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2차 창작, 동방프로젝트

최근 만화, 게임, 라이트노벨과 같은 서브컬처를 살펴보면 현실세계가 아닌 이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이세계물이 유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세계물의 배경은 말 그대로 다른 세계이다. 주인공이 현실세계에서 모종의 이유로 이세계로 이동하게 되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내용이 이세계물의 일반적인 전개이다. 이런 이세계물을 즐기는 방식은 다양하다. 애니메이션, 만화 등으로 즐기기도 하고 원작 작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며 즐기기도 한다. 이와 같은 원작 작품을 기반으로 팬들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을 2차 창작이라고 부른다. 소설, 만화, 일러스트, 영상 등으로 다양한 2차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런 2차 창작물이 유독 유명한 작품이 있다. 바로 『동방프로젝트』다.

『동방프로젝트東方Project』란 ZUN(본명 오타 준야太田 順也)의 1인 동인서클 『상하이앨리스환악단上海アリス幻樂団』에서 만든 동인 게임 시리즈다. 1995년 첫 번째 작품이 발표된 이후 2019년 동방귀형수까지 정식작 17 개와 외전 11 개를 포함해 총 28 작품이 나왔다. 이것은 완성판을 기준으로 28 작품이며, 2019년 10월 6일 체험판으로 공개된 외전 동방강욕이문을 포함하면 총 29 작품이 나온 상태이다. 동방프로젝트는 1995년 블록격파형 슈팅 게임으로 시작해 1997년부터 탄막 슈팅 게임으로 전향해 작품을 이어나가고 있다. 98년까지 PC98용으로 제작된 작품은 구작, 02년 이후 윈도우즈용으로 나온 작품들은 신작이라고 부르고 있다.

슈팅 게임의 세부 장르인 탄막 슈팅 게임은 특성상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캐릭터를 조작해 탄막을 피하고 적을 쏘아 물리치는 류의 게임에 약한 사람이 많기도 하고,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발달한 요즈음에 고전적인 느낌을 풍기는 탄막 슈팅 게임은 손이 잘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탄막 슈팅 게임 업계에서도 유독 인기가 많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동방프로젝트』이다.

동방프로젝트는 게임, 노래 앨범, 만화 등을 통해 세계관을 넓혀가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콘텐츠와 동방프로젝트만이 가진 개성 덕에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임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인기는 동방프로젝트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동방프로젝트의 주 무대는 바로 ‘환상향’이라는 이세계이다. 환상향은 이름 그대로 요괴, 신과 같은 환상의 존재들이 모인 세계를 말한다. 동방프로젝트는 게임의 주인공들이 환상향에서 일어나는 이변을 해결하는 이세계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단순히 ‘이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기에 이세계물이라 정의하는 것은 어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방프로젝트는 우리들이 익히 생각하는 ‘현실 세계’의 존재와 게임의 무대인 이세계, ‘환상향’을 착실히 분류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작중 등장하는 ‘우사미 스미레코’라는 캐릭터이다. 우사미 스미레코는 현실 세계의 학생으로 꿈을 통해 환상향, 즉 이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과 관련된 내용이 게임과 만화 등에서 다뤄질 정도로 이야기의 비중이 작지 않다. 동방프로젝트가 이세계물이라는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또 다른 증거로는 『렌다이노 야행』, 『몽위과학세기』, 『묘유동해도』 등의 앨범에서 언급되는 ‘비봉구락부’가 있다. 비봉클럽이라고도 불리는 이 동아리는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는 목적을 가지고 비밀이 숨겨진 경계를 찾아다니고 있다. 해당 경계를 넘으면 이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작중 묘사되는데, 팬들은 그 이세계가 ‘환상향’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를 통해 팬들은 환상향과 현실 세계를 오가는 2차 창작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2차 창작 작품 중에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 및 인물이 동방프로젝트 세계관에 들어와 사건이 일어나는 종류도 있다. 동방프로젝트에서는 이를 ‘환상들이’라고 한다. 이 경우 주로 환상향의 인물들이 환상들이한 물건의 용도가 무엇인지 추측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팬들은 환상들이를 이용해 동방프로젝트와 연관이 없는 다른 장르, 세계관의 캐릭터를 동방프로젝트와 엮어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2차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동방프로젝트 또한 하나의 이세계물 작품으로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동방프로젝트는 진입 장벽이 높지만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 더 나아가 하나의 장르로서 취급받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음에도 지속적인 팬을 끌어들이고 있는 이유와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2차 창작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코믹마켓”이라는 대표적인 동인 행사가 있다. 코믹마켓은 매년 8월 중순과 12월 말, 연 2회씩 개최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작품을 사고팔기 위해 모이는 이 행사에서 동방프로젝트는 C94(2018년 8월)에서 1330 부스, C95(2018년 12월)에서 1265 부스, C96(2019년 8월)에서는 1084 부스일 정도로 상당히 많은 부스가 참여하고 있다. C96 기준으로 건담 부스는 174 부스, 하이큐!! 부스는 176 부스, 도검난무 부스는 844 부스 등 타장르와 비교하였을 때도 상당히 많은 부스가 코믹마켓에서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 여기서 C94, C95, C96이란 각각 코믹마켓 94회, 코믹마켓 95회, 코믹마켓 96회를 의미한다.

