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gation contents

e스포츠의 시대, 게임이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진예은2023.02.03

부제 : 당신이 동경하는 바로 그 위치로 

<포켓몬스터 소드·실드> 



1. 들어가며 : 주류와 비주류, 그 사이에서

 

좋아하는 게임 방송 일부분을 친구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원칙적으로 그 게임에서 일어날 수 없는 버그가 발생하는 장면이었기에, 그 게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웃음을 자아내는 영상이었다. 친구는 시큰둥한 얼굴로 영상을 끝까지 시청한 후, ‘어떤 점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나는 이 부분이 왜 재미있는 것인지설명하는 설명충이 되어야만 했다.

일정한 시스템과 룰에 의해 성립되고, 이러한 룰을 모르면 유흥이 되기는커녕 이해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게임은 스포츠와 궤를 같이 한다. 야구의 규칙을 모르는 사람에게 빠른 호흡으로 이어지는 트리플 플레이(수비 팀이 연속된 동작으로 3명의 공격 팀 선수를 아웃시키는 플레이를 말한다.)를 보여준 적이 있는가? 아무리 멋진 콤비라고 하더라도, 야구 문외한에게서는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뭔데이상의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인 프로게이머 중 하나인 페이커가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장면이 연출되더라도, 그가 활동하고 있는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에 환호할 수 없는 법이다.

그나마도 야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는 매우 대중화되어 있기에 점수를 내는 장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규모 e스포츠 대회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독특하지 않을까. 화면에 등장하는 작은 캐릭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환호하거나 탄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특함을 딛고, 비주류 문화인 e스포츠 세계를 이해해가는 관객들은 점차 늘어가고 있다. 놀이로서의 게임을 하는것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의 플레이를 보면서즐기는 문화는 점차 확대되는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게임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며, LOL이 어떤 장르의 게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페이커(이상혁)의 이름을 알거나, 많은 어린이들이 장차 게임 스트리머나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이들을 겨냥한 이른바 게임 학원도 개원한다. 점차 e스포츠는 비주류 문화를 넘어 주류 문화로 거듭날 태동을 하고있는 것이다.

 

2. <포켓몬스터 소·실드>가 구현하는 현, 그리고 단델

 

스포츠든 e스포츠든, 언제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동경하는 선수와 SNS로 소통할 수 있는 세계. 자신도 그러한 스타가 되리라고 꿈을 꾸고 노력할 수 있는 세계. 올해로 26주년을 맞는 <포켓몬스터>가 2019년에 선보였던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의 세계는 이러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림 1. 2019년에 출시된 인기 게임 <포켓몬스터 소드·실드>

 

 

가라르 지방의 체육관 관장과 포켓몬 챔피언은 실력있는 포켓몬 트레이너인 동시에, SNS로 팬들과 소통을 하는 인플루언서이다. 체육관 관장들과 도전자와의 경기는 가라르 지방의 가장 큰 쇼 비즈니스로, 단순히 승부를 겨루고 게임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뱃지를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 보여주는 경기의 성격을 띤다. 관장들의 포켓몬 구성과 싸우는 방식까지, 이들은 저마다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할 만한 컨셉과 개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림 2,3. 가라르 지방의 포켓몬 챔피언 '단델'과 그의 파트너 '리자몽'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Bkr7yS_ErQU)



가라르 지방 사람들은 모두 이 포켓몬 경기에 열광하며, 가장 강력한 포켓몬 챔피언 단델과 그의 파트너 리자몽은 가라르인 전체의 우상으로 묘사된다. 그들이 가는 길목 길목에 사람들이 모이면, 단델은 손가락 세 개만 펼쳐 높이 들며 레츠, 챔피언 타임!’이라 외친다. 사람들은 그의 제스처를 따라하며 환호한다. 무패신화의 포켓몬 트레이너이자 가라르 지방 최고의 스타인 것이다.

 

3. 게임의 마법 : <포켓몬스터>가 현장감을 연출하는 방식과 그 효과

 

게임의 극 초반부터 등장하는 챔피언 단델은 강한 트레이너와 싸우고 싶다.’는 열망을 내비치며 남동생 호브와 주인공에게 라이벌로서 둘 모두 계속 성장하여 내가 있는 곳까지 오라며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포켓몬을 잡고 성장시키며 터프마을에 다다라, 첫 번째 관장을 만난다.

초보 트레이너를 대뜸 엄청난 수의 관중 사이에 몰아넣고 시합을 하라는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에서의 첫 관장전이 마침내 시작된다. 이러한 관장전은 엔딩을 볼 때까지 몇 번이나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작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플레이어가 전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장면의 연출, 특히 배경음악에 있다.

