되었다. 먼저 ‘아싸’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로, ‘어쩔 수 없이’ 대학의 주류에서 배제된,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작가 기안84는 웹툰에서 아싸를 게임 속 투명한 유닛인 다크템플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싸의 반댓말 ‘인싸’는 대학 내부의 학생 공동체에 잘 적응하고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인사이더 (Insider)의 줄임말이다.4) 아싸는 분명한 부정적인 단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성의 결핍을 보인다면 그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싸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혼자 밥 먹기, 영화 보기, 술 먹기 등 혼자 노는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혼자가 유별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힙(hip)하다, 고유한 개성과 감각이 있다고 포장되기까지 한다.5)
심지어 인싸·아싸의 일방적인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본인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나는 인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아싸다’라고 해야 겸손함을 겸비한 ‘센스있는 인싸의 자기소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아싸는 자기소개에 감히 인싸나 아싸를 담을 수 없다. 아싸라는 자기 정체성이 남에게는 겸손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오타쿠와 찐따는 어떨까. 그들은 혼자가 편한 능동적인 아싸가 아닌, 어쩔수 없이 아싸가 된 수동적 아싸일 것이다. 자신에게 자연스레 아싸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때, 그들은 인싸들이 자신을 아싸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까?
4. 마치며
이처럼 오타쿠·찐따 집단은 아싸라는 타이틀을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집단이다. J-pop이 인싸들에게 소비되고 있는 현상은, 그들이 느끼기에 주류 문화 소비자들의 기만에 가까울 것이다. 주류 집단에 속해있으면서 자신을 아싸라고 겸손을 부리는 사람과,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에서 많이 들어봤다고 본인이 J-pop의 소비자라고 감히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결코 자신과 같은 ‘아싸·J-pop 팬’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J-pop과 같은 마이너 취미를 향유하려면, 그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한가?’
주
1) 헤럴드경제, 2023년 7월 4일자, “멜론 들어온 J-팝...음악엔 국경이 없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30704000470).
2) 中森明夫, 『おたく』の研究 第1回, (http://www.burikko.net/people/otaku01.html).
3) 김병찬, 최인호, 2014, 「초등학교 학생들의 권력 관계에 대한 질적 사례 연구」, 교육행정학연구, 32, 4, pp.347-351.
4) 구자준, 2015, 「웹툰의 대학사회 재현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pp.35-37.
5) 투데이신문, 2020년 12월 18일자, “[자발적 아싸의 시대①] 무너지는 인싸와 아싸의 경계” (https://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