또한, 2004년부터 매해 “하쿠레이 신사 예대제博麗神社例大祭”라는 동방프로젝트 2차 창작물만 판매할 수 있는 동인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이외에도 “하쿠레이 신사 예대제”와 비슷한 “동방홍루몽”, “동방○○○ 온리전”과 같은 이름의 동방프로젝트 게임시리즈 중 한 작품만 주제로 하는 행사가 개최되는 등 팬들의 2차 창작을 통해 동방프로젝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C96 장르별 서클 수 추이2)

동방프로젝트의 2차 창작이 이토록 활발할 수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첫째, 동방프로젝트의 캐릭터 설정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동방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캐릭터 설정을 주되 세세한 설정까지는 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캐릭터의 성격, 말투, 능력, 기본적인 설명은 주지만 이외의 관계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한 스테이지에서 보스로 나타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명뿐이기 때문에 작품 내에서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대사 정도뿐이다. 이렇듯 얼핏 보면 허술해 보이는 이 설정은 팬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설정과 캐릭터의 대사로 캐릭터를 해석하고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를 추측해 이를 2차 창작으로 만들어낸다. 캐릭터의 과거, 종족, 능력, 관계 등 공식에서 준 것이 아닌 정보를 스스로 상상하고 만들어내 2차 창작으로 빈 공간을 메꿔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동방프로젝트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루미아의 설정(좌)3) 루미아의 일러스트(우)4)

한 예로 ‘루미아’라는 캐릭터를 들어보자. 루미아는 동방홍마향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이며 어둠을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1스테이지 보스이다. 이 캐릭터는 게임에서 “그런 건가~”(원문 “そーなのかー。”)라는 대사를 하는데, 팬들은 이 대사를 소재로 삼아 말버릇이 “그런 건가~”라는 설정을 붙여줬다. 또, 동방홍마향의 덤 파일을 보면 ‘사실 머리카락에 묶여 있는 리본은 부적이라, 리본을 떼고 싶어도 루미아 본인은 손댈 수 없습니다.’라는 공식 설정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팬들은 이 설정에서 봉인이 풀린 루미아, 통칭 ‘ex루미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모종의 이유로 봉인이 풀린 루미아는 사실 강력한 요괴였다,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와 같은 설정을 붙여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어떤 팬은 ex루미아와 동방프로젝트의 주인공 ‘하쿠레이 레이무’를 주인공으로 한 동영상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ex루미아와 하쿠레이 레이무를 주인공으로 한 ジョイフル 작가의 幼霊夢5)

https://www.nicovideo.jp/user/2589788/video

이렇듯 동방프로젝트는 캐릭터의 설정에 자유로워 캐릭터 설정을 자유롭게 해석해 자신의 방식으로 2차 창작을 할 수 있다. 공식 설정을 따라가는 설정도 있는가 하면, 팬만의 독자적인 설정을 붙여주기도 하며 2차 창작을 즐기고 있다.