 

 

 

 

                                          그림 4.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에서의 관장전 bgm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quYjN57Tycg)

 

 

관장전의 배경음악은 정확히 세 부분으로 분할되어 있고, 각각의 부분을 듣기만 해도 주인공의 감정과 경기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다. 최근 게임 속 상황에 따라 배경음악이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어 몰입하기도 쉽다. 특히 곡의 후반부는 현장감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는, <포켓몬스터 소드·드>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체육관 관장에게 도전하기 위해 체육관 트레이너 세 명을 쓰러뜨린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기를 위한 유니폼이다. 축구 팀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이 의상을 착용하고 무대에 올라야 한는 것이다. 경기장 또한 축구장을 그대로 가져온 것만 같다. 처음 이 경기장에 발을 들인 주인공이 압도적인 분위기에 주눅이 들건 말건 경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의 긴장과 패배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이라도 하듯, 매우 긴장되는, 악역의 등장 시에나 나올 법한 선율이 빠른 비트로 흐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포켓몬스터> 속 주인공들도 대대로 천재에 가깝다. ‘평범하게 자란 소년 소녀가 모든 포켓몬 관장과 챔피언을 쓰러뜨리고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는 공식에 가까운 플롯을 게임 바깥의 플레이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는 <포켓몬스터 소드·실드>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관장의 첫 포켓몬을 무찌르고, 경기는 중반을 향해 간다.

이때 BGM의 분위기가 변한다. 단조로 흘러가던 초반의 음악은 비슷한 구성의 장조로 변화하며 긴장과 불안이 아닌 즐거움과 몰입의 감정을 묘사한다. 압도되고 주눅 들어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이 풀리며 점차 포켓몬 배틀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흐름은 경쾌하다. 빠른 비트에 즐거운 선율이 흐르니, 음악처럼 주인공 또한 관장의 포켓몬을 한 마리 한 마리 쓰러뜨리며 수월하게 하는가 싶다. 마침내 관장의 남은 포켓몬은 한 마리.

장조의 선율로 즐겁게 흐르던 경기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며 배경음악의 종반부가 시작된다. 빠른 드럼소리(마치 박수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가 지나가서 긴장이 완전히 풀린 주인공은 이제 주변의 소리도 듣기 시작하는데, 이때 관중들은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환호한다. 단순히 박자에 맞춰 환호를 하는가 싶으면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관중 전체가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랫소리는 축구나 야구(특히 야구) 경기 시 팬들이 부르는 응원곡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림 5. <포켓몬스터 소·실드>에서의 '다이맥스' 장면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9ihUCEIgrhY)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배경음악이 흘러나올 때의 화면 속 상황이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2013, 포켓몬이 최종 진화 후 한 번의 일시적인 진화를 하는 메가진화의 성공 이후, ‘특정 포켓몬은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특별한 진화를 한다는 컨셉을 이번 작품에서도 밀고 나가고자 한 것 같다. 본작에서는 일명 다이맥스라 명명된 진화 시스템이 등장하는데, 포켓몬이 마치 고질라처럼 거대해지며 특별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특히 몇몇 포켓몬은 기존과 다른 특별한 모습으로 전용기를 사용하는 거다이맥스를 할 수가 있는데, 모든 관장들은 항상 마지막 포켓몬으로 이 거다이맥스 포켓몬을 선택한다.

이렇게 수세에 몰린 관장이 마지막 포켓몬을 거다이맥스한다. 거대한 포켓몬 볼에서 거대한 포켓몬이 등장하고, 경기장이 떠나가라 포효한다. 이 거대한 포효가 관중들의 함성 소리와 응원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며 게임기 본체가 진동하는 것이다. 플레이어 또한 이 시점에 자신의 포켓몬을 다이맥스’, 혹은 거다이맥스를 한다면 전율은 두 배가 된다. 공인된 스타와 새내기 트레이너를 향한 환호, 거대 포켓몬들의 포효, 그 둘의 격돌이 한 데 어우러져 가장 멋진 절정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다이맥스가 공개되었을 당시 <포켓몬스터> 팬들의 반발은 거셌다. ‘메가진화 이후에 포켓몬을 타노스(작 중 전 작들의 포켓몬이 절반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것을 비꼬는 말)”시키더니 겨우 한다는 게 포켓몬을 크게 키워놓는 거냐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이 발매된 이후, 관중들의 응원과 환호 속에서 커다란 괴수 둘이 격돌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작 중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몇몇 사람들은 관장 BGM을 듣는 것만으로 게임 속 상황이 저절로 그려진다고 말한다. 현실과 다름없는 사실적인 그래픽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구시대적인 애니메이션 풍 3D 그래픽을 고집하고 있는 <포켓몬스터>가 다름아닌 경기의 현장감과 몰입도로 호평을 받는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4.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의 성과 :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포켓몬스터 소드·실드>가 이러한 방식의 연출을 선택하고 효과를 본 데에는 기존 스포츠 경기에 대한 코드를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 외에 e스포츠 코드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포켓몬스터>는 이제까지 대중에게 그 게임성보다야 개성 강한 포켓몬들의 IP로 어필한다는 이미지가 있어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히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해 온 바 있다. 한정된 네 개의 기술을 사용하여 상대 포켓몬의 HP0으로 만든다는 단순한 경기 방식은 그만큼 치밀하고 기발한 전술의 등장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4, 한국의 포켓몬 프로게이머 박세준 선수가 비주류 포켓몬 파치리스를 사용하여 우승을 차지한 것이 주목을 받은 이유이다.