둘째, 동방프로젝트는 많은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동방프로젝트에는 구작 46명. 신작 109명 총합해서 155명이며 출판물 및 앨범, 기타 캐릭터를 합하면 무려 175명의 캐릭터가 존재한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수많은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캐릭터마다 개성이 독특하기 때문에 개성이나 디자인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이렇게 많기 때문에 팬들은 대게 이 캐릭터 중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아 2차 창작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많은 캐릭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동방프로젝트의 2차 창작에 한몫했을 것이다.

이는 동방프로젝트가 이세계물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환상향은 현실 세계에서 잊힌 것들이 모이는 이세계이다. 현실 세계에서 잊힌 요괴, 신 등 환상이 된 것들이 모인 장소다 보니 현실 세계에는 있을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신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요괴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 인간이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 등 독특한 설정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캐릭터가 많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동방프로젝트는 원래 소재가 존재하는 캐릭터가 많이 있다. 풍작을 기원하는 신, 단풍을 물들이는 신, 가난신, 액신과 같은 신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캇파, 텐구, 백택, 요스즈메, 설녀, 흡혈귀 같은 요괴 캐릭터, 무녀, 마법사, 메이드 같은 인간 캐릭터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셋째, 동방프로젝트는 2차 창작자들에게 상업적 이용이 허용돼있기 때문이다. 보통 2차 창작은 ‘그레이존(gray zone)’이라는 암묵적인 룰에 의해 통용되고 있다. ‘그레이존’이란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부분(집단·지역)을 지칭하는 용어다. 2차 창작이 그레이존인 이유는 원래라면 원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2차 창작을 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지만, 원작의 이미지를 해치거나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면 원작자가 묵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방프로젝트는 상업적 이용을 허용해두고 있다. 그 때문에 기업에서 피규어를 제작하거나 동방프로젝트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등 다양한 2차 창작이 행해지고 있다. 게임플랫폼인 스팀(Steam)에도 2차 창작 게임을 판매하거나 스마트폰 게임으로도 출시되고 있으며 닌텐도 스위치 게임으로도 발매됐다. 상업적 이용이 허용돼있기 때문에 동방프로젝트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던 것이다.

스팀에 등록된 동방 2차 창작 게임

스위치로 발매된 동방환상마작6)

동방프로젝트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2차 창작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2차 창작은 팬들이 원작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올해에는 동방프로젝트의 신작 동방강욕이문의 완성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1995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25년을 달려온 동방프로젝트는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으며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서브컬처가 나오는 지금, 앞으로의 작품들은 동방프로젝트처럼 2차 창작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앞으로의 2차 창작은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 상업적 이용을 허용해야 할까? 2차 창작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 동방프로젝트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2차 창작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2) 심유경, ‘2019년 여름 코믹마켓(C96) 웹 카탈로그 공개, 장르별 동향 등.’, 심유경네 집의 책장,

http://simugung.egloos.com/5920588, 2020-01-29

3) ZUN, Rosenrose 역, 동방홍마향/오마케, thpatch, https://www.thpatch.net/wiki/Th06/omake.txt/ko, 2020-02-24

4) https://namu.wiki/w/%ED%8C%8C%EC%9D%BC:th06_rumia.png

5) ジョイフル, ジョイフル - niconico(ニコニコ), niconico(ニコニコ動画), https://www.nicovideo.jp/user/2589788/video, 2020-02-23

6) https://twitter.com/touhou_g_mj/status/1216998954262396928/photo/1