혼자서도 충분한 성능을 내는 강한 포켓몬이 공식처럼 등장하던 가운데, 박세준 선수는 파치리스와 같은 비주류 포켓몬을 전략화하여 사용하였다. 단순히 경기에 등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파치리스는 박세준 선수를 우승으로 이끄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림 6,7.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 2014에서 파치리스를 통해 승리를 거머쥔 박세준 선수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NOx_Qdc6bqw)

 

 

결국 박세준 선수는 가라르 지방의 단델처럼 포켓몬 팬 모두의 스타가 되었고, 파치리스는 그의 상징과 같은 캐릭터가 되었다. 게임의 제작진들도 이를 의식하듯, 새롭게 펼쳐지는 리그의 홍보영상에서 파치리스를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박세준 선수와 파치리스의 조합을 후속작에서 오마주하기도 하였다.

한편, 포켓몬 배틀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파치리스가 비주류 포켓몬인지부터 설명해야만 한다. 이처럼 아직까지 현실의 포켓몬 배틀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이지만, 포켓몬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현실처럼 포켓몬 오타쿠들이 일반인에게 설명해야 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이 세계 안에서 포켓몬 배틀이란, ‘트레이너끼리 눈만 마주쳐도수시로 일어날 정도로 일상적이다. 단델과 같은 인물을 현실로 치환하자면 야구나 축구의 스타 선수인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포켓몬스터>를 플레이하고 있을 게이머들에게 게임이란 야구나 축구보다 더 일상적이며, 프로게이머들은 우상과도 같은 존재이다. 결국 포켓몬스터 챔피언이라는 위치는 현실 속 게이머들에게는 프로게이머의 위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한편 프로게이머의 대단한 점을 이해하고 이를 해설까지 할 수 있는 포켓몬 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우승자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은 빛나는 스타가 아니라 스타를 빛내주는 수많은 불빛들 중 하나에 위치한다. 꿈을 가진 어떤 게이머들은 그들과 같이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해 뼈를 깎고 피와 땀을 흘리지만, 절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스포츠의 세계가 으레 그렇듯, 게임의 세계도 냉정하다. 모두가 우승할 수도, 모두가 별이 될 수도 없다.

작품 초반 챔피언 단델에게 열광하는 NPC들은 플레이어에게 뭐야 이 듣도보도 못한 햇병아리 선수는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스토리가 점점 진행됨에 따라, 특히 챔피언 단델 격파 이후, 이들은 모두 주인공의 팬이 되어 너의 경기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 ‘최고의 트레이너다라는 감상을 전한다. 이는 포켓몬 배틀의 규칙과 전략에 대한 이해가 일상화되어 있는 세계 속에서, 포켓몬 시리즈가 플레이어에게 네가 어떤 배틀을 했든 나는 감동 받았다라는 찬사를 보내는 것과 같다.

배경음악의 연출로 플레이어를 전율시키는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이러한 점에서 모든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오직 프로게이머들이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시각적 연출과 배경음악, NPC들의 반응 등으로 연출하여 <포켓몬스터 소드·실드>를 플레이하는 모두가 프로게이머가 하는 게임을 보는위치에서 다시금 게임 플레이의 주체가 되도록, ‘프로게이머의 위치에서 게임을 할수 있도록 구현해낸 것이다.

비록 허구의 세상이지만, ‘모두가 포켓몬 배틀을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서 프로게이머 박세준 선수가 우승 후에 보았던 경치를 조금이라도 맛보게 했다는 점, 그 현장감이 사실적인 그래픽을 배제하고 나왔다는 점이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의 매력적인 성과인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